나에게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있다. 한 마리는 대학생 때부터 길렀었고, 지금은 나의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요크셔테리어. 그리고 또 한 마리는 결혼을 하고 남편과 내가 데리고 온 우리의 푸들 강아지.
둘은 "개"라는 같은 공통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다르기도 하다. 내가 우리 로로를 데리고 와서 계속해서 느꼈던 점은, 같은 개기는 해도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구나 라는 점이였으니...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인간도 75억명이 있고 제각각 성격이 모두 다르듯이, 개라고 별 수 있겠는가?
나의 첫 강아지, 로이는 요크셔테리어의 전형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깔끔 떠는 것을 좋아하고, 볼일을 보다가도 자신의 다리나 몸에 볼일이 묻었다 치면 화들짝 놀래면서 도망친다. 아무리 늦은 밤에 귀가해도 반갑게 맞아주러 뛰쳐 나온다는 개같은 점이 있긴 하지만, 그 외의 모든 점은 고양이같다. 자신이 내킬 때만 애교를 부리고 옆에 와서 칭얼대지만, 의외로 상당히 많은 시간은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점은 나이를 먹고 나서는 더욱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결혼하고 내가 친정에 찾아가도, 물론 처음에는 매우 반겨주지만,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보면 어느샌가 슬그머니 사라져 있고 어디갔나 찾아보면 대부분 다른 방에 들어가 홀로 몸을 웅크리고 쉬고 있다.
로이는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평생 다리가 불편한 채로 살고 있다. 아마 그 때문이겠지만, 다른 강아지들보다 몇 배나 예민한 성격을 자랑한다. 어쩌다보니 나는 로이의 목욕을 한 번도 내 손으로 직접 시킨 적이 없는데 (사실 우리 집에서 로이의 목욕을 손수 시켜주는 것은 어머니가 유일하다) 몇십, 몇백 번을 경험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머니는 로이에게 종종 손을 물리신다. 로이의 입질은 비교적 예고가 없는 편이다. 자신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한다 하면 열 살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입을 갖다댄다.
그에 반해 우리 로로는, 내가 키워 본 첫 푸들이지만, 푸들의 전형적인 성격이 아닐까 한다. 엉뚱하고, 나름대로 약삭빠르고,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하고 배우는 것이 빠르다. 로이는 할 수 있는 개인기라고 해봤자 "기다려" 밖에 없는데, 로로는 내가 출근하기 전 5분, 10분씩 시간을 내어 가르쳤던 많은 개인기들을 순식간에 배웠고 아직도 잘 해낸다. 앉아, 엎드려, 손, 누워, 하이파이브, 코 등등...
예고 없이 입질을 하는 로이에 비해 로로는 정말 입질이 없는 편이다. 사실 우리 집에 도착한 첫날 나에게 입질을 가했는데 우리 남편에게 무자비한 참교육을 당했고, 그 후에 로로는 남편에게는 절대 충성하게 되었다. 나와의 관계는 좀 더 미묘하다. 그 후에도 정확히 두 번 간 보는 시점이 있었지만 (나는 이 때 로로를 다시 보호소에 돌려보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 로이에게는 평생 동안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으므로) 워낙 내가 지극 정성으로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 주고, 재워 주고, 돌보아 주었기에 이제는 어떻게 보면 남편보다도 더욱 돈독한 사이를 자랑한다. 로로는 이제 입질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자기가 싫어하는 짓을 해도 남편과 나에게 입질을 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것을 꽤나 선호하는 로이에 반해, 로로는 끊임없이 관심을 갈구한다. 내가 다른 방에서 홀로 컴퓨터를 쓰고 있고, 여러 문제와 머리 씨름을 하고 있노라면 반드시 찾아 와 지근거리에서 엎드려 있던지, 혹은 내 다리를 박박 긁어 어떻게든 자신을 무릎 위에 올리게 한다. 그리고 하루의 꽤 긴 시간 동안 나에게 장난감을 던지고, 자신이 앙다문 장난감을 흔들어 주고 잡아 당기게 한다. 내가 거실에 홀로 앉아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거나, 와인을 마시고 있으면 반드시 나와 살을 붙이고 앉아 있던가 아니면 바로 근처의 거리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조용히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호흡한다. 잠을 잘 때에는 약간 떨어져서 자거나 아니면 가끔가다가 아예 다른 공간에서 자는 로이와는 달리, 로로는 언제 어느때든 반드시 나와 몸의 어딘가를 꼭 붙이고 잔다. 아니면 나의 남편에게 그러거나.
평생 다리가 아팠고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로이에 반해, 로로는 너무나도 건강하다. 정말 너무너무 건강하다. 오죽하면, 로로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가 본 동물병원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병원들에서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 말이 '너무 건강해요', '운동선수 같아요' 였으니... 지금도 로로는 매일 내가 퇴근을 하고 오면 산책을 30분 ~ 1시간 반씩 하며 (시간은 주로 계절의 영향을 받는다 - 너무 덥고 추운 날에 로로는 오래 걷는 것을 거부한다) 항상 기운차게 돌아다닌다.
로이의 제법 섬세한 성격과 로로의 무심함도 꽤나 큰 차이점이다. 로이는 정말 섬세한 강아지였다. 내가 아마 로이와 가장 시간을 오래 보냈던 때는,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과정을 시작하기까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던 1년간일텐데, 그 시기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지만 정녕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 때의 내가 정확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지금도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도, 가족도, 친구도, 알지 못한다. 대학은 어찌어찌 졸업했지만 보이지 않는 내 미래에 울었고, 지금 생각하면 보잘 것 없고 당장 헤어졌어야 마땅한 사랑의 아픔에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내 가족, 내 혈육마저도 그 시기의 나를 모른 척 했었지만 (그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아마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로이만은 나의 아픔을 모른 척 하지 않았다. 내가 우는 날에는 어쩔 줄 몰라하며 꼬리를 흔들고 나의 눈물을 핥아 주었고, 나의 곁에 몸을 누이고 밤을 보내고 낮을 보냈다. 내가 하루 한 끼를 겨우 먹고 남는 시간에는 거의 잠으로 때울 때에도, 로이만은 곁에 있어 주었다. 장담하건데 그 때 이 보잘것 없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지 않았던 것은 정녕 이 작고 몸도 불편한 강아지 덕분이었다. 높은 우리 집 창문을 이대로 뛰어 내려버릴까 생각을 몇 번이나 하면서도, 내 옆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나만을 바라다보는 이 강아지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겨우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로이에게 평생의 삶을 빚지고 있다.
한편 우리 로로는, 정말 무심하고 무던한 성격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내가 우는 일이 물론 자주 없기는 했는데, 아주 간혹가다 내가 울어도 별 관심이 없다. 다만, 내가 정말 힘든 하루를 보내고 와서 집에 늘어져 있을 때면 놀아 달라고 정신 없이 나를 보채다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고 났을 때 말 없이 옆에 와서 엉덩이를 들이대고 털썩 주저앉는데, 그 때의 그 따끈한 체온은 나를 위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강아지의 따끈한 체온. 사람이 건네는 열 마디, 백 마디 말보다 그 하나에 얼마나 많이 나는 구원받았던가.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의 있는 힘껏 핥아 주다가 끝내는 내 옆에 털썩 주저 앉고 3kg에 지나지 않는 작은 몸을 동글게 말아 최대한 붙이고 나는 위로해주는 로이. 언제 어느 때든 나에게 보채며 다가오고, 내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면 '꾸욱', '우웅',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고 하고, 로이와 똑같이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작은 몸을 나에게 최대한 붙이려는 로로... 통계적으로 보면 이 강아지들은 나에 비해 짧은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나이를 생각하면, 아마도 내 인생의 비교적 이른 순간에 나를 스쳐지나가는 강아지들일 것이다. 하지만 감히 나는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몇 십 년이 흐르더라도, 그들의 따뜻한 체온과 한 마디 말도 없는 침묵의 위로가 나의 인생을 계속하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음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