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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Mar 10. 2018

52시간 근무에 앞서 (1)

연역적 사고의 필요성

0. 잡상의 발단


원래 시간의 힘에 대한 시리즈물을 써 보려 했는데, 샤워하면서 이런저런 잡상을 하다가 몇 가지 생각 꼭지들은 52시간 근무에 대한 시리즈로 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힘에 대한 것은 다시 시간의 힘에 기대보고, 우선 52시간 근무에 대한 글을 52시간 내에 써보려 한다. (아.. 아재의 Rhyme이란)




1. 문득 떠오른 일화


팀을 꾸려 어떤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정기 보고 전날이었다. 어떤 안건에 대한 근거 자료가 필요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퍼뜩 계산을 해 보니 이런저런 논리를 전제로 깔면 지난 1~2년 치 자료면 충분히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의견을 내자, 일부가 최소 5년 치는 기본이라고 반박했다.


팀 프로젝트라서 개별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5년 치를 작성하는 쪽으로 의사결정이 났다. 작업에 앞서 나는 위에서 언급한 전제를 바탕으로 대략적인 계산을 마치고선 '결과가 이러할 것이다. 혹은 그렇게 나와야 한다.'라고 천명(?!)을 했다. 보고가 다음날이라 팀원들은 새벽까지 야근을 하며 5년 치 방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방대한 자료라 추출에만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추출된 데이터를 엑셀로 이리저리 돌려보자 결과가 나왔다. 내 예상과 맞았다.


이때 나는 젊었고, 혈기가 왕성했다. "그것 보십시오! 어제 야근 안 했어도 됐다니까용?!". 다음날 보고를 마치고서 식사 자리에서 연역적 사고의 힘을 피력했다. 팀원들은 웃으며 들어주었다. 식사가 끝나 갈 무렵, 가장 선임이 교통정리를 했다.


밑 자료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만큼 논리력이 강해지잖아?




2. 상황이 바뀌었다.


위의 일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① Back data를 방대하게 준비하기 위해 야근을 했다는 점이다.

② 연역적으로 추론한 것과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귀납적 결론이 같았다는 점이다.

("내가 미래를 맞췄다!"라는 항목은 당연히 포함되지 않는다.)


주 52시간 근무가 법규화 되면 ①의 경우는 피해야 하는 제 1의 법칙이 된다. 임원이 간단한 보고 하나 요청을 했는데 이런저런 백업 데이터를 갖다 붙이다 보면 자칫 회사가 "위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고 중요한 보고서에 결론 한 줄만을 딸랑 넣을 수는 없다. 그래서 ②로 발상을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




3. 데이터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


연역적 사고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3단 논법식 사고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교과서적 정의에서 벗어나자. 무턱대고 데이터부터 수집하는 자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를 연역적 사고라고 통칭할 수도 있다. 적어도 직장 생활에선 그렇다.


방대한 데이터가 손에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다. 손에 갖고 놀 무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부서 막내에게 기껏 방대한 데이터를 뽑으라 해 놓고 '아 맞다 xx 항목도 추가해줘.'라고 하면서 막내를 다시 괴롭힌다. 자주 본 광경이다. 그리고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제일 먼저 개선해야 할 광경이다.


그 사람이 단단히 착각하는 게 있다. 업무에서 무기는 방대한 데이터만 있는 게 아니다. 더 강력한 무기가 당신의 머릿속에 있다. 대부분 이를 잊고 산다. 그 영업에 대한 지난 히스토리, 고위 임원들의 미묘한 의사결정,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예측 등은 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


예전 Big data가 주목받을 때 몇몇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중요한 건 어마어마한 개수의 data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하는 사용자의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 사람은 이런 관점 역시 잊고 있다. 사실 자신은 데이터가 있어야 안심이 된다지만 대부분은 어떻게 얘기를 풀어갈지 머릿속에 큰 틀이 짜여 있다. 많은 데이터가 안심이 되는 이유는 그 틀에 맞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당신이 모르는 새 당신 머리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




4. 연역적 사고의 힘


연역적 사고가 갖는 힘은 분명하다.


① 가장 큰 효과는 효율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무턱대고 데이터를 추출하기 이전에 '어떤 데이터가 필요할지' 먼저 판단하는 시간을 갖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몇 분 정도의 투자로 몇 시간을 아낀다.


② 검산이 가능하다.

데이터를 받았는데 방향성이나 추세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은 그 전 3년 치를 더 받아보라고 한다. -_-) 하지만 연역적 사고는 일단 논리 전개를 해보고 그에 합당한 근거자료가 없을 경우, '논리 자체를 바꾸면' 된다. 즉 수학에서의 검산처럼 맞는지 틀린지 판단을 하기 용이하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을 생각해 보자. "모의고사 풀 때 빈 공간에 풀이과정을 깔끔하게 적어라~ 그래야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경우에 눈으로라도 검산을 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말씀 하시는 수학 선생님 많지 않았는가? 연역적 사고도 마찬가지다. (수학이 연역적 사고의 대표 분야이기도 하다.)


③ 논리력을 키울 수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두고 추세를 찾아내는 것도 논리력이긴 하다. 하지만 전제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이야 말로 논리력의 정점이다. 나의 연역과 상대의 연역으로 자웅을 겨룰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의견의 조율이 더 쉽다. 혹은 과정은 험난할지라도 결정이 된 이후 수긍이 쉽다. "일단 5년 치 자료를 뽑지."보다야 당연히 낫지 않겠는가.




5. 52시간의 힘을 믿으며.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환호성도 있고 우는 목소리도 들린다. 나는 정치 관련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제도에 대한 논의들은 정-반-합을 거쳐 옳게 정착이 되리라 믿는다.


다만 직장,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나와 내 동료들이 받는 영향은 최대한 좋게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변화의 순간을 개선 및 역량 향상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연역적 사고를 연습할 좋은 기회다. 데이터가 손에 없어도 내 머리가 알고 있는 것들의 힘을 믿자.

타인의 논리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된다. 공감하는 역량을 이참에 키워보자.


어떤 면에서는 신이 나기도 한다. 서로의 논리로 진검 승부를 하는 회의장을 상상해 보라! 꼭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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