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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Feb 22. 2021

옳음과 옳음 사이

-내면 일기-

작은 일도 무시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은 옳고

모든 일을 다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는 이웃집 언니의 말도 옳을 터인데

나는,

지극히 정성을 다하여 무엇을 얻고자 함이며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는지

하나에 전부를 걸 용기는 고사하고 두루뭉술 살 주변머리가 내게 있을는지

나는,

옳음과 옳음 사이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다고 저었는데

잘하면 쇼펜하우어의 광란의 바다로 나갈 수도 있었는데*

나의,

길을 내는 일은 하늘 소관이지 계획할 바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앞서 걸은 누군가가 털버덩털버덩 떨어뜨린 부표에 마음이 걸려서

나의,

운명을 싣고 떠난 조각배는 문지방 한 번을 못 넘고 다시 방구석행이고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아 쉬이 잠들지 못할 밤은 어김없이 찾아들 테고




* “태산 같은 파도를 올렸다 내리면서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채 포효하는 광란의 바다 위에서 뱃사람 하나가 자신이 탄 보잘것없는 조각배를 믿고 의지하면서 그것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고통의 세계 한가운데에 인간 개개인은 개별화의 원리를 믿고 의지하면서 고요히 앉아 있다”, 니체, <비극의 탄생> 중에서.






조르조 데 키리고, <율리시스의 귀환>,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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