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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워킹맘

by 꾸도키

그렇게 저는 워킹맘이 되었습니다.

아이만 키울 때는 “그래, 지금 이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겠어.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한 정서를 심어주자.” 라고 다짐하며 마이너스 생활도 버텼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퇴사 선언과 함께, 저는 순식간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사까지 겹치면서 큰아이는 새로운 동네에서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학기 상담 날, 칭찬만 듣던 터라 룰루랄라 교실로 들어갔지만, 교문을 나설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물으셨습니다.

“어머니, 꼭 일을 하셔야만 하나요?”

“네?”

“아이가 적응을 못합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어요.”


그날 이후, 저는 ‘열혈 엄마’가 되었습니다.

인천 지점으로 발령받아 저 또한 회사 적응 중이었지만, 아침 출근 전에는 학교 근처 농장에서 감자를 심었고, 봉사활동 모집이 뜨면 무조건 먼저 신청했습니다. 저녁에는 엄마들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죠.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갔습니다. 심지어 1학년 때는 호텔을 빌려 생일 파티도 열었을 정도니,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했습니다.

2학년 때는 반대표까지 맡았습니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도 낮에는 주부 모임, 저녁에는 워킹맘 모임을 따로 열었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언니들을 만났습니다.


4학년 무렵, 다락방이 있는 집에 살 때는 친구들을 자주 초대했습니다. 생일 잔치, 모임, 그때는 아이와 함께하는 그 세계가 제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졌습니다.


5학년이 되고 저희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고,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어 아이들과 이웃 40여 명이 모였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일이지만, 그땐 그랬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이는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지금은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전혀 의미 없었던 건 아닙니다. 농구 교실에서 만난 친구들과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농구라는 운동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시절 덕분이니까요.


그 시절의 저에게는 ‘열혈 엄마’가 답이었지만, 지금의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의 삶을 살아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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