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단계별 비교우위 실현하기
1편에서는 연역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해 다뤘다. 3단 논법과 같이 엄밀한 연역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무분별하게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형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떤 자료 작성을 하기에 앞서 '과연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논리를 전개할 때에는 적절한 '가정'을 세우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이번 편은 이를 좀 더 확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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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기'라니. 너무 시적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석'은 너무 거창하다. 게다가 어떤 것을 파악할 때 한 걸음 물러서는 자세는 객관성을 유지하기에 좋다고 했다. 이에 이번엔 '바라보기'란 말을 한번 빌어보려 한다.
현실에서 진행하는 업무는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다. 그 특성들을 면밀히 쪼개 보면 개선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번 편에서 언급하고 싶은 점은 아래 예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안건 발생 → 메일로 공유 → 연관된 사람들끼리 모여 회의 → 관련해 보고서 작성 → 현황 파악 또는 해결을 위해 출장 → 관련 사항 메일로 공유 → 모여서 회의 → 결과 (또는 현황) 보고서 작성 → 무한 루프
보이는가? 우리는 업무 하나를 진행하더라도 '여러 단계에 걸쳐서 진행'한다. 이것이 내가 이번 편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업무의 특성이다. 그리고 저 화살표 개수를 줄이는 것이 이번 편 목표다.
일상적인 오퍼레이션을 제외하고 하루를 돌아보자. 주로 쓰는 도구들이 있다. (엑셀, 워드, PPT 이런 거 말고...) 이는 보고서 / 회의 / 메일 / 출장 정도로 범주화할 수 있다. 각 도구들이 갖는 장단점이 다르다.
① 보고서
- 장점 : 확실한 증거력, 의사결정력을 갖는다. 결재자마다 이해도가 높다.
- 단점 : 작성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재 단계마다 발생할 피드백을 생각해보라.)
② 회의
- 장점 : 말로써 전달하니 편하다. 동시에 여러 명에게 전달할 수 있다.
- 단점 : 참여자가 한정된다. 참여자마다 이해 수준이 다르다.
③ 메일
- 장점 : 보고서보다 작성 시간이 적게 걸린다. 전체 회신으로 질의응답이 가능하다.
- 단점 : 결재보다 증거력/의사결정력이 약하다. 메일 수신인마다 읽는 집중도가 다르다.
④ 출장
- 장점 : 현장을 직접 확인 가능하다. 메일로 얘기 못할 부분까지 충분히 나눌 수 있다.
- 단점 : 이동하는 동안 소통의 공백이 생긴다. 비용이 많이 든다.
앞서 네모칸에 넣어 둔 예로 다시 돌아가 보자. 각 단계를 시작할 때마다 네 개의 도구 중 어떤 게 가장 나을지 판단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선택한다면 화살표를 다음과 같이 줄일 수 있다.
안건 발생 → 연관된 사람들끼리 모여 회의 → 현황 파악 또는 해결을 위한 출장 → 관련 사항 메일로 공유 → 결과 (또는 현황) 보고서 작성
당장 화살표 몇 개가 줄었다는 것도 시각적 효과가 있지만, 자신이 두 루프 속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두 번째 루프가 빠르다. 실행력이 앞선다. 즉 단계마다 미리 생각하는 방식이 바로 다음 단계로의 진행은 조금 더디게 할지 모르되 전체적으로는 효율성을 높였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인 격이다. 농업적 근면성이 우대받던 발상에서 벗어나 52시간 근무에 맞게끔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인 것이다.
다니엘 예긴이 쓴 『황금의 샘』에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당시 미국 오일 시장을 주름잡던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의 사장이었던 월터 티글이 한 얘기다.
우리는 확실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일상에 치이고 있습니다.논리적 결론을 얻기 위해 문제를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면 피할 수 있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일이 너무 많으면 생각할 시간이 없어진다. 효율성을 위해 업무 단계마다 어떤 것이 최적의 방법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성과가 부진하다면 이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 사장은 저 얘기를 한 것이 1920년대다. 지금은 이미 2018년이니 그로부터 벌써 100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기술이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더 나은 고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자는 운동은 보통 '업무 쳐내기'로 귀결한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나열한 뒤 당장 필요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을 쳐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첫 단계는 중요하다.
다만 일을 쳐내기만 해서는 진정한 효율성을 담보할 수 없다. 쳐낸 뒤 남겨진 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불필요한 업무를 없애자. 마땅한 사용처가 없는데 관행적으로 해오는 일이 있다. 유사한 부서별로 거의 동일한 시장 자료를 생성하기도 한다. 사용도가 낮은 것은 과감히 없애고 중복이 있는 것은 효율화해야 한다. 그런 뒤 남은 업무들도 매 단계마다 적합한 도구를 고민해야 한다. 그저 편하다고 회의만 줄곧 소집해선 안 된다.
인터넷을 보면 회의시간 30분으로 제한하기, 서서 회의하기 등 여러 가지 회의 효율화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파단컨대 이번 안건이 회의가 아니라 메일 공유로 충분한 것이었다면 제아무리 서서 회의하고 30분 만에 끝냈다고 해도 그냥 낭비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진짜 해야 하는지 판단부터 해야 한다는 소리다.
52시간 제도가 시행이 되든, 혹은 사회적 대세에 따라 워라밸을 지켜주는 문화를 만들든 효율성을 추구하는 조직이 지켜야 하는 마지막 보루가 있다. 꼼수를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보고서 줄이기 문화를 예로 들어 꼼수의 위험성을 언급한 적 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8
업무 효율화도 마찬가지다. 겉 보이기용으로만 한다면 '효율화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누군가는 또 비효율적인 일을 뒤에서 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인원 부족이든, 개인의 역량 부족이든 제한된 시간에 결국 업무를 처리하지 못했다면 그것을 과감히 공개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투명성 역시 영원한 정답에 포함할 수 있겠다. 투명하면 꼼수가 없을 테니 어쩌면 투명성이 더 큰 범주이기도 하다.
https://brunch.co.kr/@crispwatch/72
살아갈수록 진리는 단순한 데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많은 수학자들이 어느 선 이후에는 신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고자 애썼다. 단순함에 대한 내 예찬도 그런 시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자기 날개가 뜨거운 태양열에 타 버릴 줄 알고 날아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