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하건데 나는 강아지를 데려올 생각이 아예 없었었다. 친정에 있는 우리 로이는 사랑을 듬뿍 받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었고 외로운 강아지였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집에 있을 때는 최대한 사랑을 주려고 하고 나의 신경은 온통 녀석에게 쏠려 있었지만 그래도 가만 보면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 보낼 터였다. (요즘은 부모님이 은퇴를 하시고 시간이 조금 더 많아졌다) 그래서 나와 남편 둘 다 야근이 생활화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상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만일 내 인생에 있어 강아지를 다시 키우게 된다면, 최소한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아이가 중학생은 되었을 즈음에나 가능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우연한 첫 만남이었다.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 당시 우리는 신혼집에 있었던 보잘 것 없던 이케아 소파(무려 남편이 자취할 때부터 사용해오던 소파였다!)를 바꾸고자, 이곳 저곳에 가구를 보러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망원동에 있는 어느 쇼룸에 예쁜 소파가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말에 한 번 구경이나 가기로 했다.
차를 대고 내렸는데, 작은 골목 건너편에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강아지를 안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단체로 강아지를 데리고 마실 나온 동네 주민인 줄 알았다. 약간 거리가 있었지만, 그 중에 품에 안긴 갈색 푸들 강아지가 참 예뻐 보였다. '강아지가 예쁘다, 그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데 우리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그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던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향해 불렀다. "구경오세요, 유기견 입양 캠페인 하고 있어요."
동네 주민들이 데리고 온 강아지들이고, 가정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강아지들은 사실 유기견들이었다! 강아지를 안고 계신 분들은, 이 강아지들을 보호소에서 구출해 와 '임시보호' 중이시라고 하셨다. 나는 그 때 강아지 임시보호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찰나의 순간에 우리, 특히 남편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은 약간 큰 크기의 갈색 푸들이었는데, 신기하게 가슴에는 몸의 갈색 털과는 대조적으로 하얀색 털이 가득 나 있었다.
"몇 살이에요?"
"얘 완전 애기에요. 한 살쯤 되었을 거에요."
"남자아인가요?"
"여자아이에요."
"몇 kg인가요?"
"4kg쯤 돼요."
그 때는 몰랐었다. 10년동안 키워 온 작은 요크셔테리어(사실 3kg에 불과했는데, 다른 요크셔테리어에 비해서는 큰 편이라 거구라고 생각했었다!)에 익숙해져서, 이 강아지 역시 상당히 큰 강아지인줄 알았다. 계속 구경하고 있자니, 강아지를 데리고 오신 분이 말씀하셨다.
"예쁘죠? 데려가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하하..."
"그러게요. 우리 데리고 갈까?"
"얘 정말 똑똑하고 착해요. 볼 일도 얼마나 잘 가리는데요."
늘 언제나 이성적이고 특히 인생 문제는 계획에 따라서 행동하는 남편의 입에서 정말 놀라운 말이 나왔다. 믿을 수가 없어서 쳐다보는데, 꽤나 진심인 표정이었다.
"우리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락사 당할수도 있잖아.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데, 데리고 가자."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결정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좀 더 고민해보자."
그 분들은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강아지들의 입양 홍보를 위해 망원동 골목에 이렇게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오신다고 하셨다. 남편이 의아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서, 강아지를 안고 계시던 분의 연락처와 블로그 주소를 적었다. 강아지가 입양을 갈 때 까지 계속 오실 거라고 하셔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남편을 끌고 일단 우리의 외출 목적을 달성하고자 이동했다.
기대했던 소파는 사실 별 것 없었고, 슬슬 배가 고파져서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햄버거를 시켰다.
"아까 그 강아지, 정말 데려오고 싶었어?"
"응. 너무 예쁘고 착했잖아."
"아니, 데리고 오면 어떻게 키우려고?"
"잘 키울 수 있어. 강아지 오래 키워봤잖아."
"집에 오랫동안 혼자 있을텐데?"
그 때, 남편은 나의 허를 찔렀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의 큰 결단에 시발점이 되었다. 그 전까지 영 미적지근했던 나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으니.
"그래도,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당하는 것보다 하루 중에 짧은 시간이라도 너한테 듬뿍 귀여움을 받으면서 사는 게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아까 그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불과 3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어왔다.
"어머나, 미안해서 어쩌죠? 아까 보리는 좋은 집에 입양갔어요."
"네?"
"아이도 있고, 강아지도 키워보셨다는 집에서 키우시겠다고 입양갔어요. 너무 다행이에요."
그 일을 남편에게 전해 주자, 나는 그 뒤로 몇 시간 동안 남편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너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예쁜 강아지는 다른 집에 가버렸다고. 아직까지 정말 내가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지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으로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강아지도 소파도 무엇 하나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왔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 한 일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어제 그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리가 파양당했어요!"
"아니, 왜요?"
"새로 간 집에서 강아지가 화장실을 못 가린다고, 자기는 데리고 있지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유기견들은 환경이 바뀌면 실수할 수 있다고 그렇게 설명을 했었는데..."
새로 갔던 집에서 밤새도록 끙끙거리고 소리를 내고, 이곳 저곳에 실수를 했었단다. 잘 키울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고 데리고 갔던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도저히 키우지 못하겠다고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단다. 임시보호를 해 주시던 분은, 당신 집에서는 거의 실수도 하지 않고 짖지도 않은 착한 강아지였다며 매우 속상해했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해주자, 반색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가 빨리 데리고 오자."
"그래볼까?"
바로 그 전 날까지만 해도 약간 두루뭉실 했던 나의 마음에 약간 불씨가 피어오른 것 같았다. 혹시, 이렇게 된 것이라면 바로 우리의 인연이 아닐까?
"혹시, 저희가 강아지를 데리고 올 수 있을까요? 잘 키울 수 있어요. 저희 친정에서 나이 많은 강아지도 오래 키우고 있구요..."
"한 번 다른 사람들하고도 얘기해 볼게요."
해당 유기견 보호단체의 많은 실무를 맡아 보신다는 분한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소개와, 집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최대한 잘 보이고자 예쁘게 집을 담아보고, 우리 설명을 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소란스럽고 실수를 했다고 한 번 파양된 아이를 맞벌이 신혼부부한테 보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두 분의 생활 패턴에는 좀 더 나이 많고 조용한 강아지가 어울릴 것 같은데, 이 아이는 어떠세요?"
보내온 사진은 아주 나이가 많고 작은 요크셔테리어였다. 친정에 있는 로이가 생각나서 나는 마음이 약해졌지만,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이 꺼려했다. 만났던 바로 그 아이를 데려오고 싶다고.
임시보호 하시는 분한테도 계속 연락을 해 보았는데, 그 분도 우리의 첫인상이 너무 좋았고 가능하다면 강아지를 맡기고 싶지만 강아지를 구조한 단체에서 아이가 없는 젊은 신혼부부는, 아이가 생겼을 때 유기견을 다시 파양하는 일이 많다며 계속 반대한다는 얘길 하셨다. 사실 자존심이 매우 상했다. 나름대로 10년동안 책임감 있게 강아지를 키워 왔는데 그런 나의 인생을 자세히 보려고 하지도 않는 모르는 사람에게서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다음 번 입양 홍보회에 다시 강아지를 데리고 온다고 하셔서, 이번에는 여러 강아지 간식을 미리 사서 가기로 했다. 잘 보이기 위해서.
몇 주 뒤에 다시 만난 강아지는, 우연인지 우리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다른 강아지와 놀고 있었는데, 우리를 발견하자 단박에 우리 품에 뛰어들어와서 얌전히 안겼다. 특히 남편의 품에 얌전히 안기는 것을 보고, 임시보호하는 분들이 '어머, 이 분들이 정말 좋나봐. 이런 애가 아닌데...' 라고 하실 정도였다.
사실 그 때쯤에는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었다. 계속 고민하고 있었지만, '안락사를 당하거나 다른 곳에서 배변실수 좀 했다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 보다, 너는 훨씬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 넣어준 남편과, 그리고 바로 그 전 주에 이야기를 나눴던 친한 언니의 한 마디에 의해서.
그 언니는, 나와 같은 맞벌이에 강아지를 두 마리씩이나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다. 사실 맨 처음에 강아지를 데리고 오려고 생각하며 나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에는, 나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하라고 했었다. 맞벌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고, 또 나는 이미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지만 이미 나이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 이별을 생각한다면 많이 고민된다고.
하지만 그런 내 조언이 무색하게 언니는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잘 키웠고, 심지어 한 마리 유기견을 더 데리고 왔다. 자신은 강아지들을 데리고 온 것이 너무 잘 한 일이라고 했다. 키우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고.
"언니는 만일 나중에 이별한다고 생각하면 슬프거나 무섭지 않아요?"
"그렇다면 나는 더 새로운 강아지들을 키울 거야. 상실의 슬픔은 새로운 사랑으로 극복해야 해."
그 말 또한, 소심하게 움츠려있던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론적으로, 사실 우리 부부는 그 입양홍보회에서 만났던 강아지를 데리고 오지 못했다. 우리 생각에는 분명히 잘 할 수 있었고, 또 강아지도 우리 부부를 퍽 좋아하는 눈치였는데, 다른 부부가 와서 데리고 갔다고 했다. 그들도 같은 신혼부부에 아이가 없는 처지였는데, 정확히 무엇이 우리보다 좋은 조건이었다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맞벌이가 아니여서였을까?)
사실 우리가 두 번째, 그것도 일부러 망원동까지 찾아갔었던 입양 홍보회에서 그 부부를 만났었다. 강아지가 우리랑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간식을 주고 유인해갔다. 방금 전까지 우리 품에 있던 강아지가 다른 데 가서 간식에 계속 정신이 팔려 있길래, 서울을 가로질러 먼 걸음을 했었던 우리는 머쓱하게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그 강아지는 바로 그 날짜로 입양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내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데, 그 때에는 참 속이 상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애견인의 마음가짐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단지 신혼부부에 아이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멋대로 나를 평가절하했다는 마음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그 때 갑자기 마음에 불이 붙었다. 그 전까지는 나 자신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마음에. 만일 안락사 당할 위기의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면, 차라리 내가 데리고 와서, 낮에는 조금 심심하더라도 밤과 주말에 온 힘을 다해 예뻐해 주고 놀아 주고 사랑을 듬뿍 주어서, 행복하게 해 주자고.
그것이 바로 우리 로로를 데리고 올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