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닌 엄마만 누릴 수 있는 아이들만의 추억이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수유실에서 만나는 첫 아이의 또랑또랑한 눈망울, 낮에 집안일 하다가 아이가 안 보여 찾으면, 시커먼 채로 뭐가 그렇게 좋은지 네 발로 아파트 복도를 기어다니던 아이의 까르르 웃는 미소. 친구와 함께 송도 카페에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려 서울우유 표지만 생각나던 그 때 그 순간..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아이들을 볼 때 그 때 그 시절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지금도 강아지마냥 그렇게 쓰다듬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행복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마이너스의 생활을 뒤로 한채 아이들은 잘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짝궁 남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 여보, 경찰서나 검찰청에서 무슨 서류가 집으로 올 수 있는데, 너무 놀라지 말고, 회사에 문제가 좀 있어." 그때부터 발신자가 정말 경찰서라고 찍힌 서류가 집에 도착되었습니다. 실제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문서들에 가슴이 콩닥콩닥했습니다. 남편은 회사 일을 위해서 열심을 내다가 결국은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물론 이직할 회사를 정해 놓고 나서였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이들은 다 어린이집에 출근한지라 낮에 남편과 함께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던 그날이었죠. 남편은 문을 나서며 떨려 했었고, 저는 과감히 던지고 와!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이직할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청벽력의 소식이었죠.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000씨의 채용이 취소되었습니다." 노트북과 이메일 주소가 다 생성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후 남편은 다른 회사에 구직 활동을 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습니다. 다시 한번 짝궁 남편의 전화가 울립니다. "여보, 나 한번 공부 좀 해볼게. 다른 사람들보다 좀 일찍 자기 사업을 해본다고 생각하면 되. 딱 1년만 공부해 볼게!"
그 당시 큰 아이는 6살이었고, 작은 아이는 4살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다시 사회에 나가게 되었죠. 우선, 예전 회사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뭔가 실력을 쌓아서 더 좋은 회사를 가고 싶었던 로망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저는 남들이 말하는 '경단녀'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회사를 가더라도 저보다 나이가 적은 상사와 함께 일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몇 일을 고민하다 슬쩍, 회사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과 가까운 회사에는 현재 인원이 없지만, 서울 사무실에는 인원이 딱 필요할 때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대표님과 따로 리미니 음식점에서 연봉에 관해 말씀해 주실 때도 협상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회사는 서울 송정역이었습니다. 겨울에는 1호선을 기다리는 그 바깥 정류장은 왜 이렇게 추웠는지, 모르는 옆의 사람에게 팔짱을 끼고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겨울철이라 밤처럼 깜깜한 시간에 출근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는 모습만 볼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업무 적응에 바짝 긴장되어 있었고, 집에서는 예민한 수험 남편 비유 맞추기에 바뻤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퇴근 길에 자주 하늘을 보고 많이 울었었죠. 저를 위로해 주었던 곡이 있습니다. 반복 재생을 했던 곡입니다. '길을 안다고~ 그렇게 생각했죠~' -이집트 왕자 OST <내 길 더 잘 아시니 You Know better than I >
친한 아파트 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OO 아빠, 오늘 어디 가셔? 유치원 차량에 정장을 입고 나오셨던데?" ..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 있었던 아주머니들의 수근수근 소리와 할머니들께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전화를 해보니, 집에 오자마자 옷은 갈아입었다면서 이제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모닝 커피를 마시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남편의 퇴사로 저는 힘들었었지만, 그 때 아이들은 아빠와 매우 친해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빠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의 경력으로 현재까지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항상 이 부분은 저희 부분에게 뜨거운 감자입니다. 어쩔때는 당신의 퇴사 사건으로 내가 이렇게 일할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라고 말하다가 아이들이 힘들어지만 ' 그때, 내가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후회를 합니다. 같은 사건, 전혀 다른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