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1) 내 스펙의 양(陽, 밝음)
나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경제학은 통계학을 많이 쓴다. 그리고 나는 80년대 초반 생이다. 초등학교 시절 286 컴퓨터가 나왔다. 게다가 손이 빨랐다. 대학교 때 리포트를 많이 썼고, 싸이월드에 일기 형식의 글들도 매주 두세 편씩 적었다.
2) 그러나 내가 가진 음(陰, 어두움)
대학시절 통계든 계량이든 대부분 증명을 주로 다루는 수업을 들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접한 게 아니라 수식을 갖고 놀았다.(사실 수식이 나를 갖고 놀았지.) 80년대 초반 생들처럼 어떤 신 문물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양 극단 중 한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에 푹 빠지거나, 아니면 삶의 범위에는 넣되 크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컴퓨터에 관한 한 나는 후자였다. 리포트를 많이 썼다는 것은 PPT나 엑셀을 쓰지 않는 수업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아직도 OHP 프로젝터는 널리 쓰이고 있었다.)
3) 회사에서 처음으로 엑셀을 열었다.
회사는 내 스펙의 밝은 점만 봤다. 그렇게 참석한 어떤 회의에서 처음으로 X가 그려진 아이콘을 더블 클릭했다. 즉 엑셀 파일을 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서원들은 실망했고, 나는 속상했다. 심지어 고성까지 나왔지만 부서원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바쁜 시간에 그 많은 사람을 두고, 그 방대한 데이터의 끝까지 가는 것을 못했다. Ctrl + 방향키 조합을 몰라서 아래로 가는 화살표만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나는 PC를 다른 간부에게 넘겨야 했다.
다행히도 운명은 그다음 날 바뀌었다. PPT와 엑셀 모두에 엄청나게 능한 선임 간부 한분이 내게 엑셀 기초편 책을 건네주셨다. 그리고 하루에 몇십 분씩 짬을 내서 나를 가르쳐 주셨다. 실습에 유용한 데이터를 넘겨주시고, 기본기를 익힌 다음에는 귀납적으로 실력을 쌓는 노하우도 알려 주셨다. 나는 포털에 내가 모르는 내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엑셀. 특정한 조건의 합 구하기. 함수
내가 SUMIF 함수를 배웠던 질문이다. 그 정도로 나는 엑셀을 몰랐다. 세상에는 많은 고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많은 질문에 대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답을 달아 주었다. 사실 직접 질문을 올린 적은 거의 없다. 나와 유사한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질문을 올리는 이들이 많았기에 그들이 올려놓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보며 배웠다.
회사에서 흔치 않은 1:1 교습이었을 것이다. 시간은 짧았지만 방법론을 알았기에 스스로 터득하는 속도가 내가 생각해도 빨랐다.
회의장에서 남들에게 피해를 줬던 것. 대학 시절 내내 엑셀, PPT를 피해 다닌 것을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분했다. 그 분함을 이기고자 회사에서 쓰는 각종 문서 프로그램도 빠르게 익혔다. 단락 구성, 페이지 나누기, 표 작성 등 직장인들이 보고서 작성할 때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따로 공부를 더 했다.
6개월이 지나자 그러한 프로그램들에 대해 주변 선배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내 경험을 얘기했다. 내 자랑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나는 운이 좋게 신입사원 시절 선배로부터 내 약점을 보완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시스템이나 프로그램 자체가 업무 역량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을 잘 다루면 역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 단축키를 잘 써서 손이 빠르면 그만큼 생각을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처음 들어온 신입 사원이나, 그 부서로 처음 배치를 받은 후배를 위한 매뉴얼이 잘 갖춰진 곳은 드물다. 좋은 선배를 만나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렇다고 현실을 탓할 수는 없다. 선배들의 대부분은 선하다. 후배가 곤란을 겪을 때 그 마음은 주로 이렇게 표현이 된다.
그거 좀 이따 내가 알려줄게. 잠시만 네가 혼자서 좀 하고 있어봐.
내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부터 끄고 났더니, 이미 늦은 밤이다. 후배는 머리를 싸매고 어느 정도 진도를 나갔다. 지금 와서 다시 처음부터 하자니 후배의 얼굴에 묻어나는 피로가 보인다. 내 마음도 일단 집에 가서 씻고 싶은 생각이 더 크다.
"내일 다시 얘기하자."
이 말과 함께 후배는 배움의 기회를 상실한다. 하지만 악의는 없었다. 타이밍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말 중요한 보고나 작업이 있어 그 불을 끄고 있는 중이라면 그것을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30분 정도 시간을 뺄 정도의 여유가 있다. 화장실도 안 가고 밥도 안 먹고 일만 하는 사람은 없다.
후배가 어떤 것을 새로 할 때는 우선 가르쳐야 한다. 하다못해 그 일의 의미를 설명한다든지, 어떤 자료를 보고 있으라든지, 어떤 식으로 배우면 좋겠다든지(방법론) 간단하게라도 언질을 줘야 한다. 그래야 혼자서 느리게 자신의 업무를 진행하고 난 후배의 얼굴에서 피로감과 더불어 '보람'도 볼 수 있다.
우선 가르치려면 내 마음을 이겨야 한다. 후배를 위한 지금의 30분을, '포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마감에 쫓긴 작가가 글을 더 잘 뽑아내듯, 지금 30분 늦춰진 내 일이 후반부에 속도가 더 붙어 평소보다 빠르게 집에 갈지도 모를 일이다. 즉 미래를 고민하지 말고 일단 '현재'에 집중을 해야 한다. 지금 내 눈앞에서 불안해 하고 있는 후배,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도 못 잡고 있는 후배를 위해 적어도 이정표는 안겨줘야 하는 것이다.
포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신입사원 시절을 떠 올리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하고, 지금이 아니면 이 후배는 영영 이 일을 제대로 못 배운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후배 교육을 등한시하는 사람은 영원히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에 델 가능성이 높다. 반면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의 온도를 조금만 참고 후배를 가르쳐 주는 선배는 나중에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그 후배와 함께 일들을 처리해 나갈 수 있다.
후배가 기초적인 일을 배우고 그것에 자리를 잡으면 그 일을 후배에게 어사인 할 수 있다. 피드백해 주는 빈도도 점점 줄어들고 후배가 그 일을 안정적으로 해내기 시작하면 이젠 선배가 하던 일들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같이 나눌 수 있다.
가르쳐 주는 항목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초반부 며칠에서 몇 개월 사이 매일 30분 정도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후배와 함께하는 남은 기간 동안 선배는 더 크고 중요한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후배와 선배 사이에 맺어지는 끈끈한 정은 덤이다.
인사에서 교육을 주관하겠지만 인사가 회사 전반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일일이 다룰 수 없다. 선배가 후배를 교육하는 것은 각 부서들의 자생력을 높여준다. 일종의 회사 생태계를 유지하는 형상이다. 가정에서 기본 교육과 보살핌을 받고 학교와 직장을 거치며 자기 미래를 꾸려나가는 우리 삶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려면 그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그거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면 돼'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후배를 잘 가르치는 선배가 있다는 것은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다는 뜻과 동일하다. 그런 사람에게서 배운 후배 역시 잘 될 가능성이 크다. 회사는 일 잘하는 사람을 두 명 얻게 된 셈이다. 부서마다 이런 순기능의 프로세스가 있다면 두 명이 아니라 이백 명이 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동료나 후배를 돕는 것을 직원의 의무로 꼽는 회사들도 있다. 그런 상호작용 중에 일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도출되는 것은 엄연한 순기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를 가르치지 않는 선배들을 본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들이 가진 특성은 아래 세 가지 중의 하나로 수렴했다. ① 그 일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무지) ② 더 큰 업무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없거나(현실 안주) ③ 지금 하는 일에서 예상되는 칭찬을 독점하고 싶다거나(근시안적 사고).
어떤 것이든 자충수다.
후배를 가르치면 자신의 무지도 함께 깨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만 안주하면 언젠가 업무 난이도와 직급 사이에 역전이 일어난다. 근시안적 사고인 사람 옆에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함께' 가는 직장인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