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행복하게 해 줘야겠다, 생명을 하나 구해야겠다고 일단 마음을 먹었다. 그 뒤로 몇 주 동안 가슴앓이를 하면서 힘들게 내려야만 했던 결정의 시간이 있었다.
처음 '포인핸드', 유기견 정보 공유 앱을 접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과 제주도에 놀러 갔었는데, 좋은 숙소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앱을 설치했었다.
그리고 뜨는 수많은 버림받은 강아지들... 어느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얼굴과 사연이 없었다. 지금 데리고 가 주시지 않으면 안락사 당해요, 생명을 구해주세요... 철창 안에 갇혀서 하나 같이 꼬질꼬질하고, 기운이 없는 우울한 눈빛의 강아지들.
혹은 개인이 발견해서 직접 보호하고 있는 강아지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보호소에서는, 유기견에 대한 설명을 상당히 드라이하게 써놓는 편이다. 'n세 추정, 건강이 좋지 않음', '입질 있음' 등. 그에 비해 개인이 보호하고 있는 강아지들은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씌여 있다. '아주 착해요', '집에서 데리고 있는데 거의 짖지도 않고 순해요' 등.
그 중 마음을 특히 끄는 설명의 몇 군데에 연락을 해 봤다.
'강아지 아직 임시보호중이신가요?'
'네, 그런데 너무 착하고 불쌍해서... 그냥 저희 부모님댁에 보내려고 해요. 시골이고 마당도 있어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희한하게, 처음 보는 순간 (혼자서) '이건 바로 운명이다!' 싶었던 강아지들은, 하나같이 다른 곳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움직여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던 와중에 결국 지금 우리 부부의 운명을 상당히 바꿔버린(^^) 강아지를 보게 됐다.
당시 녀석의 화면은 캡쳐해서, 지금도 보관 중이다. 우리가 망원동 입양홍보회에서 보고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데리고 오지 못했던 강아지처럼, 이 녀석도 가슴에 선명한 흰 털이 나 있는 갈색 푸들이었다. 결국 우리의 인연이 아니었던 강아지보다는, 오히려 상당히 진한 갈색의 털이었다. 그 덕분에 가슴의 흰 털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가슴부분에 흰털이 있음. 사람 잘 따름.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
보호소 철창에 갇혀있는데, 절묘하게도 눈이 철사 부분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불쌍하게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몸무게도,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마지노선(?)인 4kg 이하. 그리고 나이도 2살 정도로, 이미 성견의 나이로 접어들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게 큰 착각이었음을 우리는 상당히 나중에 깨닫게 된다...)
"얘 어때? 밝고 사람을 좋아한대. 얘로 입양하지 않을래?"
"음... 자기가 데려오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런데 미리 먼저 가서 한번 확인하는게 낫지 않을까?"
강아지가 있던 곳은 용인시 보호소였다. 지금도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음이 아파서 포인핸드 앱은 자주 보지 않게 되었다) 당시 용인시 보호소에서 작성했던 모든 유기견 공고 글은, 하나같이 이런 식으로 각각의 강아지들에 대해 애정어린, 그리고 자세한 설명을 남겨 놓았다. 단순히 신체적, 그리고 입질을 하는지 안하는지 여부 뿐만이 아닌, 각 아이들의 성격에 대해. '노는 걸 좋아함', '순하고 얌전한 아이', '매우 밝고 명랑한 성격' 등.
업무를 하는 중간에, 전화를 해 보았다.
"주말밖에 시간이 되지 않는데, 한 번 보러 가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토요일만 가능하시고요, 이 때까지 오시면 돼요."
처음 보러 갔을 때는, 지나치게 건강하고 고집이 센 우리 푸들 아이 뿐만이 아니라, 순하고 많이 주눅이 들어 있는 하얀 말티즈 아이를 함께 염두해 두고 보러 갔다. 그 당시 남편은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나 혼자 가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용인시 유기견 보호소는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내가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그나마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 앞에 있는 노선인 분당선을 타고 그토록 멀리 나갔다. 그리고 분당선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모노레일을 탈 수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서 택시를 잡았다) 몇 분을 더 갔다.
그 때의 풍경과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딱 3년 전 요맘때 즈음이었다. 출근길에 늘 애용하는 노선이지만, 늘 내리는 역을 훨씬 더 지나쳤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오히려 출퇴근 할 때보다 더 많은 듯 했다! 전철을 타고 쾌적하게 앉아서 갈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 나는 1시간 가까이 내내 서서 갔으니. 그리고 낯선 역에 내려서, 몇 번이고 지도를 확인하며 낯선 출구로 나왔다. 지명 자체는 회사 덕분에 상당히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그 풍경이 결코 낯익을 순 없었다. 똑같은 대한민국인데, 마치 해외에 여행을 나온 듯한 두근두근함을 느끼면서, 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님이 나에게 확인했다.
"이 주소로 가는 것 맞아요?"
(시에서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소이기 때문에, 상당히 middle of nowhere인 곳에 위치 해 있었으므로)
"네."
"용인시 유기견 보호소 맞아요?"
"네, 유기견을 입양할까 하고요."
용인시 유기견 보호소는, 한적한 곳에 있는 작은 2층정도의 건물이었다. 앞에 주차장 겸용 마당이 꽤나 있었는데, 중/대형견 정도의 아이들이 상당히 많이 묶여 있었다. 낯선 사람이 도착하자 대부분의 아이들은 꼬리를 흔들며 힘차게 짖어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오늘 만남을 예약했다고 하고 내 이름을 댔다. 미리 점찍어두었었던 공고번호를 말씀드리자, 직원 분께서 어떤 방에서부터 두 아이를 꺼내 오셨다.
아, 입양하던 그 순간 뿐만이 아니라, 나 혼자 찾아 갔었을 때 너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도 나에게는 생생하다.
갈색 푸들 아이는 방에서 나오자마자 미친 듯이 건물 내를 뛰어 다녔다. 사람이 있건 없건 별로 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저래도 괜찮나, 혹시 건물 현관문이 열리기라도 하면 밖에 바로 뛰어나가버리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사람이 절대 잡지 못할 정도로 쏜살같이 뛰어다니면서 여기 저기 마킹을 해댔다.
그에 반해 말티즈는 정말 얌전했다. 직원 분이 안고 나오셨는데 (푸들은 도저히 안고 있지 못할 정도로 흥분해서 환희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에게 건네 주자, 생전 처음 보는 나의 품에도 얌전히 몸을 맡겼다. 그 따뜻함이 몸에 그리고 마음에 사무쳤다. 아이는 조용히 떨면서 나에게 몸을 딱 붙였다.
"아이가 참 순하고 얌전하네요."
"그렇죠?"
그 뒤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분 정도 말티즈를 품에 안고 걸었다가 멈춰섰다가 하면서, 여전히 미친듯이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푸들을 보았다. 혼란스러웠다. 처음에 올 때에는 두 마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왔는데, 막상 둘을 동시에 보니 도저히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일단 둘의 성격과 매력이 너무 달랐으니. 하나는 얌전하고 순한 녀석, 또 하나는 밝고 활동적인 녀석.
일단 알겠다고 하고 다음 주에 연락을 다시 드리겠다고 하고 돌아서서 나왔던 것 같다. 다시, 왔던 낯선 길을 더듬어서 돌아가면서 (이번에는 시간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국내에서 모노레일도 타 봤다!) 계속 생각에 빠졌다. 어차피 우리는 맞벌이이고, 집에 한 마리만 있으면 외로울 텐데 아예 두 마리를 같이 데려올까? 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내지 않을까?
남편은, 이왕이면 푸들을 데려오고 싶지만 (어렸을 때 푸들을 맡아서 키웠던 경험이 있어서 푸들만 상당히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대로 하겠다고 했다. 나는 10년 가까이 친정에서 강아지를 기르긴 했지만, 한 마리만 길렀었다. 심지어 (상당히 큰 착각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이 한 녀석만으로도 충분히 손이 많이 가고 키우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당시 같은 부서에 계시던, 두 마리를 동시에 키우던 분에게 물어 보았다. 우연찮게도 이 분도 말티즈 한 마리와 푸들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먼저 한 마리를 기르다가, 나중에 한 마리를 더 데려오게 되었다고 했다.
"강아지 두 마리를 동시에 키우면, 한 마리만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더 손이 많이 가나요?"
"아, 그게 생각보다 그렇진 않아요. 한 마리만 키우는 것의 두 배가 아니라 더 적게 드는 것 같아요. 근데 그건 있어요. 미용을 하거나, 병원에 가거나... 돈은 두 배 이상으로 들어요."
"혹시 사람이 집에 었을 땐 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내나요?"
"음... 그런 애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우리집 애들은 그렇진 않아요. 서로 되게 사이 나빠요. 처음에 있던 애가 나중에 데리고 온 애를 계속 싫어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둘을 동시에 데리고 오면 좀 괜찮지 않을까? 자꾸만 이런 헛된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일단 누가 되었든 둘 중 하나는 데리고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어떤 때는 상당히 즉흥적이며, 무언가 꽂히면 바로 달리는 습성이 있다) 다시 보호소에 연락을 해 봤다. 사실 마음을 아직도 못 정했다. 둘 모두를 데리고 올지, 아니면 한 마리만 데리고 올지.
"지난 주에 봤었던 애들 둘 다 너무 마음에 걸려서요... 둘 다 데리고 오고 싶은데요."
"맞벌이라고 하셨잖아요? 괜찮으시겠어요?"
"그래도 낮에 자리를 비울 동안 둘이 함께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일단 한 마리를 먼저 데리고 가셨다가 나중에 결정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런 말을 듣고 나자, 바로 납득이 되었다. 그래, 일단 부모님의 케어 없이 나만의 강아지로 처음 키워 보는 것이고, 그리고 맞벌이라서 평일 중 상당 시간은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할 가능성이 있다! 그 때는 52시간 제한이 도입되기 훨씬 전이었기 때문에) 집을 비워야 하는데, 나중에 감당 못 하게 되는 것 보다 일단 한 마리를 먼저 데리고 와서 할만하다 싶으면 더 데리고 오는 게 낫지 않을까?
남편에게 다시 얘기를 해 보니, 남편은 기왕이면 푸들을 데려 오고 싶다고 했다. 남편의 푸들사랑은 정말 유별났다.
한 번 더 결심을 하고 나서, 일단 켄넬을 먼저 주문했다. 그리고 사료와 간식, 배변패드도.
그렇게,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우리는 길을 떠났다. 멀고 먼 길을.
이번에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새로 산 켄넬과 배변패드 그리고 간식을 싣고.
우리의 삶을 바꿔놓게 될 강아지를 데리러.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용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