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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Sep 11. 2024

당신은 나의 어미인가요?

로마와 나, 첫 번째 이야기

2020년, 나는 스물여덟이었고 그해 6월 결혼했다. 그리고 3개월 후 엄마가 되었다.


나의 젖을 향해 입맛을 다시는 갓난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그래서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를 찾았고 나는 그 작은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랬던 나조차 우리의 만남이 갑작스러웠는데 너에겐 얼마나 놀랍고 커다란 일이었을까? 나는 나를 엄마라고 소개하는 것이 생각보다 설레었고 그보다 어색해서 2개월 된 크림색 말티푸에게 공을 넘겼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로마야.”


오지를 누비는 탐험가처럼 열 두 평 신혼집을 당당하게 누비던 로마. 첫날 로마의 위풍당당한 자태는 우울의 소용돌이에 끝없이 매료되던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울은 어떻게 잊어가고 지워가고 잃어버리는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작고 귀여운 것을 보고 마음이 일렁이면 그 작은 파고가 감동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우울과 싸워 내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귀여움으로 무장된 용사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언제나 모호하다. 운명이라 이름 지어진 것들은 그러하다. 그래서 어쩌면 로마와 마주쳤던 첫 번째 순간이 사랑을 설명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바글거리던 복잡한 펫샵의 한 진열장 속에서 야무지게 기지개를 켜고 활기차게 바닥을 구르다가 바깥세상의 관객들을 맹수처럼 위협하던 로마였다. 로마는 그렇게 나를 불렀다.


나는 나를 부르는 그 작은 새끼 강아지를 꺼내어 달라 했다. 마치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천사를 발견한 것처럼 다급했다. 로마는 나와 마주친 순간 제자리를 방방 뛰면서 할 말을 가득 안고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다급한 인간과 위장한 강아지의 눈빛이 맞닿아 불꽃이 일었다. 그때 가게 주인은 요즘 인기 있는 말티푸 한 마리의 분양으로 매상이 얼마나 올라갈지, 흥정을 요구하면 어떻게 대응할지 계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하루에 수 십 번도 더 목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눈빛 사이에 튀기는 스파크와 그로 인해 무수한 의미를 생성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순간과 순간의 무궁무진한 틈바구니 사이는 의미로 가득했다. 그가 말티푸를 진열장에서 꺼내던 순간은 말티푸의 오랜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모견의 자궁을 기어 나와 지저분한 강아지 공장에서 살아남고 경매장에서 값이 매겨지던 그 모든 여정 말이다. 어미와 헤어지고 모르는 곳으로 옮겨 다니던 역사가 삶의 뒤편으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펫샵과 영영 멀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강아지는 자신만의 포근한 담요와 폭신한 인형을 선물 받게 될 거라는 예언이었다. 수없이 많은 충전선을 끊어 먹고 의자 다리를 갉아먹어도 통통한 배를 드러내 놓고 잘 수 있다는 뻔뻔함, 인간을 무참히 괴롭히는 악행에도 다시 철창에 갇힐 일은 없다는 행운을 암시하기도 했다. 세상은 로마의 편이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우리가 이미 가족을 이룬 순간이었고, 너그러운 세상이 맹수의 깜찍한 위장을 용서해 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이는 의미에 무관심했다. 그저 불편하지 않기 위해 몸을 바둥거리는 데에 사력을 다할 뿐이었다. 로마는 어색하게 꼼지락거리는 두 손바닥 위에서 중심을 잡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나도 미숙한 손바닥이었다. 나는 털 뭉치를 놓칠까 영 불안해졌다. 그래서 가방에 넣었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지구의 중력, 떨어지는 먼지, 이 작은 아이를 팔아 치우려는 아저씨, 그리고 아직 이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모르는 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신혼부부는 <말티푸/수컷/2개월/크림색>에 대한 값을 치렀다.


지하철은 한강을 따라 서울의 서쪽으로 로마와 남녀를 실어왔다. 그때 내 안에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었다. 갑자기 가방이 찢어지거나 가방 끈이 끊어지거나 세상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아이를 저 멀고도 깊고 아득하며 백만 년 된 빙하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지? 나는 괜히 아이의 조그마한 정수리가 가여워져 쓰다듬다가 두개골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다시 불안했다. 그러다 로마의 손을 잡고 집 앞에서 산책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이 작은 털의 덩어리는 네 발로 땅을 딛고 기어 다니는 짐승이었다. 나는 못내 아쉬워졌다. 까맣고 동그란 포도 알이 네 개 달린 발바닥을 집게손가락으로 조물 거리다가 오도독 터질까 서둘러 손을 거두었다.


두려움의 향연 속에서 나는 사랑의 작은 조각을 발견했다. 그 조각은 불안이라는 익숙한 이름을 달고 있었다. 걸음을 딛는 곳마다 관심과 걱정이 흘러 사랑의 길을 표시했다.


그리고 비로소 나를 ‘엄마’라 소개했다. 아이가 배고플까 걱정이 되자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의 어색함이 사르르 녹아버린 것이다. 집에 가면 ‘엄마’가 밥을 주겠다는 혼잣말을 나도 모르는 새에 속삭여버렸다.


그때를 생각하니 나는 소꿉장난 삼아 내게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말이다. 지금에 와서 다 큰 어른의 철없는 장난에 초대당해 버린 로마가 조금 가여워진 것 같다.


찰나 같던 밤과 낮이 반복되고 시간이 흘러 로마는 4살이 되었다.


세상 속에서 로마는 다리가 짧고 몸은 기다랗고 얼굴은 못생긴 6kg 강아지가 되었다. 로마가 길쭉해지는 동안, 세월은 마법을 싣고 우울의 소용돌이를 소멸시켰다. 영영 기를 수 없을 줄 알았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허리에 닿았고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가지 늘었다.


그리고 로마를 함께 가족으로 맞이했던 남자와는 이혼을 했다. 로마를 누구보다 잘 챙겨주었던 그는 이 아이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와 로마는 돈도 거처도 없다는 비참함에 서로를 끌어안고 본가에서 얹혀살다가, 얼마 전 서울의 끝자락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이사했다. 로마는 녹천을 누빈다.


녹천.


사슴 머리에 달린 뿔처럼 하천이 뻗은 곳. 로마가 마음껏 코를 씰룩이며 세상의 냄새를 뼈와 살에 6kg 가득 저장할 수 있는 마을. 마을에서 가장 반짝이는 북극성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집이라 불리는 공간에 도착한다. 로마와 내가 비로소 한숨을 토해내는 곳이다.


그렇게 밤이 된다. 밤이 되면 로마와 나는 이마를 맞대고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새로운 삶을 다짐한다. 때로는 틀어지고 다투고 화내고 삐치고 서운해하다가, 다음 날 눈을 뜨면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너를 필요로 한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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