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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눈 Mar 16. 2019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

 

"배우는 학생은 여러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과목은 사람됨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야. 그러고 나서 재주를 배워야지. 사람도 되지 않았는데 관리가 되면 쉽게 지옥의 사자가 되는 법이다. 빈아, 사람이 되는 첫째 도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야하는 것이야."




"영혼들 각자가 스스로를 판결해야만 해. 이런 세계에서 살기에 영혼들은 운명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지. 그렇기에 인간세계에서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심도 깊게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영혼들이 환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완전히 자신의 이성을 따르는 거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길 원한다면 당연히 모든 것을 잊어야지. 그래야 영혼이 순수한 어린아이같이 무익무해하고 샘처럼 맑아지는 거 아니겠니.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악한 영혼들이 다시금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게 될 게야. 우선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순진무구하게 태어나야지."




"사람들이 행복을 원한다면 우선 마음을 비워야 해. 마음을 비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 그 속에 비로소 안정과 평온이 깃든다네. '깨끗해지기를 원한다면 우선 잊어야 한다.' 그래, 그렇게 모든 일을 전부 잊어야 하네. 선과 악 모두를 잊어야 해."




"나는 단지 아주 단순한 진리를 말하고 싶을 뿐이에요. 구체적인 한 사람을, 구체적인 한 방울의 피를 귀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커다란 집단을 귀중하게 여길 수 있다는 거죠?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좀더 복잡한 진리가 어디 따로 있나요?




"그것은 도살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사기꾼을 위대한 인물로, 지식인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네. 또한 모든 기반을 뒤엎고, 모든 진보를 뒤로 물러나게 밀어붙이지. 더욱 나쁜 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성과물을 완전히 깔아 뭉개고, 다른 사람의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 일에 만족을 느낀다는 사실이야. 그러므로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저항이 있어야 해. 어느 민족이든 다른 이의 지배의 굴레로부터 저항할 의지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런 민족은 영원히 노예로 사는 것이 마땅해."




"내가 입대한 게 어디 영도자가 되기 위해선가. 내가 입대한 것은 어디까지나 조국에 대해 인민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지. 예전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다시 당에 가입할 생각은 없어. 각자의 역할을 형식화된 틀에 짜맞추려고 당의 이름을 파는 인간들을 또다시 만나게 될까 봐 말이야."




"내 생각에 인간세계에는 단지 하나의 나라, 하나의 조국이 있을뿐이야. 그것은 지구야. ... 나는 다른 나라에 자신의 운명을 파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민족의 편에 서 있네."




"총명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시대에 근거해서 지구의 '도'에 부합되게 행동하는 것이지. 그것뿐이야."




"진정한 사람이 되려면 남의 좋은 마음을 악용해선 안 되지. 아마도 그건 사랑이 아니라, 정확히 얘기하자면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사랑하더라도 사랑의 표현은 정말 잘해야 돼. 사람들은 곧잘 그걸 혼동하지. 물론 구분이 쉬운 건 아니지만."




"말도 안 돼. 난 절대 그렇게 못해. 내가 아는 한 말이야, 예의란 문화의 표현인 거야. 그리고 문화란 신앙의 표현인 거고. 난 그자에 대한 신앙이 전혀 없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자에게 예의를 차릴 수 있겠냐. 거짓 예의는 더 나쁜 거야. 정말 혐오스러운 사기지."




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아랫사람을 다그치려 들지 않았다. '이건 반드시 이렇게 해야돼. 저건 반드시 저렇게 하도록 해'하며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병사들에게 깊은 감화력으로 핵심을 짚어주었다. 단지 병사들이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 결정해서 행동할 수 있도록 마음을 북돋워줄 뿐이었다.




"정치국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병사들이 솔직한 자세로 살고 사실대로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걸세. 병사들이 거짓된 삶을 살게 되면 그 폐해가 아주 커. 작전에 실패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거짓말 때문이지. 하급자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 상급에서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방법이 없어지는 거 아니겠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면 설정한 계획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어."




빈은 총을 쏘면서 동시에 옆으로 이동했다. 그는 지휘자로서의 직위를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는 지휘를 할 시간이 없었으며, 누구를 지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지금은 모든 부대원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휘할 때였다. 스스로 알아서 싸우면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때였다.




칸의 손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치 정처 없는 사람들처럼 무작정 걸었다. 때때로 몇 개의 폭탄이 주변에서 터졌으나, 그들은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앞으로 걷기만 할 뿐이었다. 예전에 적의 초소 앞을 통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짜내야 했을 때, 그들의 앞은 온통 장애물투성이였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아예 모든 것에 신경을 끊어버리자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옷마저 흠뻑 젖어 몹시 추웠으나 그들은 계속해서 걸었다. 숲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더는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저는 원래 원한 같은 걸 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원한 때문에 복수를 꿈꾸지도 않았구요.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원한은 인간의 영혼을 불구로 만들 뿐이죠. 원한은 단지 인생을 질식시킬 뿐이에요!"







반레의 소설에는 미국이 왜, 어떻게 해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담겨 있다. 미국이 베트남에 패배한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정글 때문도, 거미줄처럼 얽힌 땅굴 때문도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옳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무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보다 백 배는 옳고 천 배는 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전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반레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물자와 생명,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전쟁이 무엇이었느냐고 다시 물었을 때, 그는 역시 주저없이 대답했다. "침략과 파괴에 맞선 민족해방투쟁이었다." 바로 당신에게는 그 전쟁은 무엇이었느냐고 나는 또 물었다. 그는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그것은 내 개인에게도 민족해방투쟁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쟁'이란 단어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미국전쟁'이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전쟁을 해야 할 이유도, 전쟁을 할 의사도 없는 베트남 땅에 미국이 들어와 일으킨 전쟁이고, 그 미국이 떠나면서 끝이 난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유 없이 남의 나라 노예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뛰어들었던 전쟁, 그랬기에 그에게 전쟁은 고통스러웠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내 친구들의 얘기를 하고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의 모든 시와 소설, 영화는 살아남은 다섯을 대신해서 죽은 2백95명의 동료들을 기억하는 데 바쳐졌다.

반레는 묻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번역을 하는 동안 신효순, 심미선이라는 어린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외신을 통해 그 소식을 접한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반레 장편소설, 하재홍 옮김,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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