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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Jul 27. 2019

매장 음악

  카페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부러워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음악을 들으며 일 할 수 있다는 것. “일 하면서 좋은 음악도 듣고, 좋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잖아. 기분 좋을 것 같아. 부러워.”라고 말한다.

  만약에 이런 내용이 인터넷에 기사로 나온다면, 전국의 수많은 바리스타들이 댓글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가 글을 썼네. 대체 뭘 보고 기사를 적는 거야? 어떻게든 쉽게 돈 벌려고 살려고 말이지. 최악이군.” 하고 말이다. 


  나는 아주 많은 카페에서 일을 해본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일곱 곳 정도에서 일을 해봤다. 그 결과, 음악에 대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카페의 음악은 사장님의 음악적 수준과 감각에 따라 정해진다는 점이다(당연한 얘기이겠죠?). 이를테면 클래식을 즐겨 듣고,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사장이라면 매장에는 클래식이나 연주곡의 음악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팝송이나 가요가 나올 경우는 거의 희박하다. 반대로 팝송이나 가요를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월드뮤직이나 재즈를 틀어 놓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고 선택이다.

  그러므로 만약 카페에서 일을 하고자 한다면, 꼭 사장님의 선곡 센스를 체크해봐야 한다. 사장님의 음악적 감각이 나와 너무 맞지 않으면 매일매일이 괴로워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재즈를 좋아하고, 매장 음악으로는 잔잔하고 적당히 차분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쪽이 일하면서 듣기에 좋다. 만약 정신없이 방방 튀는 음악이나, 활기찬 멜로디와 보컬 중심의 음악이라면, 나는 바람이 빠지는 풍선처럼 서서히 진이 빠져 버린다. 일하면서 피로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일하는 곳의 음악은 정말 중요하다.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일할 맛이 난다. 발이 가벼워지고 긴장이 풀리고, 어깨가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꼭 매장 음악을 체크한다. 어떤 카페에 이력서를 넣을 예정이라면, 꼭 그곳의 음악을 들어볼 것. 그것이 나의 작은 규칙 중 하나다.


  내가 다녔던 카페들의 음악은 어떤 식이었는가 이야기하자면, 사장님의 개인적인 취향이 강력하게 담겨있는 월드뮤직이나 강렬한 리듬감의 빅밴드 재즈만 틀어 놓는 곳이 있었다. 낯선 멜로디와 수많은 악기들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또 어떤 곳은 매장 콘셉트에 잘 어울린다며 ‘둥둥’ 거리는 정신을 쏙 빼놓는 EDM 음악을 틀어 놓는 곳도 있었다. 이 곳에서 일할 때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매장 음악은 음악에 전혀 무관심하다는 듯이 쿨 하게 음악 차트를 한데 묶어 버린 플레이리스트였다. 그때는 정말 최악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매장이었다. 이곳은 유튜브에 있는 ‘2018-2019 팝송 BEST 30.’ 같은 음악만 주야장천 틀어 놓았다. 사장님께서 특별히 음악 선곡에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 2시간 정도 길이의 ‘2018-2019 팝송 BEST 30’만 온종일 재생하고 또 재생했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출근해서 오픈 준비를 마치고, 음악을 재생하는 순간 ‘아. 오늘이 또 시작되었구나.’ 하는 지루한 기분이 든다. 서서히 진이 빠진다.

  이때 들었던 멜로디가 관절 마디마디마다 새겨졌다. 길을 걷다가 비슷한 멜로디나 목소리만 들어도 몸 구석구석에서 세포들이 진저리 쳤다. 이렇게 똑같은 음악을 계속 듣느니, 차라리 코가 길어지는 게 더 났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곳에서 일을 한 이후로 다시는 그런 종류의 음악은 듣고 싶지 않아 졌다. 실제로 그때 이후로 팝송 종류는 거의 안 듣고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브루노 마스… 개인적으로 그들의 노래가 싫은 건 아니지만, 미안하게도 정말 잘(전혀) 들어지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몸의 구석구석에서 세포들이 진저리 치는 느낌이다.

  만약 활기찬 멜로디와 시원한 보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와는 다르게 기분 좋게 음악을 들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30곡 정도의 음악을 8시간 동안 무한 재생하며 며칠을 듣는 것은 분명히 무리다. 귀에서 일하는 인부가 ‘음, 더 이상 이런 소음은 들을 수 없군.’이라고 말하며 귀의 통로를 막아버릴지도 모른다. 귀의 통로가 막히면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코가 길어질지도. 하지만 차라리 그게 더 낫다.

  그런데 글을 적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그때 당시 카페의 사장님은(사장님도 함께 일했다) 나처럼 음악이 지루하지 않았을까? 며칠이 지나면 다른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할 법한데, 족히 한 달은 지나야 바꿨다.

  흠, 어쩌면 사장님은 수년간의 훈련으로 귀의 인부를 부릴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이 생겼던 게 아닌지. “수년 동안 일하면서 음악을 들으면 말이지. 적당히 귓속의 인부를 부릴 수 있게 돼. 인부를 시켜서, 멜로디가 들어오는 길목에 적당히 딱지를 덮어 막아버리는 거야. 그리고 필요할 때는 귀 청소도 시키지.” 음, 그러고 보니 그때 사장님의 코는 꽤 컸다.

  아무튼. 카페에서 일을 할 예정이라면 꼭 음악을 체크하시길. 음악을 통해서 사장님의 스타일도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직원 복지 중에 음악도 아주 중요한 복지 요소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매장 음악은 손님이나 매장의 분위기를 위해 재생되겠지만, 하루 8시간 동안 반복되는 음악을 듣는 직원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는 법이다. 물론 전적으로 직원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만.


  에헴, 이건 저의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엘라 피츠제럴드나 쳇 베이커, 스탄 게츠 같은 재즈 음악이 주야장천 나오는 카페라면 꼭 한번 일 해보고 싶습니다. 혹시 주위에 그런 카페가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부탁입니다. 그런 곳이라면 직원이 되지 못해도 손님으로 방문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습니다. 그렇게 음악적 센스가 뛰어난 사장님이라면 분명 커피도 맛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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