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네모난 검은 것
로마와 나, 세 번째 이야기
로마가 운동장으로 향하는 엔진은 엉덩이다. 통통한 엔진으로 언제나 앞장서 길을 안내한다. 네 발이 지면을 두드리는 리듬을 따라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엉덩이를 흔든다. 가끔 친구나 민들레를 만나면 엉덩이의 스텝이 꼬이기도 하지만 로마는 대체로 규칙에 잘 맞춘다.
그리고 나는 엉덩이의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하며 그 정교한 리듬을 따라 길을 밟는다. 가차 없이 씰룩대는 그것을 바라보는 재미는 늦여름의 별빛 사이로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만큼 나를 기분 좋게 간지럽힌다. 녹천교는 때마다 그 마음을 잘 알아주고 내게 속삭인다. 사랑을 고백하라고. 그러면 나는 로마에게 사랑한다고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자칫 로마의 스텝이 꼬이면 나 또한 우당탕 거리며 우리의 충돌을 가까스로 피해보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모아 엉덩이의 리듬에 집중하고 즐거운 행진은 성공한다.
그의 엉덩이가 길잡이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엉덩이에 달린 기다란 안테나는 레이더 역할을 해서 전자파를 감지한다. 로마는 귀엽고 못생겼지만 때로는 신중하고 현명하며 객관적이다. 레이더에 불미스러운 신호가 잡히면 흥분하기 이전에 차분하고 냉정하게 증거를 확보한다. 엉덩이의 속도를 늦추는 기색 없이 불시에 말이다. 불시에 휙 돈다. 완벽한 180도의 반원을 그리면서 휙-.
로마는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헥헥거리던 입을 가만히 닫고 더 이상 무어라 하지 않는다. 대신 까맣고 깊은 눈동자를 들이밀어 인간에게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그 이상하고 네모난 검은 것을 주머니에 도로 찔러 넣도록 말이다.
저마다 지겹도록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로마는 세상에서 가장 미워한다. 두 번째로 미워하는 것은 냉장고가 열리고 닫히는 소리이며, 세 번째로 미워하는 것은 목욕이다. 하지만 휴대폰에 비할 것들은 아니다. 산책 중 흔들리는 엉덩이 뒤에서 몰래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걸리면 로마는 더 이상 산책하기를 완벽하게 중단한다. 휴대폰을 보이지 않는 곳에 얼른 찔러 넣고 자세를 낮춰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비로소 즐겁고 신이 나며 별빛 사이로 환호성의 메아리가 넘실거리는 산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날은 나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내가 이상하고 네모난 그것을 통해 몰두해 있던 주제는 10kg 미만 소형견을 위한 심장사상충약과 장에 좋은 사료에 대한 홍수 같은 정보였기 때문이다. 이리 오라 깜빡이는 배너와 현란한 카피라이팅과 나의 혼잣말을 도청하는 구글과 점차 다양해지는 할인율 폭격 사이에서 정신 차리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마케팅의 밀림을 해치고 로마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이번 달 생활비 내에서 충당할 수 있는 질 좋은 사료를, 흔들리는 엉덩이의 원천을, 로마의 철학을, 나의 위안을, 로마의 건강 똥을,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로마의 등에 발라주던 향긋한 액체가 심장사상충 감염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기사를 접하고 말았다. 화가 났다. 조금 더 꼼꼼하지 못하고 조금 더 알지 못했던 게으름과 무지에 대한 분노, 변명의 여지없이 느낄 법한 무력한 분노였다. 솜털 같은 민들레만 보면 한 입에 베어 무는 로마의 심장 사이로 벌레들이 눌러앉았을 까봐 벌써부터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인간은 너무나 사악하고 엄마는 언제나 부족하다.
엄마는 서운해도 할 말이 없다. 로마가 휙- 돌아보며 나를 나무랐던 때마다 약과 사료를 알아봤던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로마의 엉덩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걷지만 그 시간 위에 온전히 머물지 않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나는 솔로 - 돌싱 편’에 투영된 나의 모습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이혼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내가 저질렀던 잘못을 복기하기도 하고, 상대편의 귀책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언어로 정리하기 위해 단어 쪼가리들을 헤집기도 한다. 또는 도무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가끔은 죽고 싶다는 생각, 그러다가 문득 10년 후 로마가 방광염이나 요로결석이나 암에 걸리면 병원비는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한 걱정을 당겨 저 먼 미래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리고 강동구 길동의 한 아파트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한 여인에게 전화를 걸지 말지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엄마를 미워할까, 그리고 왜 이렇게 사랑할까.
멈춰 선 로마의 엉덩이를 문지르고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전화하는 대신 휴대폰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다신 꺼내지 않을 다짐을 했다. 그것은 사랑을 온전히 주는 어미가 되고야 말겠다는 다짐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불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