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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Jan 10. 2021

커피가 돼버려라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째서 그녀와 나는 매번 이런 식으로 다투게 되는지 말이다. 어젯밤에도 사소한 것에서 말다툼이 시작되었는데, 그게 제법 큰 다툼이 되었다. 새벽 늦게까지 전화기 너머로 우리는 다퉜다. 어젯밤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올 겨울 들어서 가장 큰 함박눈이었다. 도로에는 눈이 쌓이고 있었고,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에는 눈이 소복이 덮여가고 있었다. 내가 커피를 너무 많이 먹는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를 마시는 게 건강에 나쁠 것 같다고. 걱정된다고 그녀가 화를 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이다. 걱정이 된다고 화를 내다니. 이거 참. 나는 그게 못 마땅한 거다.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그걸 이해받지 못하는 게 나는 억울하다.

내 좁은 원룸에는 짙은 갈색 원목으로 된 진열장이 있다. 침대가 들어갈 자리는 없어도, 커피 기구를 진열해둘 진열장은 있다. 각종 커피 드리퍼와 모카 포트, 케맥스, 프렌치 프레스, 다양한 모양의 핸드밀들. 아기자기한 커피잔들이 진열되어 있다. 진열장 한쪽 끝에는 작은 커피메이커와 원두 봉투, 저울이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커피메이커에 물을 붓고, 커피를 내리는 일. 원두 봉투를 열면 그때부터 커피 향이 방 안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아침을 제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아침밥을 먹고 난 뒤 커피 한 잔.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면, 커피 한잔. 늦은 저녁에는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한잔 마신다. 보통 평균적으로 하루에 5잔 정도 마시는 것 같다. 그런데 여자 친구는 그게 못마땅한 것이다. 하루에 다섯 잔이나 커피를 마시면 건강에 나쁘다고. 더군다나 빈속에 커피를 마시는 건 더더욱 나쁘다고. 하지만 난 좋은 걸. 게다가 나는 술이나 담배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지도.

새벽까지 눈이 내렸다. 아침 태양 빛이 세상을 밝히자 나무도, 건물들도, 도로도 모두 하얀 눈으로 덮였다. 턴테이블에 Dave Brubeck의 Time Out 앨범을 틀어 놓고, 그저께 사놓은 에티오피아 원두를 내려 마셨다. 아침 햇살이 서서히 밖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가 돼버려라.”라고 말하며 그녀가 전화를 쾅 끊었다. 버튼을 눌러서 껐지만. 쾅하고 끊은 것 같은 옛날식 수화기가 연상될 만큼 강렬한 말투였다. “어쩔 수 없다구. 커피는 내 취미인걸. 이해받지 못하는 내가 더 기분 나쁘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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