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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아네스캠프 Jan 31. 2023

퇴사자 순례 카페

멋지게 지내고 계셔서 반갑고 부러운




몇 년 전, 13년을 보낸 첫 직장을 퇴사하면서 상사로 모셨던 분에게 인사를 드렸다. 마케팅 발령 후 팀장님이었는데 그 시절 아내와 직장동료로 결혼을 했고, 이후 퇴사할 때까지 사내부부로 지켜봐 주셨다.


그 후 2년이 지나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는데 그분 역시 퇴사 후 고향인 제주에 카페를 짓고 있다며 '카페 많이 다닌 마케터'에게 네이밍 의견을 물어보셨다. 후보 중 발음이 쉽고 인스타그램에 동명이 없는 이름을 추천했고 10표로 셈해주겠다 했다. 다른 지인에게도 좋은 이름이었는지 반년 뒤 그 이름의 카페가 오픈했다.


그리고 2023년 1월, 제주에 가족여행을 왔다며 불쑥 연락을 드렸고 주말 오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카페에 방문했다. 뵌 지 5년 가까이 지났지만 먼저 들어간 아내의 마스크 위 얼굴만 보고도 금방 눈인사로 맞아주셨다.



근사한 앞치마를 두르고 예쁜 잔을 닦고 있었는데 참 멋져 보였다. 항상 기획서나 제품출시안을 들고 마주했던 상사와 몇 년이 흘러 카페 카운터를 두고 맞이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간의 공백을 무시할 순 없는지 잠깐의 어색한 공기가 흘렀고 따뜻한 커피와 갓 구운 스콘을 먹으며 그제야 서로의 안부를 전했다.



재밌었던 건, 이곳이 전 직장 선후배 동료들이 퇴사 후 '순례자 코스'처럼 즐겨왔던 카페라는 것. 내 연락을 받고도 굳이 1월에 일주일 가까이 제주에 온 걸 보고 이미 짐작하고 계셨고(보통의 직장인은 1월 1일 자로 한 해 연차가 새로 생성되고, 1월에 연차 일주일을 쓰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알고 보니 다녀간 많은 직장 동료들도 그런 식이었던 것이다. 와, 다들 그랬었다니.



한적한 언덕에 오픈한 이 카페는 할머니 때부터 살았던 고향 생가와 밭으로 사용하던 터를 닦아 만든 곳이라 했다. 근처 함께 지은 집과 오가는 길에는 과실나무도 심어져 있었는데, 갓 따온 열매는 카페 메뉴에도 사용한단다.


모과라떼와 토마토 바질 스콘 엄지 척


커피와 디저트를 좋아하는 나도 '나중에 고향 가서 카페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 꿈을 이루고 멋지게 지내고 계신 분을 만나니 반갑고 부러웠다. 그리고 반대로 직장을 관두고 가족여행을 보내고 있는 나의 근황도 부럽다며 응원해 주셨다. 다른 일로 한이틀 마음이 어수선한 차였는데 아늑하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다른 계절에 다시 찾기로 인사를 나누고 카페를 나왔다. 이후로도 서로의 삶과 방식을 응원해 주는 사이로 이어질 테고, 이 카페는 뜬금없는 계절 퇴사자들이 불쑥 찾아 반가운 소식이 머물다 가는 곳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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