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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8번의 이사

그 가격이면 집 한채를 샀어!

by 꾸도키


1. 첫 번째 집, 단독주택 전세

전셋집을 구경하다 우연히 커다란 단독주택에 들렀습니다.
“물이 정말 잘 나와요.”
집주인 아주머니의 이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계약했고, 전세대출의 문이 열렸습니다.

10월에 결혼하고 곧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그 겨울, 우리는 24시간 오리털 점퍼를 입고 생활했고,
첫 가스비 고지서에는 무려 40만 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2. 두 번째 집, 작은 아파트

곧 깨달았습니다.
‘여기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겠구나.’
우물쭈물하다 시기를 놓쳤고, 결국 근처 아파트를 높은 가격에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노예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아파트 값은 사정없이 떨어졌고,
저는 임신 9개월 차에 육아를 위해 퇴사했습니다.
2009년 1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첫째가 태어났습니다.

모두 출근한 뒤, 고요한 아침.

햇살 가득한 아파트에서 아이와 단둘이 있던 그 시간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3. 세 번째 집, 연립주택

계속되는 마이너스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아파트는 월세로, 저희는 전세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아, 고구마가 생각나시죠!?

그래도 그 곳에서 귀여운 막내딸이 태어났습니다.
남편도, 저도 공부를 하던 시기라 계산상 ‘괜찮다’고 판단했지만,
우리의 마이너스 재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아파트가 좋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4. 네 번째 집, 다시 아파트

첫 매매 아파트는 산에 둘러싸여 공기가 좋아 아토피가 낫는다는 소문이 돌던 곳이었지만,
어린이집과 학교 접근성은 매우 안 좋았습니다.
아파트값 호황기에도 우리 집은 4년 동안 그 가격대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이웃과 어울리며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난 주 글에 썼던 남편의 ‘퇴사 선언’이 이 때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6년 동안 무려 5번의 이사를 하게 됩니다.
신혼부부 사촌에게 저는 늘 이렇게 조언합니다.

“이사는 웬만하면 하지 마라. 버텨야 모을 수 있다!”



5. 다섯 번째 집, 전세 3,000만 원

이렇게 저는 밤에 남편은 공부, 저는 생활비 방어를 위해 재취업.
‘딱 1년만 버티면 된다’던 말은 1년 6개월로 늘어났고,
자격증을 땄지만 수입은 몇십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정글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발버둥쳤습니다.


6. 여섯 번째 집, 전세 아파트

저는 인천 지점으로 발령받아 비교적 편히 다녔고,
남편도 예전 회사에서 복귀 제안을 받았습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학교 바로 앞 아파트로 가자”는 생각에 전세대출 90%로 이사했습니다.

참 좋았던 곳이었습니다.



7. 일곱 번째 집, 5층 다가구 주택

하지만, 평온하던 생활은 집주인의 복귀 선언으로 끝났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집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아이들 아빠와 자주 다투던 시절이었죠.
그 와중에도 깡통차(수동 창문)로 웃음을 나누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8. 여덟 번째 집, 주택 전세

큰아이가 4학년이 되던 해, 마지막 이사를 했습니다.
이후 5년간 이사 없이 지냈지만, 재작년 청약에 당첨되면서
‘High of High’ 금리와 함께 새로운 노예 계약(?)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이상하게도 집값이 꼭 정점일 때 매매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 집으로 이사.

총 9번의 이사를 했었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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