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 to yourself
어제 잘 나가는 로펌에서 NGO로 커리어의 방향을 바꾼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익숙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나름 재산도 있으시고, 변호사가 된 첫째 딸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셨는데, 로펌을 때려친다고 하니 특히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셨다고 했다. 재산도 안 물려주겠다고 해서, 안 물려받는다고 했는데 그게 더 아버지의 화를 돋궜다고 한다. 친구는 아버지가 너는 니가 우리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나보지? 뭔가 이런 평범한 삶보다 더 특별하게 살고 싶은가보지? 라고 비꼬았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물론 그건 한참 전의 이야기고, 지금 친구는 NGO 의 법무팀에서 일하면서 그래피티를 그리는 예술가로 2가지 일을 하고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과 만나 나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지금은 친구를 인정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 부러워하기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까지 '재산'을 관리하느라 매일매일 스트레스 받으며 엊그제에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재산이 있는데 왜 오히려 너만큼 행복하지가 않냐고 했다고.
울 엄마가 해준 거지 아빠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 얘기를 친구에게 해주며 웃었다.
거지 아빠가 부잣집에 불이 나서 난리가 난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아들에게 우리는 가진 것이 없으니 불날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고 온 세상이 우리의 집이니 얼마나 좋으냐, 라고 했다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랑 나도 가진게 없으면 잃을 걱정을 안해도 되니 차라리 맘은 편하겠네 하면서 웃었는데.
어떤 면에서 나도 어느 정도 먹고 살 수준이 되면 돈 많은 부모님보다 행복한 부모님이 훨씬 자식에게는 좋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나는 엄마 아빠가 일이나 다른 것때문에 잔뜩 스트레스를 받으며 세상 힘든 모습으로 걱정을 잔뜩 하고 있는 것보다 나와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고 함께 산책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있는 것이 좋다. 부모님이 나에게 평생 불행한 모습만 보여주다가 재산을 물려주고 가는 것 보다, 재산을 안 물려줘도 좋으니 함께 놀러다니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만큼 부모님의 지지와 인정이 더욱 중요했다. 그런데 그런 우리 엄마 아빠도 내 친구네 부모님처렁 똑같은 말을 하셨었다.
내가 회사를 관두고, 나의 길을 가겠다 했을 때, 나를 설득시킨다고 엄마는 나의 기를 아주 꺾는 발언을 했다.
"너는 니가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뭔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을 줄 아나본데, 내가 보는 나는 별로 그렇게 특출나지 않거든? 내가 보기에 너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데 너는 너 자신을 뭔가 높이 평가하나보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보지? 근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니야. 넌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어. 그러니까 괜한 고생하지 말고 그냥 다른 사람들 사는 대로 살아."
나름 대로 팩트 폭행이라고 하신 말씀이시다. 내가 참 힘이 되는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추가로 덧붙이셨다. "나니까 이런 말 해주는거야. 다른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그렇게 보여도 아무도 말 안해줘.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너를 생각해서 객관적 사실을 말해주는 거야."
정말 내가 우리 엄마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그리고 엄마를 잘 알지 않았다면, 참 가스라이팅적인(?) 발언이다. 나도 그 당시에는 엄마말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를 사랑하는, 그리고 나를 제일 잘 아는 우리 엄마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그렇다면 정말인가?
엄마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나를 말렸다. 아무도 진정으로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아무도 내 인생이 어떻게 될 지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심지어 미래를 알려준다는 사주, 신점, 타로, 별자리를 보러가도 암담했다. 다들 좋은 선택이다! 너를 응원한다! 라고 해주지 않았다. 나도 내 미래가 불안해서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 주기를 바랬는데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기를 바랬는데, 참 찾기 힘들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1.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내가 내리고자 하는 선택이 진짜로 내가 원하는 길인가 다시 생각한다. 아무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을때 그 선택은 더 선명해진다.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내가 너무나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길이라면, 나의 결심은 얼마나 강력한 진심인가. 지금 생각해도 만약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할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내린 결정이 아니었더라면 아무도 지지해주지 않았을 때, 포기했을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 다 말리(는 것 같을) 때도 여전히 나는 해야 겠다, 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건 정말 나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인 것이다.
2. 내가 정말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잘났다고 생각해서, 혹은 잘난 척을 하고 싶어서, 내리는 결정인가 생각한다. 나도 엄마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가 간다. 내가 봐도 남과는 달리 성공한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게 있어 보인다. 특별한 지식이 있다든지, 재능이 있다든지, 사업가의 기질이 있다든지 등등. 하지만 나는 남들과 '달리' 살고 싶어서 일반적인 인생길을 가지 않겠다고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정착해서, 결혼하고, 애를 낳고 사는 인생)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의 인생을 살고 싶을 뿐이다. 그게 뭔지 아직 몰라서 속 시원히 설명을 못하는 것 뿐이다. 내가 '나'의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것이 가진게 쥐뿔도 없으면서 잘난척을 하는 것인가? 그게 그렇게 큰, 감히 이루지 못할 꿈인가? 내가 뭐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백만장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3. 만약 '다른 사람들은 뭐 자신의 길을 찾기 싫어서 안 찾는 줄 아니? 다들 그렇게 살 수 없으니까 그런 거잖아. 너는 왜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해? 니가 뭔데 너는 너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라고 말한다면, 어깨를 으쓱하고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그런 면에서는 난 사실 강한 사람이야. 라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아무리 부모 자식이라도 그들은 나를 100% 알지 못하니까. 결국에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나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을 필요가 있다.
4.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이상, 어느정도의 외로움을 지불해야 할 댓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의 - 그게 부모라고 할지라도 - 인정을 받기 위해, 이해를 받기 위해 이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응원과 지지를 받고 싶었으면 응원과 지지를 받는 길로 갔겠지. 나이키의 Dream crazier 광고를 보았다. 조금이라도 남다른 선택에 대해 사람들은 언제나 crazy 라고, 미쳤다고 한다고. 이상하게도 그게 조금 위로가 되었었다. 미쳤다고 하겠지. 하지만 결국에 내가 나의 길을 찾아 행복하게 잘 산다면, 미쳤다고 말했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가서는 박수를 친다. 그게 타인들이다. 나쁠 때는 손가락질 하고, 좋을 때는 칭찬하는 사람들. 그러니 엄청나게 그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다.
5.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라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타인에게서 들어오는 부정적인 에너지까지 받아들일 에너지가 없다.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차라리 혼자 운동, 산책, 독서, 글쓰기 등을 하는 것이 훨씬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
6. 어딘가에 반드시, 당신의 그룹이 있다. 혼자인 것 같아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걸 몰라서 혼자인줄만 알았다가 떠나고, 여행하면서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요즘에는 온라인으로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잘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의 성격과 경험과 유전자가 다른 만큼, 각자의 인생도 다양하다.
쉽지 않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밀고 나가서, 나만의 작은 행복들을 찾게 되면 그 작은 하나하나의 경험들이 모여 나의 선택을, 나 자신을 믿고, 자랑스러워하고, 긍정하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가장 강력하고도 든든한 아군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