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잡문인 Dec 16. 2019

텀블러 이야기

  예전에 1시간 30분 정도 되는 거리를 출퇴근 한 적 있다. 새벽 6시에 버스를 타고 출근했는데,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출근 준비를 할 때마다 커피가 너무 먹고 싶어 졌다. 출근하면 커피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 참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 출근을 준비하는 그 시간에 커피가 먹고 싶어 졌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추출해두고 출근 준비를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시간에 커피 메이커가 꾸룩꾸룩하면서 추출이 끝났다는 소리를 낸다. 그러면 나는 냉큼 달려가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밤새 내려앉은 안개가 몸속을 뿌옇게 채우고 있었고, 커피를 마시자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찌뿌둥한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내 몸이 커피를 원했던 게 아닐지. 커피를 몇 모금 마시면 출근 준비가 끝난다. 커피는 텀블러에 옮겨 담고, 버스를 타러 나간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홀짝홀짝 커피를 마신다.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 갈 때마다 느끼는 부분인데, 텀블러는 생각보다 불편한 점이 많다. 텀블러를 가지고 나가면 항상 손에 들고 다녀야 한다. 커피를 다 마셔도 가방에 넣을 수 없다. 뚜껑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남은 몇 방울의 커피가 슬금슬금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뚜껑으로 단단히 막는다 해도, 조금씩 흘러나온다.

  만약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에 커피를 마시려고 카페를 간다면, 텀블러에 받아와서 책상에 앉아 마시면 된다. 하지만 밖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가방도 들고, 책도 들고, 우산도 들어야 하는 경우에는 텀블러가 너무 불편하다. 온종일 들고 다녀야 한다. 그럴 때는 그냥 종이컵에 커피를 받고, 후다닥 마시고 컵을 버리는 게 속 편하다. 환경 문제 때문에 가능하면 텀블러를 사용하려 하지만 이거, 참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국의 한 스타트업이 텀블러를 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를 보고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감탄했다.

  어떤 것인가 하면, 스타트업 회사가 재사용이 가능한 컵을 제작하고, 컵을 각각의 카페에 제공, 회수하는 서비스를 하는 회사였다. 그러니까 스타트업 회사는 서비스에 가입 한 카페에 제작한 컵을 아침마다 여러 개 제공하고, 컵을 제공받은 카페는 일회용 컵 대신 제공받은 재사용 가능한 컵을 사용한다. 이 컵에 커피를 받아간 손님은 커피를 다 마시고,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는 카페 혹은 시내에 비치된 전용 수거함에 컵을 반납한다. 그리고 반납하며 포인트를 적립한다.

  스타트업 회사는 시내를 돌면서 반납된 컵들을 수거해 가고, 재고 확인을 하고, 세척 후 매일 아침 각각의 카페로 컵을 다시 분배하는 시스템이다. 게다가 컵의 아랫면에는 칩이 삽입돼 있어 컵의 위치와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정보라고 한다면 누가 어떤 음료를 담았고, 어디에서 받아서, 어디에 반납되었고 등등 손님들의 정보를 상시적으로 수집할 수 있고, 쌓인 데이터를 통해 더 좋은 서비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이런 종류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가 크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아이디어의 스타트업 회사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도 많이 해주고 있다고.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런 회사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기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런 텀블러 서비스 회사라면 나는 매일, 항상 사용할 것이다. 정말.


  기본적으로 사업체는 영리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비영리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회사가 있다. 환경문제나, 인권문제, 서비스 문제 등.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단순 영리적인 사업체보다는 조금 더 가치를 품고 있는 쪽으로 소비하게 된다. 단순히 싸고 편한 것보다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쪽으로 소비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째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그렇지 않은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이상 기후와 기온 변화로 인해 세계 농작물 재배에 큰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 열매 생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일은 아니지만. 만약 커피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벌써 슬프다. 그렇게 되면 내 생활은 정말 불행해질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문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가능한 텀블러를 사용하도록 노력할 수밖에. 그러니 이런 입장에서 앞서 말한 영국의 텀블러 회사의 서비스를 들으면 훌륭하다고 느낄 수밖에.

  아무튼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좋은 해결책이 나와서, 일회용 컵 쓰레기를 줄이고 소비자들도 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런데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다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실행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보증금이라는 제도는 소비자가 일회용 컵을 매장에 잘 반납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아닌지. 그러니까 이 제도는 일회용 컵의 사용을 줄이는 목적이 아니라, 재활용을 잘 하자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제도이지 싶다. 흐음, 그렇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에헴.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볼 수는 없었을까. 에헴.

이전 07화 코끼리 손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