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여름이지 싶었는데 겨울이었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바다의 계절은 역시 여름이라고 생각했다. 눈부시게 파랗고 여차하면 뛰어들 수 있는 휴양지의 바다. 그리고 여름밤이면 내 고향 거제 몽돌해변에서 잔잔한 파도에 몽돌이 구르며 내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런데 겨울에, 그것도 흐리고 비가 추적거리는 시기에 제주에 간다면 예쁜 바다를 보긴 힘들겠구나 싶었다.
막상 한겨울의 제주바다를 마주하니 기우였다. 흐린 날에도 여전히 바다는 애매랄드 빛이었고, 누구도 뛰어들지 않은 탓인지 더 깨끗하고 맑았다. 바람이 차고 날카로웠지만 계속 멍하니 보고 서 있고 싶어졌다. 거제의 바다는 대체로 경사가 크고 물이 깊어서 춥고 흐릴수록 몇십 미터만 지나면 금방 짙은 파란색으로 바뀌는데 이번에 간 곳들은 대체로 수심이 얕아서 바닥이 보일 듯 밝고 맑은 빛을 띠었다.
겨울바다 예쁘구나. 여행 후 명절에 만난 고향친구도 진짜 바다는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는데 바다가 다시 보였다.
여행동안 내내 바람이 불어 파도도 강했는데, 괜히 뛰어들지 말고 멀리서 보기만 하라는 듯 여름보다 더 강하고 냉정해 보였다. 직장생활의 변화를 앞두고 여러 생각들이 많았는데 세차고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흐리고 어두워 더 새카만 현무암 해변과 차르르 밀려오는 파도에 더 하얗게 부서지는 제주 바다. 마흔 살이 넘어서야 겨울 바다의 맛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