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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Feb 09. 2019

회사에서의 평가

채점자가 될 것인가 교사가 될 것인가.

최근 평가와 관련된 일을 했다. 아마 큰 변화가 없다면 올해도 그 일을 계속 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업무를 하는 동안 느꼈던 점을 기록해 둔다. 좀 더 업력을 쌓은 뒤에 생각도 한결 정돈되길 빈다.




사람에 대한 평가든 조직에 대한 평가든 똑같다. 성향을 가르는 것은 의외로 작은 데서 찾을 수 있다. 한끝 차이로 성향이 나뉜다.


채점자가 될 것인가?
교사가 될 것인가?


굳이 평가를 결정짓는 권한까지 가진 게 아닐지라도, 그저 평가 업무에 손을 댈 수 있는 순간 많은 권한을 지닌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내가 그 사람, 그 조직의 등급을 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보통의 사람에게 자만심을 심어주기 충분하다. 단순 실무 서포터도 마찬가지다. 나는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알기 때문이다. '당신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군요? 하지만 당신은 결국 xxx점입니다.' 하는 생각이 안 들 수 있을까? 그래서 대부분 회사에서 평가 업무 담당자를 극히 소수로 제한한다.


나 역시 임원이 아니니 실무자였을 뿐이었지만, 업무를 하는 내내 입단속에 대한 주의를 수백번은 들어야 했다. 비슷한 루트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여느때와 같이 소수 인력들이 파트장께 보고를 드린 어느 날이었다. 어떤 이슈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화는 흘러 흘러 평가자의 태도에 대한 주제로 옮아갔다.


작게는 입조심의 문제, 크게는 개인과 조직의 성장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오롯이 평가자의 태도에 달렸다는 얘기를 나눴다. 단순히 주어진 팩트를 놓고 점수만 매기는 채점자가 될지, 아니면 그 사람 또는 조직의 성장을 이끌어 내는 교사가 될지 그 판단이 중요하다는 게 골자였다.


채점자가 되면 일은 쉽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각 대상들의 성취도를 점수 매기고 서열을 정하면 된다. 물론 그만큼 중립적이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나 조직이라도 못하면 꼴등이 될 뿐이다.


교사가 되면 일이 어렵다. 이 사람, 조직은 가능성이 있는데 왜 이번 실적이 부진했는지, 평가 기준이 현실에 어긋남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 조직의 강점을 찾아 그것을 키우게 유인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비평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평가 업무에 치명적이다. 하지만 분명 필요한 태도다.




정답은 없겠지만 업무를 하며 내가 택한 것은 이거였다.


올해의 업무는 채점자로서 실무를 행하고,
교사의 마음으로 입단속을 한다.
내년의 기준을 위한 고민은 교사로서 하고,
의견 수렴은 채점자의 마음으로 편견없이 받는다.


정온 동물인 인간인지라 변온 동물인 카멜레온 처럼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태도를 바꾸는 게 어렵다. 대신 의지가 있다면 하나의 확고한 기준을 따르긴 쉽다. 적어도 평가를 하는 입장에서 내 기준은 이것으로 정했다. 따르다가 더 나은 의견이 있거나 또다른 깨우침이 들면 다시 수정하고 후임자에게 남김없이 전달할 일이다.





매주 하루.

그 하루 중 한 시간.

한 명을 위한 카페 창가 자리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잡상들에 알맹이가 담기는 생각의 텃밭이 되길.


매주,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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