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필수코스는 바로 중국마트라구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포르투를 거쳐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생장이란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서 매일 20km가량을 걸으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그 길을 걷는 동안 4개의 대도시를 방문한다. 팜플로나, 로그로뇨, 레온 그리고 마지막 대도시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다. 지금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작은 한인마트도 생겼고, 팜플로나나 레온에서 나름 한국음식을 수급하는 것이 꽤 쉬웠다. 하지만 처음 산티아고에 떠났을 때만 해도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는 중국마트에서 신라면과 불닭볶음면이 아닌 한국라면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 갈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대도시이자 수도인 리스본에서 가장 큰 중국마트에 들러 오랜만에 한국의 매운맛으로 혀를 지지는 것이 목표였다. 블로그로 검색을 하며 찾아본 리스본의 중국마트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대단했다. 사진으로만 보는 그곳은 그냥 이름만 중국마트이지 한국마트나 다름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시안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콩나물, 배추, 상추, 깻잎, 숙주 등 유럽마트에서 보기 힘들지만 한국요리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재료를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그 글 덕분에 우리의 리스본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은 바로 '중국마트 방문하기'로 굳혀졌다. 리스본에서 유명한 해물밥 맛집이며,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보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구글지도에 리스본에서 제법 유명한 중국마트를 모두 표시를 해두었다. 준비는 끝났다. 숙소와 가장 가까우면서 큰 마트로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크고 원대한 계획을 마음에 품고 우리는 포르투에서 리스본을 연결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리스본은 끝없는 오르막과 끝없는 내리막으로 이루어진 도시 같았다. 어느 골목길로 들어서나 오르막이 나왔고, 어느 길로 나가나 내리막길이 나왔다. 가끔은 그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이어주는 에스컬레이터들도 있었다.
한국의 국토 70%가 산이었다면 리스본은 땅의 70%는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새삼 신기한 도시를 구경하는 것은 나중일이었다. 우리의 가장 첫 관광지는 바로 중국마트였으니까. 숙소 도착한 뒤에 간단하게 짐을 풀고 우리는 바로 마트를 구경 가기로 했다.
크고 작은 이동으로 기진맥진한 날, 그런 날이 아무것도 안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쉬기 제격이었다. 그동안 모아둔 튼튼한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우리는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내리며 가장 큰 마트로 길을 떠났다.
우리가 방문한 중국마트는 나름 꽤 큰 규모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유럽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작은 마트정도의 규모였는데, 유럽에서 처음 본 마트다운 마트였기에 더 크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마트답게 일렬도 진열된 냉동고도 있었고, 야채의 신선함을 관리해 줄 냉장고 있었다. 그리고 온갖 아시아 식재료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판대도 끝없이 놓여있었다.
이곳이 바로 낙원이었다. 마트에는 없는 게 없었다. 그곳은 양송이버섯 대신 팽이버섯이 있었고 바질대신 깻잎이 있었다. 또, 바질페스토 대신 콩으로 만든 된장, 미소된장, 두반장이 있었다. 칠리소스 대신 고추장이 있는 이곳이 바로 내가 지갑을 열어야 할 곳이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주방은 있지만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호스텔이었다. 이런 멋진 중국마트가 있었으면 돈을 더 주고라도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어비앤비를 빌렸을 텐데. 아쉬움은 뒤로하고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천국을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 동생은 동생 나름대로 신이 나서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들을 찾으며 매장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구석구석 마트를 정독한 이후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당장 먹고 싶은 재료들을 엄선해서 고르기로 했다. 나와 동생은 한배에서 태어나 같이 자랐지만 입맛이 비슷한 듯 달라 크고 작게 실랑이를 한 뒤 각자 원하는 재료로 조합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우리가 산 재료는 바로 쌀떡 1kg와 야채교자만두 1kg이었다. 이 재료를 산 이유는 단순했다. '라면에 떡과 만두를 넣어먹으면 떡만두라면을 먹을 수 있고, 지금 우리의 가방에 있는 재료인 고추장으로 떡볶이도 해 먹을 수 있다.'라고 동생을 설득해서 내가 쌀떡을 샀다.
내가 쌀떡을 포기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떡볶이를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려고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도저히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재료라도 얼마든지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동생이 그냥 넘어가 준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고작 3일 있는 리스본에서 먹겠다고 쌀떡 1kg과 야채교자만두 1kg을 샀다.
사이좋게 각각 떡 1kg와 만두 1kg를 나눠든 채 다시 수 없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지나 숙소 주방에 겨우 입성했다. 누구나 사용이 가능한 주방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냉동피자를 데워먹으려는 어린 친구들 3명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각자 자기 몫의 냉동피자를 1개씩 들고 주방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피자를 데우고 있는 그 친구들을 피해서 우리는 호스텔 주방에 오늘 사온 재료들을 하나씩 펼쳐 놓았다.
쌀떡, 만두, 양배추, 당근, 양파, 고추장, 라면을 주섬주섬 봉지에서 꺼냈다. 다행히 호스텔 주방에는 기름, 설탕과 소금 등 기본적인 양념이 준비되어 있었다. 호스텔은 이런 점이 참 좋다. 정말 필요한 재료는 이곳에서 지낸 누군가가 선의로 남겨두고 간다. 그 재료가 누군가에겐 필요 없는 재료일지라도 어떤 이에게는 지금 딱 필요한 재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지금의 나처럼.
사온 야채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다듬으면서 준비를 시작했다. 냄비에 물을 받아 데우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사서 리스본까지 이고 지고 온 700g의 고추장을 넣어 양념을 시작했다. 고추장을 기본으로 간단하게 소금, 설탕등을 넣어 간을 맞춘 뒤 잘 씻어둔 쌀떡을 넣었다. 떡이 어느 정도 말랑해진 뒤에 야채들을 넣고 동생이 고른 야채만두도 넣어서 완성했다.
여기까지 만든 뒤에도 무언가 간이 부족하다면 가방에서 잠자고 있던 치킨스톡을 쓰면 된다. 치킨스톡 한 알을 까서 MSG의 맛을 첨가하면 대부분은 맛이 좋다. 요리가 다 된 것 같을 때 잘 익은 쌀 떡을 하나 먹어 맛을 보면 된다.
"음! 맛있는데!?"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한국인의 혀를 자극하는 매콤함에 침이 절로 고였다. 정말로 리스본까지 와서 떡볶이를 만들어 먹은 보람이 있었다. 포르투에서부터 계속 리스본에 가면 가장 큰 중국마트에 갈 거라고 외친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고추장을 비벼 먹으며 매운맛을 해소했다고 했지만 음식으로 요리해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국의 맛과 얼은 뜨끈한 쌀과 국물에 있었다. 40일가량 유럽여행을 하면서 미처 해소하지 못한 내 안의 코리안본능이 드디어 해소되는 것이 느껴졌다.
떡볶이와 같이 먹으려고 산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이키니 돌아오고 싶은 리스본이고 그리워한 한국이고 다 필요 없었다. 그저 내가 지금 떡볶이와 맥주를 먹으며 있는 이 순간, 지금이 행복이고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