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키운 첫번째 강아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참 좋아했고, 심지어 이웃집의 강아지를 빌려(?) 와서 몇시간이고 놀아주곤 하였던 나였지만 사실 강아지를 키우는 데에는 반대였다. 아직도 일을 나가시는 우리 부모님과, 일주일 내내 야근하는 우리 언니 그리고 유학생 신분의 나. 과연 강아지가 온다 해도 누가 신경이나 써줄까?
하지만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너는 우리집에 왔다. 그리고 난 바로 사랑에 빠졌다. 사실 너는 내가 꿈꿔왔던 강아지는 아니였다. 어릴 때부터 내가 키우고 싶었던 건 말티즈나 하얀 푸들이었다. 너는 둘다 아니였고, 우리 집에 막 처음 온 너는 강아지라기보다 까맣고 작은 쥐 같았다. 내 손바닥 위에 성큼 올라오는 작은 몸을 꼬물꼬물 움직이는데, 까만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주둥이 부분에 흡사 중년 아저씨의 턱수염같은 갈색 털이 나 있었다.
너는 요크셔 테리어였다. 어릴 때 동네에는 요크셔 테리어가 많았다. 비단같은 털을 바각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니던 개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왔다. 앞에 누군가 지나가면 곧바로 컁컁 짖기 일쑤였다. 예쁘긴 하지만 친근하진 않은 강아지, 그게 요키에 대해 품고 있단 막연한 나의 생각이었다.
너는 참 전형적인 요키다. 깔끔떠는걸 좋아하고, 자기 기분이 내킬 때만 와서 애교를 부리다가 휙 가버린다. 기분이 동하지 않을 때 내가 성가시게 굴면 으르렁거리기까지 한다. 제 기분이 동하지 않으면 절대 뽀뽀해주지 않고, 억지로 얼굴을 갖다대면 고개를 휙 돌린다. 네 시선을 받고 뽀뽀를 받기 위해 앞에 매달려서 온갖 애교를 부리고 있는 우리 가족을 보고 있으면 개가 보기에도 참 한심하겠다 싶다. 물론 그중에 가장 애정을 갈구하는 건 나지만.
처음 너가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너를 챙겨준 건 나였다. 한국에 있는 한달의 시간 동안 너를 애지중지 돌봤다. 너를 보는 것은 애기 한명을 키우는 것 같았다. 시간이 되면 밥을 주고, 계속 쫓아다니면서 사고치지 않을까 감시하고. 쓰다듬어 주고 인형을 던지며 놀아 주고.
내 자만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너는 그땐 역시 날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몇번 쓰다듬어 주면 기분이 좋다는 듯 스르륵 눈을 감고는 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손끝에 닿는 나지막하고 따뜻한 숨결. 작은 몸에서 나오는 따끈한 열기.
우리가 맨 처음 이별하게 된 날이 기억나니? 너는 사실 그게 무슨 의미였던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집을 떠날 때마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듯한 울음소릴 내곤 했지만 너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집을 떠나던 그 순간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 너의 짧은 견생에 비추어 보았을 때 금방 올 것 같았겠지.
나는 지금도 너의 사진을 더 많이 찍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찍어도 찍어도 부족하다. 심지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너를 찍었던 핸드폰과 카메라는 버려지고 너의 사진 데이터는 어느 외장하드에 옮겨져 구석에서 쿨쿨 자고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일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역시 어린 시절 같다. 나는 너의 다시 오지 않을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놓쳐 버렸다. 지금 늘 들고 다니는 오래된 핸드폰에 그보다 더 오래된 너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게 참 아쉬운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