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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바리스타 Aug 05. 2019

이름 짓기

  나는 이름 짓기를 잘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게임을 시작할 때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그걸 두고 한참을 고민하곤 했다. 애초에 센스가 부족한 편이다. 다른 친구들은 센스 있는 이름을 뚝딱 만들어버리는데 내가 지은 이름은 항상 유치하고 의미 없어 보였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양이 이름을 지을 때면,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눈에 보이는 것 중 마음에 드는 단어를 이름으로 붙여버린다고 한다. 갈매기, 포도, 고추냉이. 이런 식이다. 참 쉽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둘러봐도 잘 안 된다. 센스의 문제다.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센스가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새로 개발한 메뉴 이름을 붙여야 할 때.

새로운 음료를 개발하는 건 재료를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책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다 보면 그럴싸한 음료 하나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다.

  보통 새로운 메뉴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계절이 바뀌거나, 제철 과일이 바뀌거나, 매출 감소의 위험을 느낀 사장님의 절박함으로 만들어진다. 그럴 때면 사장님이나 매니저가 뚝딱하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그렇게 새로운 음료가 만들어지면, 직원들과 함께 마시며 판매 가능성을 살펴본다. 그리고 좋은 평가를 얻게 되면, 그다음이 이름 짓기다.

  음료의 이름은 아주 중요하다. 실제로 음료의 이름 문제로 실패하는 사례도 있다.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거나, 어려운 전문 용어인 경우에는 손님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흥미를 끌지 못하면 신메뉴로 나왔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New라는 표시를 붙여도 손님들은 눈치를 못 챈다. 마케팅의 실패다.

  이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호기심을 가질 법한 단어의 조합, 세련되고 쉬운 듯하지만 전문적인 느낌이 있어야 한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밀고 당기며 적절한 지점을 찾아내는 건 완벽한 데이트 코스를 짜는 것만큼 어렵다. 

  게다가 손님들은 음료 이름을 통해 일차적으로 음료의 이미지와 맛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상상한 이미지와 맛이 실제 음료와 크게 다르면 손님들은 당황한다. 간혹 배신감도 느낀다. 

  음료의 이름은 입에 착 달라붙어야 하고, 적당히 센스 있게 폼 나야 하고, 음료의 이미지, 맛과 적절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조건들이 늘어날수록 내 머리는 점점 굳어진다. 갈 길을 잃어버린 개미 군단처럼 생각이 사방팔방으로 날뛰고, 창의력이 발휘될 공간이 줄어든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주위를 쓱 둘러보고 적당히 눈에 들어오는 단어를 음료에다 붙여버리면, 사장님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며 구박을 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사장님은 음료 이름에 카페의 이미지도 적당히 녹여져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고 저렇고. 제한 사항이 너무 많으면 어떤 것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런 날에 직원들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단어나 뱉어 낸다. 뭐라도 걸리겠지라는 심정이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키고 무수한 단어들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유치함이 난무한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결국 결정되는 이름은 사장님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단어다. 뭐, 뭐든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게 사회입니다. 흐음… 이럴 때는 눈치껏 사장님이 좋아할 법한 단어를 유추하고, 사장님 마음속에 있는 그 단어를 누구보다 빠르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심해야 할 것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사장님의 생각이다. 

  아무튼 이런 일이 있을 때면, 괜스레 마음 한편에서 쳇, 결국 하고 싶은 걸 할 거면서.라는 비꼬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하면 딱히 이름 짓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적당히 형식적인 맞추기 식으로 말할 뿐이다. 어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원래 세상은 모두 그런 법이다. 펭귄의 걸음을 흉내 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나저나 만약 내 카페를 차리게 된다면,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사람들의 기억에 잘 남아있고, 발음하기 좋고, 의미가 좋고… 뭐 그런 것 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그냥 유치하지 않은 적당한 이름 하나면 충분할 것 같은데 말이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적당한 단어를 골라 붙여서 뚝딱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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