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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393 새벽부터 써내려간 쓸데없는 글

이해도가 떨어진다.

by Noname Nov 11. 2023

얼마전 길에서 "직원은 소모품이 아니다."라는 플랜카드를 봤다.


'소모품이 아니면 뭐지?'


비슷하게 본사 근처에는 호텔이 하나 있다. 호텔노동자들이 부당함을 호소하며 10년 가량 시위중이라고 한다. 


"청소 노동자에게 외국어 시험을 보게 했다."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호텔에서 일하는데 외국인 손님에게 언제든 응대하길 바라는게 회사의 문제일까? 서비스 정신이 없다면 호텔에서 일하면 안 된다. 청소가 전문직이 되려면 차별화가 필요한데, 그걸 못한거다. 


'그 10년이면 내 능력을 계발해서 호텔에서 붙잡을 정도의 사람이 되겠어.'


매사 이런 식이다. 

그러니 더더욱 기를 쓰고 자기계발을 했던 것 같다. 

사상이 너무 냉정한 구석이 있다. 적당히 살수도 있는데, 애쓰며 힘들게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무능력할 수 있으나 노력하지 않는 걸 싫어한다. 

분명 노동자들은 매일매일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 사람들일테다. 

아니,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저렇게 자신의 작은 밥그릇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능력이 없을 수록 더욱 그렇다. 

노력하긴 싫은데, 누가 나를 좀 책임져 줬으면 좋겠다. 전형적인 노예의식이다. 

자신이 무능력하니 타인을, 회사를 이용하려 든다.


그렇게 자신은 하라는대로 성실하게 살았는데 부당하다며 피해의식에 젖어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럴수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누구나 다 고생을 해가며 자기 능력을 계발하고,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살아가는건 아니니까.


지금 당장 회사 돈으로 사먹는 밥이 더 중요한 사람도 있으니까. 

회식이라는게 개인의 시간을 강제로 뺏기는 거라는 생각을 못한다. 

분명 경제 시간에 기회비용을 배웠을텐데도...

그저 공으로 비싼 밥 사먹는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나는 사람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러니 물품이 되는거다.


왜 흘러가면 돌아오지 못할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시간을 허비하는지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들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거 같았다. 

심지어 꼰대같은 상사가 있으면 그건 노동이나 다름없다.


회식 수당은 왜 없는 걸까 


이런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거쳐온 회사마다 사적으로 돈독한 관계는 많았다. 많아서 유지를 못해도 곁에 계셔주시는 분들도 많고. 정말 좋은 관계는 회사에서 뭘 하라고 한다고 이루어지진 않는다.


일로서 모인 사람들이 일로서 엮이다보면 형성되는게 관계이고, 신뢰이다. 그로써 일이 잘 되는거다. 

그 효과성을 고려해볼때 회식은 본말전도이다. 


술을 마셔야 본심이 술술 나온다고, 정보를 캐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영업에서는 술을 마시며 이루어진 호기로운 밀담이 자신의 체면 유지를 위해 이행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수 있으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무슨 큰 일을 한다고, 그걸 굳이 캐기까지 하나.


이런 부분에서는 굉장한 개인주의자이다. 


그런데 또 다른 부분에서는 굉장한 전체주의자이다. 


나란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데카르트의 사상을 배운 그 순간부터 데카르트를 혐오해왔는데, 나는 데카르트보다 더한 인간이다. 


얼마전 프로젝트의 수행사 품질 담당자 분께 이러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아 산출물 수준이 매우 낮으니 교육을 시행해서 시정해주시길 바란다고 말씀 드렸다. 


- 산출물 작성은 각자의 개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depth도 다르고, 작성 내용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걸 내가 간섭할 수는 없다.


- 아뇨, 품질담당자는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있는거 아닌가요? 전체 산출물을 다 보시고, 그 수준을 맞추셔야죠.


- 나는 산출물 양식만 보는 사람이에요. 품질은 업무를 몰라요. 그냥 날짜형식이나 이런게 맞는지 보고 안 맞는걸 수정하도록 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아연실색하여 팀장님께 "RPA 만들어서 품질담당자 다 없애버려야겠는데요?"라고 말했다.

팀장님은 박수를 쳐주셨다.


내부 프로젝트는 이런 일이 없다. CMMi인증을 받은 경험이 있어 품질 체계와 내용들이 매우 준수하게 지켜지고 있다. 품질 담당자는 안으로나 밖으로나 귀찮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건 인정하지만 산출물은 유지보수를 위해서 즉, 인간을 배제하기 위해서 완전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


30년 경력이 물경력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요즘 내가 하는 욕이 하나 있는데, "진짜 좋은 회사네!"이다.


그분도 그렇지만 우리 회사에도 그런 분들은 쎄고 쎘다.

팀빌딩을 싫다고 대놓고 말하고 다니며 실제로도 팀장역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팀장인 팀장도 있다.


또 정말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다. 내가 팀장일땐말야...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걸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적당히 선임차장까지 갈 수 있고, 그냥 그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임금피크가 올 것이고, 60살까지는 적당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출퇴근만 하면 된다.


사고를 쳐도 팀 이동이 있을 뿐이고, 그것도 직무순환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도 해준다. 


진짜 좋은 회사다. 


어쨌든 이러나 저러나 소모품이다. 


그 역할을 다하면 교체되는게 맞다. 


역사에 길이 길이 이름을 남긴 '오펜하이머 박사'님도 은퇴하고 연어가 준비된 파티에 초대 받아 상을 하나 받는 정도로 노년을 마무리한다. 


나이듦으로 인해 교체가 되는것과 회사의 쓰임에 맞지 않아 교체되는것과 뭐가 다르지.

능력이 충분하다면 나이가 들어도 명예직으로라도 붙드는게 회사다. 


누구나 그렇다.


길게 보든 짧게 보든 각자의 '쓰임'이 다하면 교체된다. 


지구에 있어서도, 인간이란 늘 새롭게 태어나고 죽는 순간의 존재, 소모품일 뿐이다. 지구는 필요하면 자정작용으로 그 개체를 줄이기도 한다. 


우주에게 있어서는 지구도 그렇다.

회사의 생태는 지구를 닮았다고, 가정의 생태 역시, 개인의 생태 역시 


교체될게 두렵다면 더 세심하거나, 더 강인하거나, 더 똑똑하거나, 더 리더십이 있거나 

그러나 그래봤자 교체된다. 


분명 나는 그 세계를 모른다. 


청소노동자가 인건비가 더 저렴한 청소노동자로, 심지어 불평불만도 없이 그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 매일 계단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닦는 사람으로 대체되는게 뭐가 이상한가


물론 후자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다면 그 부당함을 나 역시 가만히는 못볼 것 같다.


아 혹시, 제 할 일을 충분히 월등하게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배를 간 정약용선생님 같은 경우려나. 


그래서 억울함에 플랜카드를 붙인걸까?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는게 많은 걸까.


요즘 청년들은 왜 그렇게 회사를 잘 관두냐고? 

요즘 세대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회사를 교체할 뿐이다. 그들에겐 회사가 소모품이다.


이건 생활여건과 양육방식의 차이가 불러온 생태계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전공상관없이 먹고 살려하다보니 그냥저냥 들어간 회사가 IT회사인 20-30년 전 세대들과

IT를 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스펙을 쌓아서 커리어패스를 만드는 현재 세대들과는 그 차이가 크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당연히 있고.


세상은 참 복잡하다. 

굳이 이런걸 새벽부터 글로 쓰고 있는 나도 참 무사태평한 사람이구나.


이해하려 들지 말자. 어차피 오해일 뿐이다. 

분석하려 들지 말자. 판단하려 들지 말자.

편하게 당당히 요구하면서 살아도 괜찮다. 


일단 나는 나에게 도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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