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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Apr 19. 2018

시간의 힘 (1)

일머리로 인정받기까지 걸리는 시간

0. 잡상의 발단


모 은행이 학벌을 기준으로 채용 결과를 조작했다는 뉴스 기사가 있었다. 그 이후 다른 은행이나 기업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조정을 했다는 기사들이 이어지며 공분을 샀다.

 

학벌은 공부머리의 대표적인 지표다. 직장에서 공부머리와 일머리가 다르다는 것은 아래 글에서 다룬 바 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2


공부머리와 일머리가 모두 좋은 사람은 직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릴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당연히 그런 사람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좋은 구직자는 거의 없다. 나아가,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기업이 그 사람을 찾아내는 건 또 별개 문제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들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업은 왜 하필 학벌(공무 머리)에 유독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일까? 그것은 합당한 일일까? 만약 일머리가 더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언제쯤 역량을 (학벌과 관계없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1. 학벌은 스펙의 한 요소다.


기업이 학벌을 보는 이유는 그것이 스펙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신에게 득이 되기 위해 일정한 요건의 스펙을 채용시장에 내건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구직자가 열정을 가지고 특정한 회사에 원서를 넣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의 열정이 암만 뜨겁다 한들 회사는 그가 어떤 영향을 가져다주게 될지 모른다. 그나마 객관적인 업무 역량을 파악하는 것도 힘든데, 회사 문화나 가치에 맞는지 정성적으로 판단하는 부분까지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회사는 확률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https://brunch.co.kr/@crispwatch/58



회사가 얼마나 오랜 기간 존속했는지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잘 융화되고 역량을 발휘했는지 판단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중에서 외부적으로 정리 가능한 요소를 모아 스펙으로 제시한다. 즉, 스펙이라는 조건을 제시하면 기업의 입장에서 무작위 확률을 '조건부 확률'정도로 좁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짚어야 할 부분은 명확하다. 저 스펙이란 집합에서 학벌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합당한지 살펴보는 것이다.




2. 확률로 보는 학벌


우선 위의 논의를 수식으로 나타내 보자.


2명을 뽑는데 1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 중 회사에서 적합한 인재는 10명이 존재한다.

2명 모두 회사에 걸맞은 인재가 뽑힐 확률은 (10/100)*(9/99)*(1/2)=0.0045다.


만약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뽑기에 적합한 스펙(학벌 포함)을 제시했고, 그 스펙을 만족하는 사람이 60명,

그중 회사에 적합한 인재가 8명이라면 2명 모두 잘 뽑을 확률은 (8/60)*(7/59)*(1/2)=0.0079다.


언뜻 확률이 두 배 가까이 뛴 것만 눈에 띌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스펙을 제시했더니 모수가 100명에서 60명으로 줄었는데도 회사에 잘 맞는 인재가 10명 중 8명이나 살아남았다. 즉, 회사가 스펙을 제대로 제시했다는 뜻이다. 이것만 본다면 회사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스펙을 제시하는 것까지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 스펙에서 학벌이 대단한 비중을 차지한다면 그것은 문제다. 왜냐하면 학벌이 회사에 걸맞은 인재상과 연관관계가 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사실 그런 증명을 말끔히 해낼 수 있는 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에서 학벌은 최소 요건으로 둔다. 4년제 정도로 제한을 둔다거나, 아예 없애는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입사 원서에 학벌을 적는 칸 자체를 없애기도 한다. 입사 후에 관련 서류로 받아둘 뿐이거나, 아니면 이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벌이 몇 가지 특성의 결과적 요소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공부를 잘했으니 업무를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거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은 성실함을 보여준다거나, 모범생이므로 회사 지침을 따르기에 용이하다는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단편적인 편견들일 뿐이다. 누가 이들의 관계를 Causality 수준으로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는가?




3. 회사는 일머리를 원한다.


회사는 결국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잘 해야 한다. 최고 대학을 나왔어도 회사에 공헌을 못하면 그저 Cost일 뿐이다. 회사가 보는 Human resource는 회사와 전략방향을 같이하며 업무를 해 내고 성장하는 사람이다. 학벌이 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많은 기업들이 회사에서 사조직을 없애고, 직원들 간 학벌을 묻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벌이 좋지 않으면 명시적/암묵적으로 불리함을 겪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원하는 것은 일머리가 좋은 당신인데도 말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시간의 힘이다. '에잇 더러운 세상!'이라며 사표를 던지기 전에 당신이 일을 잘 하고 있었노라 자신한다면 한 번만 더 재고를 해주길 바란다.




4. 일머리로 인정 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일머리로서만 인정받는 시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것이다. 회사마다 승진 연한이 다르고, 문화나 업무 형태가 다르니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제시할 수 있다.


① 성과들이 누적되어 좋은 평판으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

실무 역량 외에 Leadership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③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힘든 시기를 참아내는 인내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처럼 초기에 이 모두를 훑고 지나가는 곳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기업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대부분 간부 초반 정도에 이뤄진다. 즉 5~10년 정도가 된다. (나는 8년이란 숫자를 좋아한다. 도끼도 'On my way'에서 8년을 외쳤다.)


즉 일머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평균 8년 정도가 필요하다. 공부머리도 함께 갖고 있든, 일머리만 있든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필요한 시간이다.


흐르는 시간만큼 나만의 Credit을 쌓아가자.




5. 드라마 주인공을 잊어야 한다.


미국에서 현지 취업절차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미국 기업은 입사 지원서에 생년월일을 적지 않는다. 다만 언제 대학을 졸업했는지로 대략적인 나이를 유추할 뿐이다. 그나마도 경력이 오래되면 대학 졸업 시점도 중요치 않다. 어디어떤 업무를 얼마나 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 회사에 필요한 일머리를 찾기 위해 지극히 효율적인 스킴이다.


우리나라는 위와 같은 스킴이 약하다. 가만 보면 미국식은 경력직 채용에 유리하다. 하지만 우리는 신입 사원부터 키워나가는 정규 채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업계에서 5~10년을 버티고 평판을 쌓은 순간 학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진다. 윗분들 중에 학연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 다르겠지만, 경력직 이직 시나 회사 내에서 고과/승진 평가를 할 때 학벌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즉 암묵적으로는 경력자에 대해 미국과 유사한 측면이 조금은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의 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머리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나중에서야 다가오기 때문이다. 드라마처럼 입사하자 마자 큰 기회를 획득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이나, 언론에서 언급하는 대성한 사람들만 봐서는 시간의 필요성을 잊기 쉽다.


드라마 주인공은 허구이고 유명한 젊은 성공인은 소수다.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느라 당장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쟁쟁한 선배들이 버텨낸 시간의 힘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사는 곳은 현실이다. 시간의 힘을 빌어보자. 일머리로 인정받아 스스로를 빛내보자. 시간 낭비가 아니라 자신을 키우는 숙성의 시간이라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일머리를 믿는다. 인내하며 성장하는 모든 직장인들 오늘도 파이팅이다.




대학 교양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네가 꽃이라면 언젠가 그 꽃을 틔울 것이다.


가을에 피는 꽃이 매화가 부러워 이른 봄에 조급하게 싹을 틔우려 하면 추위에 얼어버린다. 도끼는 8년을 얘기했지만 누군가에게는 5년, 다른 이에게는 12년이 될지도 모른다.


무조건 참고 인내하란 뜻은 아니다. 누가 봐도 벗어나야 하는  집단이 있게 마련다. 하지만 능력을 단련할 때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마음만큼은 잊지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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