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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Sep 13. 2024

고환과 대퇴골은 어디로 갔을까?

로마와 나, 두 번째 이야기

로마는 한 살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인간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로마는 그 비밀을 자신의 뒷다리에 꽁꽁 숨기고 있었는데 비밀이 점점 커지자 도무지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비밀을 털어놓을 준비가 되었던 강아지는 용기 내어 왼쪽 뒷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인간은 안타깝게도 똑똑하지 않았다. 호들갑만 떨 뿐 절뚝거리는 아이의 비밀을 해석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강아지의 언어는 애처롭고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함께 살던 남자와 로마를 끌어안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을 법한 의사를 향해 달렸다.


진찰대 위에 선 로마는 잠시 슬퍼졌다. 4개월 무렵, 자신의 고환이 제거당했던 기억에 몸서리치며 잃어버린 두 개의 주머니와 영영 알 수 없을 교미의 즐거움을 애도했다. 그러는 동안 의사 선생님은 로마를 이렇게 저렇게 조물 거리며 비밀을 해독하느라 애썼다. 그녀는 똑똑했지만 과제는 쉽지 않았다. 급한 대로 노란 깁스를 감아 비밀이 담긴 뒷다리를 보호하자고 말했다. 어리석은 두 인간은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며칠 후, 첫 번째 의사가 추천해 준 다른 병원을 찾았다. 그곳의 간호사들은 로마의 정수리에 뽀뽀를 하며 환영해 주었고 맵시 있는 손길로 깁스를 풀어주었다. 뒷다리에 숨겨진 비밀이 얼마나 컸는지 혈관을 눌러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다. 비로소 털 사이로 바람이 솔솔 통하자 로마는 다리를 날름 핥았고 멈추어 있던 혈관은 가르랑 거리며 시냇물의 길을 터주었다.


두 번째 의사 송 선생님은 안경을 고쳐 쓰고 로마를 품에 안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기계에 넣고 사진을 찍고 어루만지고 두드리고 뼈와 살이 외치는 아우성을 유심히 들었다. 드디어 유능한 송 선생님은 비밀을 풀어냈다! 그러나 나는 곧 갸우뚱했다. 로마는 어찌 이런 어렵고 생소한 비밀을 자그마한 관절에 완벽히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송 선생님이 해독해 준 비밀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그마한 말티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전말이었다. 로마는 그제야 콧방귀를 뿡 뀌면서 나와 일동의 인간들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다.


대퇴골의 비밀을 알게 된 인간들은 바빠졌다. 한 살짜리 작은 생명체가 일주일 간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조만간 작별하게 될 로마와 서둘러 민들레 밭을 산책하고 정수리에 키스를 퍼붓고 뒷다리를 붙잡으며 행운의 주문을 중얼거리고 동네방네에 소식을 알려 세상이 로마를 걱정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주머니를 털어 300만 원을 마련했다. 인간이 병원에 지불한 300만 원으로 인해 불쌍한 강아지는 영문도 모른 채 수술대에 올라 알 수 없는 잠에 빠져 들었다. 고환을 빼앗겼던 때가 떠올라 눈가가 촉촉해졌다.


의사는 작은 강아지의 피부와 근육을 째려보며 신중하게 걷어낼 위치에 칼을 대었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대퇴골의 괴사 부위를 잘라냈고 다시 근육과 피부를 덮어 동여맸다.


로마는 잠에서 깨어났다. 입원실이라 불리는 유리 진열장에 갇혀 요도에 삽입된 관을 통해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맞은 편의 무력한 강아지들은 일말의 측은지심을 쥐어짜 내며 로마를 바라보았고 위로를 건넸다.


혼자가 된 로마는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어미를 잃고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던 그때, 수백만 마리의 어린 강아지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던 그때가 떠올랐다. 자신이 무어라 불렸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로마는 서둘러 바깥세상으로 뛰쳐나가 이름을 되찾아 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무지 도망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로마는 계속해서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잠의 소용돌이는 어미가 빠져드는 우울의 소용돌이와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깨어나면 끙끙 소리를 내며 엄마를 불렀다. 로마는 엄마를 불러 묻고 싶었다. 왜 자꾸 자신의 무언가를 빼앗아가는지. 빼앗긴 대퇴골의 빈자리는 너무도 공허해 그곳에 바람이 모였다. 바람은 털에 묻어 있던 작은 뼛가루를 싣고 날았다. 로마의 콧속으로 들어갔다. 재채기를 했다. 로마가 어미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재채기에 흩어졌다. 흩어진 질문은 민들레 위에 앉았다. 얼마 후 어미는 훌쩍이며 눈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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