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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Jul 12. 2019

바리스타 히스테리

  바리스타가 멋지다고 다들 그러더군요.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감사합니다. 마침 저도 바리스타라서요. 멋지다고 생각해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맛깔나게 날이 선 셔츠 깃, 쿨 한 어깨선. 커피 머신 앞에서 움직이는 날렵한 손동작이 폼 나고 멋져 보일 수 있다는 점 인정한다. 그럴 수 있다. 능숙하고, 진지하게 커피를 내리는 모습과 분위기가 커피와 잘 어울린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충분히 인정한다(물론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음).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에 있는 실체는 다를 수 있다는 걸 아는지. 바리스타가 깔끔해 보여도 실은 거울 한번 보지 못한 채 땀 흘리며 꾀죄죄하게 일을 하는 중이다. 성격은 무척이나 얄팍하고 예민해서, 뭐 하나 반듯하게 바로잡지 않으면 참지 못 하는 데다, 커피가 마음대로 나오지 않으면 신경이 날 선 채로 주위를 찔러버린다. 비록 여러분은 손님이기에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물론 내가 그렇다는 말이지만요).


  대부분의 바리스타들은 습관적으로 닦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제 위치에 각을 만들어 놓는다. 행주 하나도 반듯하게 접어야 하고, 기구들도 주위 배치와 공간에 맞춰 딱 떨어지게 둬야, 속이 후련하고 개운 해진다. 여러 바리스타를 만나봤지만, 다들 사소한 강박증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리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 선반에 놓인 잔은 규칙적인 배열로 정리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시럽이나 소스 통들도 크기 별로 나란히 줄 맞춰 있어야 하고, 행주는 제자리에 제 모양으로 있어야 한다. 만약 이런 규칙이 어긋나 있으면 가슴의 어느 한 구석이 결린 것 같이 피가 안 통하고 뻣뻣해지는 느낌이 든다. 마치 고무줄로 머리를 단단히 묶은 것처럼 답답한 기분이다. 어쩌다 이런 문제를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일종에 바리스타의 직업병이다.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병이 도지게 되면 신경이 엄청 예민해진다. 모든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고는 괜한 짜증과 심술이 폭발한다. 바리스타 히스테리다.

  그리고 바리스타는 커피를 추출할 때 굉장히 예민해진다. 1g 단위의 미묘한 차이에 바짝 신경을 쓰면서 커피를 추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커피가 마음대로 추출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커피를 마시며 확인하고, 재차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속도 쓰리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난다. 이럴 때는 어딘가 공기의 흐름이 살짝만 틀어져도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리듬이 꼬이고, 집중이 흐트러지면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마치 화가 잔뜩 난 고양이처럼 된다. 털이 곤두서고 날카로운 발톱이 드러난다. 언제 갑자기 할퀴면서 달려들지 모르니 조심하길.



  한 번은 주말에 한창 바쁠 시간에 묘하게 주변 공기가 엉키더니, 결국 리듬이 꼬여버렸다. 게다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커피도 마음대로 나오지 않았다. 손님은 잔뜩 몰려오고, 커피는 내려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지고, 주문서는 한참 밀리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은 허둥지둥거리고 주문도 잘 안 받았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차 올랐다.

  그런데 그때, 눈치 없는 사장님이 어슬렁거리며 뒤에 오더니 시시콜콜한 농담이나 던지면서 히죽거리는 게 아닌가.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 혼자만 여유로운 얼굴이다. 그 날에는 나도 모르게 욱, 하고 열이 올라서 발톱을 드러내고 사정없이 할퀴어 버렸다. 갑작스러운 짜증에 사장은 무안하다는 듯 나가버렸다. 뒤 돌아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까지 화를 냈어야 했나 싶지만. 그때 당시에는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라 할까.


  친절한 서비스와 미소, 단정한 모습과 매너에 바리스타가 근사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리스타는 생각보다 정신이 올바르지 못한 편이다. 예민하고, 소심하고, 난폭하고, 날카로운 면이 있다. 가슴속에는 히스테리 하나씩 숨기고 있다. 어느 시점에 갑자기 폭발할지 모르니, 조심하길.

  그런데, 아니라고요? 못 믿겠다고요? 성급한 일반화라고요? 아닙니다. 이건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몸으로 겪으면서 느낀 이야기입니다. 정말이지 히스테리가 있습니다. 굉장히 악질의 히스테리죠. 자주 가는 카페에 들러 친한 바리스타에게 한번 물어보시길.


  그나저나 어째서 사장님들은 하나 같이 다들 눈치가 없는 걸까요.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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