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 마디가 생명을 구하다

by any

사실 내가 가장 쓰고 싶었던 에피소드는 이것이다. 처음 우리 아기 푸들을 데리고 왔을 때,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의 순간은 많았었다. 그 중 가장 정점을 찍었던 것은 내가 이 아이에게 세 번째로 심하게 물렸을 때였다.




처음 물렸던 것은 충격적이게도 데리고 온 바로 그 날 밤이었다. 뭔가 밤에 강아지한테 손을 댔는데 (때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그냥 갖다 댄 것) 갑자기 나를 물었다. 다행히 상처가 깊이 나진 않았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비명을 지르니 남편이 달려와서 개를 잡았다. 그리고는 혹독하게 혼냈다. 남편에게게도 몇 번 웡! 웡! 짖으며 반항하던 개는, 곧 이 사람은 이길 수 없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캐앵, 캐앵... 남편에게 몇 번 맞고 불쌍한 소리를 낸 개는 곧 얌전해졌다.

그리고 나서 개는 남편 말이라면 껌벅 죽게 됐다. 그런데 이게 참 희한한 것이, 남편이 단순히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에 진심으로 남편을 좋아하게 된 듯이 보였다. 좀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 맨날 밥을 주고 산책시키는 것은 난데? 항상 남편에게 달려가서 핥고 뽀뽀하고 아양을 부렸다. 그렇게 마음이 좀 서운해졌을 때 즈음이었다.




데리고 온 지 한두 달이 지났을 때,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상당히 심하게 개한테 손을 물렸다. 피가 엄청나게 났다. 나는 그 때에 또 혼자였는데, 야근중이던 남편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개가 물었으니 빨리 오라고. 나를 문 개를 심하게 혼냈지만, 개는 나에게 지려고 하지 않았다. 더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짖고 물려고 달려들었다. 결국 어찌어찌 혼내서 좀 더 조용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일단 캔넬에 가둬 놓고, 나는 남편이 올 때까지 울기도 하고 분노에 차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일을 정리한다는 변명으로 한두 시간은 지난 뒤 도착했는데, 같이 야근을 하시던 분이 오랫동안 개를 기르시고 개에 대체 잘 아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아마 우리 강아지는 나를 만만하게 보고, 남편만을 따르는 것 같다고. 당분간 강아지에게 좋은 것 (밥, 간식 등)은 모두 내가 하고 혼낼 때는 엄하게 혼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퉁퉁 부은 손으로 병원에 찾아 갔더니 의사가 깜짝 놀랬다.


"어쩌다 이러셨어요?"

"기르는 강아지한테 물렸어요..."

"아.. 가끔 계세요, 그런 분들이."


손을 소독해주시고, 약을 처방받았다. 손은 정말 아프고 또 물이 닿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불편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을 때, 상처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이것저것 애를 썼어야 했는데 정말 더 비참해졌다. 대체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이렇게 신경써 주는데, 뭐가 부족해서 나한테 이러나.


심지어 그 당시에는 모시던 임원분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셔서, 내 손을 보고는 이거 왜 이렇게 됐냐고 깜짝 놀라서 물으시다가 이유를 말하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왜 버려진 개 같은걸 데리고 와! 데리고 올거면 좋은 애를 돈 주고 사야지."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것 또한 큰 스트레스였다.

그렇지만 막상 퇴근을 하고 집에 갔을 때, 비빌 언덕이라고는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강아지는 언제 그런 사고가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애교를 부렸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나의 말도 잘 듣는 듯 해서 이제는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일단 남편은 나에게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자신은 사람을 무는 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다시 보호소에 돌려보낼래? 라고 물었는데, 나는 싫다고 했다.





그런데 또 한 두달이 흘렀을 때, 마지막 큰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물린 원인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뭔가 내가 강아지가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 행동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의도했던 것도 아니였고 정말 무심코 했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아지는 왁!! 하며 내 손을 물었다. 또다시 깊게 물려 피가 났다.


이 놈 봐라...?


그 때 나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 이 놈과 서열을 가리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고.



이 방법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내가 이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나를 비난할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나도 강아지를 오랫동안 키워 봤던 사람으로서, 첫 번째 강아지에게 이런 행동을 한 적은 맹세코 없었다. (일단 그 아이는 이 정도로 나를 깊고 세게 물었던 적이 없기도 하다.)

다만 지금도 변하지 않는 믿음은, 사람도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강아지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덜 폭력적인 방법으로 교화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사랑과 애정을 충분히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런다는 것은 마지막 수단을 시도해볼 때가 온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두꺼운 장갑을 꼈다.


"야! 너 일로 와. 오늘은 너 죽고 나 죽는 날이다."


그리고 개를 때리는데, 개는 번개같이 또 머리를 돌려 나를 물었다. 두꺼운 장갑을 껴서 그렇게 타격이 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몇 번 더 물리고 나니 그 장갑마저 뚫린 것 같았다. 아팠다. 정말 아팠는데, 그것보다도 나를 더 분노하게 했던 것은 배신감이었다. 죽을 뻔한 아이를 저 먼 용인까지 가서 데리고 왔는데. 항상 노심초사하며 야근을 덜 하고 약속을 덜 만드며 집에 달려와서 챙겨주는 것은 난데. 매일 밥을 챙겨주고, 아침에 출근할 때 노즈워크 코담요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만들고, 매일 춥고 피곤해도 산책을 데리고 가는 것은 난데. 왜 남편에게는 껌벅 죽고 나에게만 이러는 것일까.

그렇게 얼마간을 서로 으르렁거리고 소리지르며 싸웠더니, 그래도 역시 사람보다는 개가 더 빨리 지친 것 같았다. 처음에는 계속 짖어대며 물려고 하던 개도, 내가 좀처럼 물러서지 않으니 조금 조용해졌다. 헥헥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며 꼬리를 내리고, 개는 내 눈치를 보며 자꾸 저 멀리로 숨었다.


"야, 어디야! 당장 집에 안 들어 와?"

"큰일났어, 형들이 안 보내 준단 말야..."

"와이프가 개한테 물려서 피나잖아!"

"뭐? 물렸어? 왜 또?"

"몰라! 이 미친 개 어떻게 할거야!"



전화를 끊고 또 집에서 한참을 울고 있는데, 얼굴이 시뻘개진 남편이 뒤늦게 나타났다. 그러더니 또 개를 혼내기 시작했다.


"야, 너 엄마를 물면 어떻게 해! 죽고 싶어?"


그러더니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개를 바깥에 내몰았다.


"너같은 녀석은 집에 필요 없어. 나가."

"무슨 짓이야?"


남편은 문을 쾅 닫더니 잠깐 동안 밖에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간 혹할 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현관문을 다시 열었다.


그런데, 정말 한 5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개가 없어졌다. 나는 기겁했다.



"로로야, 로로! 어딨어!"


1층으로 내려갔는데도 (우리 집은 2층이다) 개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타다다닥

그런데 저 멀리에서 강아지가 뛰어와서 품에 안겼다. 잠깐 주차장 쪽에 나갔다가 돌아온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큰일날 뻔 했었다. 늦은 밤이고 아무런 사람도, 차도 없었기 때문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 했다.

다시 집에 데리고 왔는데, 나 역시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또 잃어버리진 않았으니 다행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얘랑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반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그 동안 서로 많이 신뢰가 쌓이고, 사랑한다고 느꼈는데. 그렇게 느낀 건 나뿐이었나?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물면 어쩌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할래, 다시 보호소에 데려다 줄래?"

"흑..."

"나는 데려다 줘도 상관 없어."

"로로 좋아하잖아. 귀여워했잖아."

"그래도 널 계속 이렇게 심하게 무는 건 안돼. 다치게 하는 건 있을 수 없어."



나는? 나는 어쩌고 싶지? 그 때 로로를 처음 데리고 오던 순간이 생각났다.



보호소에서 데리고 왔었을 때, 그 날은 토요일이어서 정직원분은 안 계시고 자원봉사자분만이 계셨었다. 한 주 전에 로로를 먼저 보러 갔었을 때에도, 갇혀 있던 비좁은 캔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로로는 미친듯이 이곳 저곳을 뛰어 다녔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흥분해서 좀처럼 멈추지 않는 강아지를 잡아다가 미리 준비해간 캔넬에 넣으려고 했다. 캔넬을 처음 써보는 거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낑낑거리는데, 봉사자분이 도와주셔서 캔넬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짱아야, 짱아야. (보호소에서 로로에게 붙여 준 이름은 '짱아'였었다.) 정말 축하해. 행복해야 해? 잘 살아~"


하면서 문가에 서서 우리를 배웅해주시던 분.

그렇게 시설이 열악하지 않은, 오히려 다른 보호소에 비해서는 깨끗하고 훌륭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그 보호소에서 나가는 로로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시고 앞 날을 축복해주시던 그 분.


그리고 처음 로로를 데리고 목욕을 시키러 집 근처 고급 애견샵에 갔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원래대로라면, 용인시 보호소에서 나올 때 중성화 수술도 해 주고 목욕도 해서 준비를 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하필 우리가 로로를 데리고 나올 때에는 서로 약간 착오가 있었고, 로로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게 되었었다.)

고급 애견샵에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지독하고 사람 손을 거부하는 강아지였지만 그곳에서는 싫은 티를 하나 내지 않고 받아 주셨었다. 너무 감사했다. 사실 앞서 다른 한 곳을 갔었는데, 거기서는 매우 꺼리는 눈치였어서 그냥 데리고 나왔었다.


목욕을 시켜 주신 미용사 분이 아이가 어땠다고 설명을 해 주시는데, 샵 사장님이 나타나셨다. 유기견을 처음 데리고 온 참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셨다.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상처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게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을 거에요. 힘내세요."


하며 우리에게 털실로 짠 기린 장난감을 하나 선물로도 주셨다. 이건 본인이 선물로 주시는 거라며.

우연인지, 로로는 그 인형을 정말 좋아했다. 다른 장난감보다도 훨씬 더 좋아했으며, 기운이 넘치는 로로가 털실 가닥으로 남길 때까지, 그 즈음에 사줬던 그 어떤 장난감들보다 더 오래 즐겁게 갖고 놀았었다.




우리가 데려 온, 인연이라고 믿어서 데리고 온 푸들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분명 그 때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었던 그 두 사람이 내게 해 준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에, 도저히 이 아이를 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 나마저 이 아이를 포기하면, 사람을 물어서 보호소에 다시 돌아온 이 아이는 정말 안락사를 피할 길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도 지난 반년 가까이 우리랑 울고 웃고 지지고 볶으며 지냈으니까.



"아니야... 다시 데리고 가진 말자. 우리가 잘 키우자."






결과적으로, 그 때 모든 판단이 옳았다. 우리 강아지는 그 이후로 그렇게 심하게 나를 문 적이 없다. 가끔씩 실수로 물 때가 있긴 한데, 피가 날 정도는 아니며 자기도 깜짝 놀라서 미안한 표시를 낸다. 그리고 요즘 강아지는 남편도다도 나를 더 좋아한다. 비록 아직도 뽀뽀를 잘 해주진 않지만. (대체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같이 집에 있을 때에는, 항상 나에게 붙어 있고 잠도 나에게 딱 붙어서 잔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내게 달라붙어 한참을 보챘다. 무릎위에 올라와서는 의자 팔걸이에 목을 기대고 졸고 있다.

무릎 위에 느껴지는 이 따스함과 묵직함이, 무엇보다도 행복하다.


애기야, 앞으로도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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