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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Apr 14. 2018

52시간 근무에 앞서 (3) (완결)

진짜 실무에서 개선할 부분들은?

0. 지난 시리즈


1편에서는 연역적 사고의 필요성을 다뤘다. 2편에서는 보고서 / 회의 / 메일 / 출장이라는 도구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이 무엇인지 각 업무 단계마다 고민하는 것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라 말했다.


52시간 근무에 앞서 (1) 링크

52시간 근무에 앞서 (2) 링크


모두들 느끼겠지만 이들은 이론적인 논의에 가깝다. 소위 '말은 좋은데 그래서 실현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이번 편에서는 진짜 실무에서 개선할 부분에 대해 고민해 보려 한다. 물론 나는 전능한 사람이 아니므로 정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고민들이 모이면 언젠가 큰 개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 믿으며 글을 써내려 간다.


(성공한 전략도 무수한 시도 중 터지는 잭팟이라 말한 적 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59




1-1. 없어져도 무방한 도구 찾기 ①  : 보고서


2편에서 다뤘던 '4대 업무 도구'를 다시 불러오겠다. 보고서 / 회의 / 메일 / 출장. 이 중 없어도 무방한 것이 있을까? 존재한다면 4가지 중 무엇일까?


싫은 상사나 동료를 마주 보는 회의를 당장 떠올리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좋고 싫음)을 떠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각 도구들이 없어지는 경우를 하나씩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논리상 각 도구들의 단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장점들을 하나씩 삭제하는 방식을 사용하려 한다.


보고서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앞서 보고서가 갖는 장점으로 증거력과 의사결정력을 언급했다.


보고서가 없어져도 메일이나 회의록으로 증거력을 남길 수 있다.
 의사결정력은 회의를 통해서 대체 가능하다.



표는 이렇고 고치고, 문단 구성은 이렇게 바꾸고...




1-2. 없어져도 무방한 도구 찾기 ② : 회의 / 출장


회의가 갖는 장점으로 구두로 전달하는 편리성과 다수에 동시 전달하는 전파력을 언급했다.


말보다는 좀 덜하지만 캐주얼하게 쓸 수 있는 메일로 회의 편리성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
또한 메일은 물리적 인원 제한이 없으므로 전파력은 오히려 회의에 앞선다.


출장의 장점은 현장감과 deep talking에 있다.


하지만 해외에 지사가 있는 회사라면 굳이 본사에서 다 나가 볼 필요는 없다. 되레 해외 지사의 현지 직원이 그 나라 문화까지 덧붙여 설명이 가능하다. 보고의 주체가 같은 회사 지사 직원이므로 deep talking도 못할 바 없다. 또한 회의라는 도구에 '화상회의, 콘퍼런스 콜'까지 넣는다면 두 항목 모두 회의로 대체 가능하다.




2. 없어져도 무방한 도구에서 메일을 제외한 이유


위의 논의들을 부등호로 나타내 보자. 대체 가능한 도구들이 기존 도구보다 더 낫다고 단순히 표현한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메일 > 보고서
메일 > 회의 > 출장


즉 메일은 다른 모든 수단에서 대체 가능한 도구다. 그러므로 메일은 없앨 수 없다.




3. 그렇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자. 


내가 회사에 대해 얘기를 할 때 꼭 언급하는 조건이 두 개 있다. 회사는 돈을 버는 조직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다. 그리고 회사는 결국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것이 두 번째다. 여기서는 두 번째에 주목해 보자.


회사는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다. 성정이 급한 사람은 관련자를 일시에 모아 직접 대면하고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또한 메일로 받은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뒤에 떠오르는 추가 질문이 메일 회신으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당사자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 즉 사람의 성정이 개입되는 이상 회의를 완전히 없애긴 힘들다.


출장도 마찬가지다. 2편에서 예로써 언급도 했던 것처럼, 책임자의 실제 서명이 필요하다거나 중차대한 사안이라면 그 나라에 지사가 있든 없든 출장을 가는 게 맞다.


요약하자면 회의와 출장은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되,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4. 보고서가 완전히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반면 보고서는 다르다. 메일로 문서화된 증거를 남길 수 있고,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력을 보장할 수 있다. 관련된 데이터, 현안 사례, 주고받은 메일, 계약서 등을 한 데 모으면 rough 한 백서(해당 건에 대한 백과사전)나 다름없다.


보고서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보고서가 없는 회사가 넘어야 할 산들을 생각해 보자. (상상해 보자가 맞겠지만)


1) 의사을 위해 그간의 진행 현황, 필요한 back data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힘들다.
2) 안건의 규모에 상응하는 결재 단계를 거치기 힘들다. (수천억짜리 투자 건이라 파트장 > 상무 > 전무 > 부사장 > 사장 > 이사회 등등의 긴 결재단계가 있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들의 사인을 어디다 남겨둘 것인가?)
3) 유관 부서의 의견을 취합하기 어렵다. (어떤 투자 건에 대해, 투자 / 재무 / 세무 / 기획 / 리스크 관련 부서 등등이 의견을 낸다면 어디다 남겨둘 것인가?)


사실 몇 가지 나열을 하긴 했지만 이 산들을 넘는 데는 창의력이 필요하지 않다. 모두 쉽게 넘을 수 있는 산들이며 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은 오로지 '문화 내지는 인식 변화의 어려움' 뿐이다.


1)은 그간의 메일을 종합하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data가 필요한 경우 이를 뒤에다 붙이는 형식이면 된다.

2)는 위에서 말한 자료의 종합본 앞에 표지처럼 결재 칸을 만들어 두면 된다.

3)은 결재(표지) 페이지 뒤에 자료 종합본을 바탕으로 판단한 유관부서의 의견을 추가하면 된다.


문화 내지 인식 변화의 어려움이란 이런 혁신을 업무에 녹여내는 사람들의 태도를 말한다.

"안그래도 여러 업무로 바쁜데 내가 어느 세월에 이 메일과 자료들을 다 읽나?"

"안건을 주관하는 사람이 이거 하나 종합할 정도의 역량이 없다는 것은 사업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 아닌가?"


이 역시 넘을 수 있는 산이다. 정말 간략히 요약본 한 페이지만 더 붙이면 된다. 주요 항목에 "xx번째 메일을 참고하면 내역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석을 달아주면 금상첨화다.




5. 양철북 소년과 같이


해외 직원에게 보고서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분은 나의 Report 요구에 정형화된 형식 없이 줄글로 줄줄줄 적어서 보내주었다. 그분은 한글을 모르니 한국 보고서에 쓰는 문체를 알 리 없다. 나도 모르게 약식 한자가 가득한 보고서가 익숙해지긴 했었는지 그 워드 파일을 열고 잠깐 멍했던 기억이 난다.


곰곰 생각하면 Report란 그렇다. 대학 시절 교수님은 우리에게 과제를 주시면서 주제와 분량(조금 까다로운 분은 글자 크기 정도까지)만 언급하셨을 뿐 나머지는 모두 학생의 재량에 맡겼다. 마감이 지나면 다양한 양식과 다양한 폰트, 다양한 분량으로 작성한 리포트가 모인다. 그러면 담당자는 삽시간에 이들을 읽고 채점을 한다. 교수님이든 조교님이든 누가 읽든지 마찬가지다. 딱히 공정성에 해가 가는 경우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주제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날 것의 안건을 바로 보고서로 쓰는 경우는 없다. 보고서로 올릴 정도면 증거력을 위해서든 의사결정력을 위해서는 이미 나름의 숙성기간을 거친 안건들이 절대다수다. 그렇다면 대학교 교수님과 조교님이 드러하듯 회사에서도 양식이나 구성이 문제 될 것 없다는 뜻이다.


일부 회사에서 정형화된 보고서 포맷을 정해두고 경우에 따라 적합한 것을 골라 제출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현실에서는 정형화된 몇 개의 범주로 안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양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보고서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진행된 히스토리를 한 데 모으고, 그에 대해 익숙한 사람끼리 모여 회의한 뒤 결재 페이지에 서명하면 된다.


양철북 주인공이 아이로 머물렀던 것은 '스스로 성장을 멈추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양철북 소년과 같이 '보고서가 없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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