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아지, 세 번째 이야기

by any

나는 그래도 너와 함께 한 매 순간동안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집에 있을 때면 항상 들여다 보았고, 마치 쥐새끼 같아 보일 정도로 아기였던

네가 그나마 강아지의 모습을 찾을 때까지 계속 옆에서 보며 돌봐 주었던 것도 나였다. 부모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너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내가 돌봤다. 또 몇 번은 내가 아예 생활거점을 옮겨서, 정작 우리 부부의 강아지는 다른 곳에 맡기면서 나는 너를 돌보러 친정까지 가서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을 해야만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미안한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도저히 잊지 못할 것 같은 그 때는 기록적인 더위였던 2018년, 그것도 한 여름이었다. 언제나처럼 집, 회사를 오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장 다음주부터 영국에 최소 2주동안 갈 거라고.

믿기지가 않았다. 7말 8초는 여행의 극 성수기이고, 우리 부모는 쓸데없이 가격이 치솟는 이런 성수기때 여행을 가는 것을 극도록 혐오했다.


“네? 갑자기 왜요?”


내 당연한 질문에 갑자기 어머니가 역정을 냈다.


“아니, 가고 싶으니까 그냥 가는 거지. 그게 뭐가 문제니?”


뭔가 느낌이 쎄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물었다.


“그럼, 로이는요?”

“글쎄, 어떻게 해? 당연히 너가 돌봐줘야지. 집에 데리고가면 되잖니?”


이 순간 나는 솔직히 퓨즈가 나갔다. 매일같이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던 때였다. 집에서 회사까지 매일 출퇴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5분, 10분 동안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곤 했다. 그 때는 52시간 근무가 정착되지도 않았을 때였고, 야근도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야근을 하고 지친 몸을 끌고 집에 가면, 오매불망 나만을 기다리는 우리 푸들이가 있었다. 남편은 항상 나보다 퇴근이 더 늦었다. 나는 퇴근을 하면 곧바로 다시 강아지를 데리고 인근 공원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부모는 ‘너희 집에 데리고 가면 된다’고 했지만, 참으로 무책임한 소리였다. 로이는 다른 모든 강아지들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밖에 나갔을 때에도 혹시 다른 강아지와 마주치면 마치 죽일 듯이 매섭게 짖어댔다. 그에 반해 우리 로로는 당시 다른 강아지들을 특별히 싫어하진 않았었지만, 사람(사실 나)에 대한 폭력성을 드러낸 적은 종종 있었다. 하루 종일 사람이 자리를 비우는데 두 강아지만 남겨 놓으라니? 나에겐 무엇보다 위험한 생각으로 들렸다.

심지어 로이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가면, 극도로 흥분하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며 밤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 헥헥거리는 아이였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부모가 또 여행을 간다고 2주 동안 해외로 떠났는데 그 사이 로이를 우리 신혼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었다. 밤새 낑낑거리고, 헥헥거리고 불안해했던 로이 때문에 신랑도 덩달아 잘 쉬지 못했었다.


바로 그 전 겨울, 기록적인 추위였던 2018년 초는 또 어땠는가? 그 때에도 동남아에 사는 언니 가족을 보러 간다고 부모가 2주동안 집을 비운 덕분에, 나는 연차도 내고 아예 생활거점을 친정으로 옮겼었다. 신랑과 나의 강아지, 우리 로로는 애꿎게 다른 곳에 맡겨버리고.

찢어지는 칼바람 추위를 뚫고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을 했었다. 친정에서 출근을 하려면 훨씬 이른 시간에 집을 나와야 하는데, 정말 속된 말로 뒈질 것처럼 추웠었다. 그 때는 또 야근도 많이 할 때였다. 새벽같이 집을 나와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집을 들어가면, 정작 로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쓰러져 자기 바빴으니.

여기에 더 화룡점정인 것은, 우리 로이는 버릇이 잘못 들어 밤새 먹을 것을 달라고 사람을 깨우는 강아지였다는 점이다! 늦은 밤 잠에 들어 새벽같이 일어나서 가야 하는데, 꿀잠을 자야 하는 소중한 그 시간 동안 몇 시간에 한 번씩 로이는 나를 깨웠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심지어 그 때의 강추위로 인해서 친정의 세탁기는 얼어버렸고, 신혼집의 세탁기도 얼어붙었다고 연락이 왔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무거운 세탁기를 낑낑거리며 밀어서 옮기고, 물을 끓여서 하수구에 계속 부으면서 참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이런 짓은 두 번은 못해먹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나를 마음아프게 했던 것은, 그 모든 일이 끝나고 찾으러 갔을 때 정신없이 나와 남편을 반기고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갔던 우리 로로의 모습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불과 반년 전이었다. 이번만큼은 도저히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집에는 로로도 있고 못 데리고 와요. 지금 저도 회사 상황이 힘드니까, 24시간 하는 병원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알아보세요.”




말은 그렇게 했었지만 결국 모든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가장 극성수기인 휴가철을 코앞에 앞두고 공실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 당시 알고 지내던 사람을 통해, 어찌어찌 억지로 자리를 하나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그 와중에 이게 마음에 안 든다, 별로인 것 같다 트집을 잡는 어머니도 어떻게든 설득해야 했다.





그렇게 너가 집에서 나와 낯선 병원에 갇혀 있던 2주 동안,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신경을 쓰려고 했다. 병원 면회시간에 맞추기 위해 눈치보며 최대한 일찍 퇴근을 하고 달려가서 너를 안고 한두시간이라도 있었다. 대략 2~3일에 한 번씩 그 짓을 했는데, 사실 참 힘들기도 했다. 정말 더운 여름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꾸역꾸역 병원에 가서, 너를 안고 있었다. 다른 강아지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너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켄넬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네 입장에서는 다른 강아지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그게 더 안심일 것 같긴 했다)

대체 직원들이 너를 잘 돌보고 있는건지, 처음에 켄넬에서 나와 나의 품에 안길 때 너는 항상 지독한 꼴이었다. 제대로 변을 닦아 주지도 않았고, 사시나무같이 떨면서 끊임없이 끼잉, 우웅 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한 두시간 끌어안고 있다가 내가 집에 갈 때가 되면, 너는 정말 서럽게 울부짖었다. 그 날카롭고 높은 비명소리가 아직도 나의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그 즈음, 정말 힘드니까 제발 빨리 와 달라고 어머니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온 답변은 더욱 더 기가 찼다.

‘힘들겠구나. 그래도 어떻게 하니 별 수가 없는데. 엄마가 기도 많이 할게.’


평생을 착한 아이로 살아 왔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기도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저희 다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이 문자로 어머니를 서운하게 했다고 또 욕을 쳐먹었다!)




심지어 그 즈음 약간 쎄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는 나에게 둘이서만 가는 여행이라고 했는데, 이 힘든 상황에 대해 그나마 친한 언니한테 토로하려고 문자를 보내니, 평소와는 다르게 오랜 시간 동안 답이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답이 왔다.


‘에고 힘들겠네. 좀만 힘내’


문자가 온 것은 저녁이었다. 유럽이 낮일 시간. 기분이 묘해져서 확인했다.


‘혹시 언니도 영국이야?’

‘응ㅎ’

‘왜 간거야?’

‘나 졸업식 하러.’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나를 가장 상처입히고 배신했던 건 우리 가족이었는데, 아마 이 때가 가장 마지막으로 그랬던 적인 듯 싶다. 최근에는 더 강력하게 거리를 두게 되었고, 나의 my own 가정이 생겼기 때문에 더 이상 이들은 나에게 큰 상처를 주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 심했다. 언니의 대학원 졸업을 축하하러 (나를 제외한) 온 가족이 영국으로 갔다는데, 사실 그 몇 년 전 우리 부모는 내가 영국에서 학부와 석사를 졸업할 때 비행기삯과 체류비가 아깝다는 이유로 와 주지도 않았다. 마침 그 때 언니가 대학원으로 영국에 있었으니까, 언니만 참석하면 그만이지 않냐는 논리로.

그 이전에도 이후도, 내가 아는 모든 학부 선, 후배 그리고 친구들 중 부모가 참석하지 않은 졸업식을 치른 사람은 없었다. 이미 가족에 대해 큰 애정은 없었지만 다시 한 번 쐐기를 박는 것 같았다. 우리는 너 없이 행복해, 너는 그냥 우리한테 필요한 일이나 해 줘, 라고.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결국 가장 고생을 했어야만 했던 너는? 늙고 작고 몸도 불편한, 한없이 가련한 강아지. 나의 고달픔과 내가 속한, 이제 진정으로 내 것이라 느낀 나의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것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 너의 아픔과 혼란을 모른 척 하고 낯선 곳으로 너를 몰았던 것은 아닐지.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었고, 사실 너를 배제하고 부모만을 생각한다면 지금도 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너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정말 미안해진다.


너에게는 이제 남겨진 시간이 많이 없을 텐데.... 그런 경험을 하게 했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를 용서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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