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 설거지에 푹 빠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설거지를 너무 좋아해, 일하는 와중에 아주 조금의 틈만 보이면 싱크대로 달려가 고무장갑을 끼고는 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내가 한번 할 때 그는 네 번은 했던 것 같다. 어째서 그렇게나 설거지에 푹 빠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이지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함께 일을 하다가 설거지가 조금만 쌓인다 싶으면 “어라, 설거지해야겠는데.” 하면서 슬그머니 싱크대로 갔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부지런하게 설거지를 하다니, 그거 참 성실한 직원의 태도군요.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설거지에는 문제가 조금 있었다.
첫 번째로 그의 설거지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설거지를 시작하면 끝을 내고 훌훌 털고 나오지를 못했다.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허우적거리며 온종일 설거지 구덩이에서 발버둥 쳤다.
그의 설거지 방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반납된 잔들을 싱크대 옆에 차곡차곡 정리해두고, 잔들을 꼼꼼히 뜨거운 물로 씻어낸 다음,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하나씩 종류에 맞춰 씻는다. (아이스잔, 둥근 잔, 머그잔, 그다음은...) 수세미질을 할 때는 유리잔에 거품이 잔뜩 묻어야 만족한다. 그리고 잔을 헹군다. 그러다 건조대가 가득 차면, 고무장갑을 벗고 리넨으로 잔을 닦기 시작한다. 몇 개 닦아내다가 건조대에 공간이 생기면 다시 남은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렇게 설거지를 하다 보면 새로운 빈 잔들이 우르르 반납된다. 그럼 다시 시작이다. 종류별로 정리하고, 뜨거운 물로 씻고, 수세미에 거품을 만들어서… 흐음.
그의 설거지는 절차가 너무 많고, 요령이 부족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속도와 요령이 붙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의 설거지를 살펴보고 배우거나, 스스로 요령을 체득하는 법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설거지 속도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두 번째 문제가 있었다. 그는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면, 매장이 점점 바빠지고 주문서가 산처럼 쌓여도 꿋꿋하게 설거지만 했다. 설거지가 당장 급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이에 대해 몇 번을 설명을 하고 알려줬지만 결코 변하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아마도 그에게는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청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결국 나와 다른 직원들은 그의 설거지 애착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그리고 이후에 있었던 일인데, 다른 직원들이 밀린 음료를 분주히 만드느라 주문을 받지 못했고, 손님은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이때, 나는 그가 손님을 보는 것을 봤다. 설거지를 하면서 기다리는 손님을 슬쩍 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설거지만 했다. 아마도, 무언가 있었을 것이다. 설거지에… 뭔가가…
그때 당시 나는 그가 정말 얄미웠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화가 슬금슬금 올라온다. 물론, 각자의 급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설거지를 해야만 하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음.
나는 개인적으로 이건 센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매장 전체의 흐름을 살피고 읽어 낼 줄 아는 감각. 적절히 치고 빠질 줄 아는 감각의 부족. 만약 그게 아니라면... 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이럴 때면 일을 잘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여러 번 생각해봤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음, 저분 일을 참 잘해.라고 생각하게 된 적은 많지만. 그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똑 부러지게 말할 자신은 없다.
만약 내가 사자라면, 으흠, 자네 사냥을 참 잘하는군. 하면서 일 잘하는 사자를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것이지만 단순히 사냥을 잘하는 사자가 일 잘하는 사자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단순 명료한 기준이 사자가 아니라 카페를 바탕으로 생각하게 되면, 복잡하고 난해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카페의 일은 사자의 사냥처럼 결과론적인 수치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복합적인 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건 어쩌면 인류의 진화나 지구의 탄생과 같은 수수께끼 중에 하나일지도.
그러니 설거지를 하는 것만 보고서 너는 정말 일을 못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 다른 사정이 있고,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설거지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들어가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만약 설거지를 하던 직원이 갑자기 달려와 “제가 설거지를 이토록 못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매니저님이 설거지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리드하지 못한 탓이에요. 책임지세요.”라는 식으로 말해버리면, 이거 참 난감해진다.
정말이지 사람의 일은 모든 게 수수께끼다. 일 하면서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사람이 가장 어렵다. 차라리 사자로 태어나는 게… 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설거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잔뜩 쌓여 있는 잔들을 묵묵히 씻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개운한 기분이 든다. 시간도 잘 가고, 나름 열심히 일 했다고 생색도 부릴 수도 있다. 손님들이 오가는 타이밍을 보고, 바가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고무장갑을 낀다. 그리고 가을 낙엽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잔들을 빗자루질 하 듯 닦아 나간다.
카페의 일은 생각보다 정신적인 피로도가 높다. ‘서비스’ 측면의 피로도 크지만, ‘업무의 속도’ 측면에서의 피로도가 더 높은 편이다. 서비스 측면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손님에게 서비스를 하는 것에서 오는 정신적인 피로감이다. 항상 미소를 지어야 하고, 친절해야 하는 것들.
업무의 속도 측면이라고 한다면, 일을 처리하는 속도에서 오는 피로감을 말한다. 주문을 받고 손님에게 음료를 제공하기까지 과정의 속도. 그 속에서 얻는 정신적인 압박은 생각보다 크다. 이를테면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서, 주문서가 계속 쌓이게 되면, 일하는 직원들은 밀리는 주문서를 보면서 행여나 음료가 늦게 제공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서두르게 된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음료가 늦으면 불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에 직원의 손과 마음은 점점 급해진다.
카페의 일은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 속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손님이다. 손님이 몰려서 주문서가 쌓이면, 어쩔 수 없이 최대 출력을 내야 한다.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출력을 서서히 줄인다. 만약 손님이 몰리는 러시 타임이 길어지게 되면, 직원들의 정신은 레이싱을 마친 자동차 엔진처럼 과열되고, 과부하가 걸린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눈이 흐려진다. 사고와 실수는 이럴 때 생긴다.
반면에 설거지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아주 편안한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묵묵하게 나만의 속도에 맞춰서 하나씩 씻으면 그만이다. 손님에게 쫓길 필요도 없고, 출력을 올렸다 내릴 필요도 없다.
한참 바쁘게 일을 하고 설거지를 할 때면, 과열된 엔진에 찬 물을 끼얹은 기분이다. ‘치이익’ 거리면서 피로감이 누그러든다. 그래서 설거지의 편안함을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다. 본능적으로 설거지를 찾게 된다. 조금만 피로 해져도 “어라, 설거지가 너무 많은데?” 하면서 슬그머니 싱크대로 가게 된다.
그런데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설거지가 아무리 좋아도, 상황에 따라서는 치고 빠질 줄 아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정말. 에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