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하기 위한 조건
외국 출장 중 자주 가던 어떤 나라의 어떤 호텔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매니저는 나를 알아보고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이후 내 체크인을 도와 준 것은 다른 직원이었다. 그녀는 인턴이었고 매니저는 그녀를 옆에서 교육 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날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그 나라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 진행하는 뒤늦은 체크인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은 좋은 케이스를 하나 건졌고 나는 그들의 교육 과정을 옆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
인턴인 그녀가 내 체크인을 무사히 성공했다. 그 순간 나는 매니저에게 말했다. "You are the best coach I've ever met."
매니저의 코칭은 간단했다. 왜 이 업무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깊었고 단순 시스템 입력은 옆에서 지켜보는 정도로 한발짝 물러섰다.
왜 디파짓이 예약금액보다 큰지, 왜 내 회원번호를 물어야 하는지, 어떤 항목을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지에 시간을 쏟았다. 그녀는 지적을 받은 사항을 꼬박꼬박 해냈고 출근할 필요가 없던 나는 차근차근 그것을 들었다. 이후 시스템 입력에서 매니저가 한 일은 "Yes. Yes."라든지 "No. Could you remeber what I've told you before?" 정도에서 머물렀다. 나는 그 구분에 감탄했다.
외국계 기업 입사요강을 보면 항상 들어있는 조건이 있다. "You have to be a fast learner.". 일을 빠르게 배운다는 말은 당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일을 빠르게 배우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머리가 좋다거나 / 눈치가 빠르다거나 / 친화력이 좋다거나 하는 류의 조건을 말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들을 갖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빠르게 업무를 배울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핵심은 이거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즉, 조금 늦더라도 물어보거나 매뉴얼을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시스템 입력 같은 부분과 달리 그 일이 진짜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호텔 디파짓을 생각해 보자. 호텔이 고객을 받는 데 있어서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는 분명하다. 그가 숙박비를 결제 않고 떠나는 데서 비롯되는 손실을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프론트 데스크 직원이 고객 체크인시 해야 할 말은 분명해 진다. '나는 당신을 못 믿어서 이 금액만큼 카드를 열어둡니다.'라고 말 해서는 안 된다. '예상하셨던 숙박비에 이러저러한 세금과 비용이 붙어 금액이 큽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고객을 믿지 않는 호텔에 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호텔은 고객을 안심시켜야 한다. '디파짓은 이러저러한 목적으로 예상하셨던 숙박비보다 크지만 체크 아웃시에 정상 결제가 된다면 그 때 디파짓은 취소되고 예상하신 그 금액이 비로소 결제된다.'고 설명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만약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면 고객센터로 연락하면 되고 그 번호는 여기여기이다.'라고 부연 한다면 금상첨화다.
호텔과 같은 대고객 업무가 아닌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다. 매뉴얼이나 인터넷을 뒤져보면 몇 초 만에 알 수 있는 정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고객이 어떤 질문을 할지 모르면 내가 백과사전을 외운다 한들 무용지물이다. (바보도 천재가 못 맞추는 문제를 낼 수 있음을 명심하라.)
핵심은 왜 이 일을 하는지 체득하는 것이다. 그런 뒤 그것을 (사내든 사외든) 고객들에게 티 안나게 묻어서 질문하거나 요청해서 원하는 결과 쪽으로 유인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일을 빠르게 배운다는 조건이 갖고 있는 진정한 함의다.
대부분 사람들은 박학다식함에 높은 비중을 둔다. 그러나 이에는 한계가 있다. 내 기억력을 믿기 보다는 빠른 타자 능력을 키우는 게 도움될지 모른다. 고객(이나 선배가) 뜻밖의 질문을 하더라도 빠른 검색으로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 일을 하는지 생각하라.
단순 지식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당신은 AI에 대체될 1순위가 될지도 모른다.
그 일이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라.
그게 매니저다.
어떻게 하면 그 일을 개선할 수 있을지 생각하라.
그것이 당신을 에이스로 이끌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할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덤이다. (업무에 병목 현상을 만들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사람을 경계하라. 대부분 갑질이 여기서 비롯 되거니와 그들의 왜곡된 불안함을 푸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이제 알겠는가? 일을 빨리 배우는 사람은 그 업무를 왜하는지 빨리 느끼는 사람을 일컫는다. 단순히 시스템을 빨리 익히거나 규정을 달달 외우는 사람을 말 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핵심으로 직진하는 그대,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