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발맞춰 변화하는 광화문과 서울, 그리고 촛불 혁명
박근혜를 탄핵시키며 박정희 시대를 마감하고 문재인이라는 광화문 시대의 새 대통령을 배출시킨 촛불 혁명은 제가 여기서 글 몇 자로 나열할 수 없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들이 겹치고 겹쳐서 발생한 사건일 것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공간적 배경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지난 글에서는 광화문 광장이라는 장소가 갖는 역사적 특성과 촛불 혁명의 성공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시계를 다시 21세기로 맞춰 현대의 도시 공간들이 갖게 되는 이런저런 특성들이 광화문 혁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화문이라는 장소는 기본적으로 세종로입니다. 역사적으로 그곳은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1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세종로는 그냥 길이 아닙니다. 한반도의 정치사에서 각 시대의 정점에 있었던 세력들이 항상 점유해왔던 장소지요. 나라가 바뀌고, 정부가 바뀌고, 정치체제가 바뀌어 나가는데도 하나의 장소가 '왕좌'의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광화문이 원래 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도시에서 핏줄의 역할을 합니다. 도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핏줄들의 네트워크가 공존하는데요, 수도관, 가스관, 전기선, 그리고 요즘에는 광케이블과 LTE 기지국들 까지 각 용도별로 도시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단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도시 안에서 사람과 물건들이 물리적으로 운반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길입니다. 도시를 사람의 몸으로 본다면 팔, 다리, 허파, 두뇌와 같은 각 기관들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시설입니다.
그런데 광화문에게는 보통의 길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작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길은 4거리나 5 거리 같은 도시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각각의 매듭 점들을 잇는 선의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경부고속도로 같은 고속도로도, 여러분의 집 앞에 있는 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차가 다니는 길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세종로는, 비록 경복궁 앞에서 T자 형태의 삼거리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은 근정전에서 시작되는 조선 제 1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모든 것은 로마로 통했다고 한다면 조선시대의 모든 것은 광화문으로 통했다고 할만합니다. 조선의 시작점이지요.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에 경복궁과 함께 조성됐다는 점에서 봐도 말 그대로 조선왕조 권력의 시작점이라 할 만합니다. 바로 이 점이 오늘의 광화문 광장이 '길'이라는 도시의 기관이 아니라 '장소'로서의 성질이 더 강해지게 된 이유입니다. 오늘날의 광화문 광장은 이런 나라의 시작점이라는 역할에 더해서 도로 한가운데 진짜 광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습니다. 광화문이란 장소가, 길과 도보 그리고 그들을 둘러쌓고 있는 건물들로만 이루어진 '통행'이 주요 특성인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모이는 장소인 '광장'의 특성을 상시적으로 갖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피가 모두 모이고 나아가는 곳이 심장이라면 촛불 혁명을 이룩한 시민들이 모두 모이고 나가는 포인트가 바로 이 광화문 광장이었습니다. 광화문과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는 장소로는 프랑스의 샹젤리제 거리가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잘 모르지만 샹젤리제 거리의 시작점인 콩코드 광장 근처에는 프랑스 대통령의 거주지인 엘리제 궁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미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제 궁에서 센느강을 넘어가면 프랑스 국회의사당 건물이 있습니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과 굉장히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지요.
그런데 사실 광화문이 '길'의 특성보다 '장소'의 특성이 더욱 강해지는 데는 세계화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광화문 광장의 장소성의 강화가 결과적으로 촛불 혁명을 잉태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단순한 남한의 수도에서 세계화가 된 메트로폴리스, 동아시아의 주요 도시로 변신하면 서울의 도시 공간들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이 질문을 광화문 현상을 통해서 처음으로 풀어 봅시다.
어떤 도시가 세계화된다는 것은 그 도시의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 이상으로 거기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의 터전과 배경이 변화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계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해 광화문을 유린하는 것도 세계화의 과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의 세계화는 그 이전 시대와는 약간 다른 프로세스를 거칩니다. 바로 대상 도시가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광화문처럼 이미 하나의 장소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갖은 공간은 더 이상 서울 종로구에 속해 있는 광장이 아니라 광화문이라는 공간 그 자체로서 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이 경우에 아마도 가장 많이 퍼진 이미지는 백만 시민이 촛불을 머리 위에 들고 있는 사진들이었을 것입니다. 하나의 도시 공간이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동안 그 이미지의 배경이 어느 도시, 어느 나라인지는 점점 덜 중요해집니다. 아니, 오히려 그 이미지가 그 나라나 그 도시를 상징하는 존재로 격상되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2016년 말 대부분의 세계인들이 한국이란 나라를 접할 때 본 이미지는 광화문에서 수도 없이 많은 촛불이 밝혀진 것을 찍은 사진일 겁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한국 하면 광화문이라는 장소, 혹은 거기서 일어난 촛불시위를 떠올리게 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광화문의 배경조차 못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초에 도시라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내기 쉬운 것이 아닌, 거대한 유기체입니다. 하지만 광화문 같은 하나의 장소는 그렇지 않죠. 한 눈,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습니다.
CNN이 내보낸 이 영상에서 보이는 사진 안에는 광화문 광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이 담겨 있습니다. 촛불시위를 알리기 위해 퍼진 이 이미지들은 항상 광화문의 모습들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뉴욕의 타임스퀘어는 24시간 내내 CC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매일같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가 알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타임스퀘어 사진만큼은 전 세계인이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어디선가 새롭게 찍은 버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뉴욕 지도를 보고 타임스퀘어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말해 줄 수 있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타임스퀘어 사진을 보여줬을 때 그게 어느 도시에 있는 어떤 장소의 이미지인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출 수 있습니다. 현대의 도시의 세계화는 이렇듯 장소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도시 그 자체가 나라에서 떨어져 나가 독자적인 중요성을 갖는 현상도 물론 존재합니다만, 그 와중에 각 각의 주요한 장소들이 자신들의 성질을 강화시키며 세계인들에게 소비됩니다. 사람들은 그 도시에 가보지 않았어도 그 도시를 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장소'만이 가질 수 있는 이미지화의 힘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소가 지속적으로 전 세계에 노출되는 현상은 현대의 도시의 세계화, 메트로폴리스화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광화문의 경우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고생 살인 사건에서의 서울광장,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에서의 광화문은 반미 집회라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 대사관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광화문은 항상 촛불의 배경이었습니다. 이것은 광화문이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한국의 집회문화의 본원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광화문, 한 때는 권력자들의 왕좌의 역할을 했던 그 땅이 이제는 시민들의 정치 발언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만들어 낸 그 이미지들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서울이 메트로폴리스가 되는 것, 세계화가 되는 과정이 여기에 전부 녹아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이 한국을 세계화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롯데가 마천루를 세웠다고 해서 세계인들은 잠실이나 서울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세계화라는 것은 단순히 기업이나 인물이 자신들의 이름을 알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광화문 같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에 흩뿌려져 있는 다양한 '장소'들이 어떤 이미지로 세계인에게 보이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광화문이 세계에 알려짐으로써 겪는 변화는 '장소'로서의 성질이 부각되는 것입니다.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장소로서 그려지게 되는 것이죠. 주위의 거대한 빌딩들, 그 사이에 중심을 잡고 있는 광화문과 경복궁의 지붕들, 그 지붕선과 함께 서울의 하늘의 형태를 잡아주는 북악산의 산등성, 그리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화문 광장의 땅이 한데 모여 촛불시위라는 이벤트를 담아내는 것, 그로서 그 그림에 하나의 이야기가 쓰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가 이루어지는 데는 그에 선행되어 진행된 다양한 도시적 변화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위에서 말씀드린 '길'에서 '장소'로의 변화입니다. 먼저 장소가 되어야만 그 공간이 갖고 있는 성질이 이미지로 소비될 수도 있는 것이겠죠. 핏줄은 핏줄일 뿐, 심장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세종로는 광장이 아니었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애초에 세종로,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는 오히려 길보다도 임금의 땅이라는 상징이 더 크게 주어져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이 육조거리가 본격적으로 길의 모습으로 변화한 것은 일제시대입니다. 위에서 일제시대의 서울에서 이미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일제가 자행한 도시정책이 바로 경복궁을 조선총독부로 바꾸고 육조거리를 반으로 쪼개 두 갈래의 길로 조각낸 것입니다.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이미지를 생산하는데 쓰였을 것이고, 육조거리 중간에 은행나무를 심어 각 각 두 개의 일방통행 길로 만든 것은 육조거리가 '장소'로서 갖고 있던 상징성을 해체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광화문에서 촛불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2008년에 와서야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던 은행나무들이 옮겨 심어졌고 2009년에는 오늘날의 광화문 광장이 개장했습니다.
세종로가 광장을 품게 된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이 중앙분리대를 제거한 것 자체가 그 공간을 '길'에서 '장소'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웬만한 고속도로만큼 넓은 공간이 서울 한복판에 다시 생긴 것이지요. 총독부 건물이 해체되는 것 만으로는 이 공간이 진정으로 시위와 혁명, 시민정치를 담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주기에 부족했습니다. 백만 명이 모일 수 있는 장소, 그것도 정부 종합청사, 미국 대사관, 서울시청, 그리고 청와대까지 닿는 공간이 되려면 그 길은 온전한 너비를 되찾아야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서울시는 시민공모와 투표 등을 거쳐 세종로 중간에 광장을 설치합니다. 광화문 광장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지금에도 여러 가지 비판도 많습니다만, 저는 그것이 상당히 좋은 도시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대표할 수 있는 미적 요소를 갖고 있느냐에는 상당한 의문점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일단 세종로 양단에서 횡단보도로 열몇 발짝만 내딛으면 거대한 광장에 도착한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그만한 빈 공간을 건물들이 있는 근처에 조성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광장이 차도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오히려 그 공간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근처 건물들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차도에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정치적, 문화적 역할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광장은 육교나 지하도를 통하지 않고 바로 걸어서, 시내 한복판에서 걸어서 도달할 수 있는 인간적인 거리에 있기 때문에 이용하기가 매우 편리해집니다. 게다가 여차하면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들이 접해 있는 도로를 시위대가 점거할 수도 있습니다. 시위의 힘이 더욱 세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광화문 광장이 처음 조성되었을 때 그 공간이 서울의 홍보를 위한, 이용하기는 힘든 섬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그 반대의 성질을 갖고 있는 공간 구성임이 들어 났습니다. 서울 시청 광장처럼 잔디밭이 아닌 점도 좋습니다. 잔디밭은 보기에는 좋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파리에 최근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열린 레퓨블리크 광장 Place de la République - 공화국 광장 - 도 위에 설명한 모든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잔디는 없고, 도로에 둘러싸여 섬처럼 건물들로부터 떨어져 있지만 횡단보도로 몇 발짝이면 광장에 닿습니다. 이 공간도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지만 최근에는 파리의 새로운 집회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장소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오스만 파리 글을 끝마치며 나오는 사진으로 쓴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일궈낸 혁명은 어찌 보면 성공한 도시건축 프로젝트의 사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공간에 담겨있는 우리의 슬픈 역사를 걷어내고 잘 만들어진 건축물을 옛 권력자들의 땅에 열어놓았을 때 나라가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도시 공간입니다. 광화문 광장이 자신의 '장소'로써의 성질을 되찾은 지 겨우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놀랍습니다. 겨우 몇 년만에 서울시민은 광화문이 갖고 있는 포텐셜을 100% 발휘했고, 23주간 이어진 촛불집회 중에서 때때로 중요한 순간에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 곳을 점령하여 기득권 세력을 자신들의 혁명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광화문 광장이란 곳이 단순히 육조거리부터 내려온 오래된 정치의 공간이 아니라 한국의 21세기를 대표할 만한 도시건축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가지런히 일렬로 이유를 알 수 없이 놓인 수 십 개의 돌 화분, 이상한 방향을 나 있는 큰 계단, 의미를 알 수 없는 중앙의 거대한 경사로 등 전체적으로 잘 디자인된 공간은 아니지만, 거대한 비움, 그리고 도로에 둘러싸인 광장은 시민의 정치참여 공간으로는 가장 좋은 형태이기도 합니다. 사진 : Parisboucher
그리고 우리 모두가 촛불을 든 그 공간은 이제 서울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최소 1세기 정도는 광화문이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시민혁명을 상징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광화문의 이미지 소비는 반대로 세계 시민이 서울을 시민의 정치의식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저는 서울이 세계화, 메트로폴리스화 되는 방식이, 광화문의 촛불시위가 르몽드나 가디언, cnn 같은 매체들을 통해 알려지는 것임이 솔직히 말해서 정말 뿌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도시와 건축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광화문 광장이 조성된 지 겨우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언제 또 어떤 서울 시장이 그 공간을 자기 멋대로 바꾸려 할지 모릅니다. 꼭 안 좋은 의도가 아니더라도 광화문은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할 공간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서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세계화된 공간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특히 광화문 시대의 대통령을 선포한 문재인 대통령은 아마도 광화문이란 장소를 서울의 모뉴먼트 중 하나로 부상시켜 세계에 더 알리기를 바랄 것입니다. 내년에 새로이 당선될 서울시장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과정에서 광화문은 또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광화문의 재단장에 시민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몇몇의 도시건축 프로젝트가 우리의 삶에,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도시와 건축에서 시민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습니다. 곧 이에 대해서도 다룰 것입니다만은, 오히려 정치인들과 건축가들의 역할보다도 시민의 입김이 더 크게 도시를 바꾸는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이 도시와 건축에 관심을 계속해서 기울어 주시기를 바라며 광화문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p.s. 이번 글은 미셸 루소 Michel Lussault라는 프랑스 지리학자가 자신의 저서 '공간적 인간 Homme spatial'과 '하이퍼 장소 Hyper-lieux'라는 책에 제시하고 있는 그의 도시에 관한 관점을 상당 부분 빌려서 썼음을 알립니다. 안타깝게도 두 권 모두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번역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커버사진 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