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빚으로 집을 지었다. 대출 금리는 오르고 경제 상황은 글로벌하게 안 좋아진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꽤 괜찮았다.
9살 때 대방동 공군본부 옆, 얕은 언덕 위에 있던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근사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나올 법한 장면이 우리 가족사와 오버랩된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에 이어 뿔뿔이 흩어진 가족, 그리고 오랜 단칸방 생활.
10년 전쯤 나의 서울 자취방에 잠시 머물렀던 동생이 그 대방동 집을 찾아가 1시간쯤 서성이다 왔다고 했다.
동네는 변했지만 집은 그대로였다고. 그 집과 작별할 때 동생 나이가 6살, 어떻게 그 어렴풋한 기억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 있었는지, 난 가늠할 수 있어서 슬프고 대견했다. 내 동생은 참 성실하게 잘 살고 있다. 집을 자꾸 샀다 팔았다 하는 게 걸리지만 말리진 않는다.
나도 이번 집이 네 번째인데, 솔직히 꽤 손해만 봤다. 90년대 초중반 학번들은 졸업할 때 IMF로 취업문이 닫혔고, 힘들게 취직하고 결혼할 때쯤인 2006년 부동산 가격은 최고를 찍었다. 인생을 설계할 중요한 시기가 고난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 이후에 취업 시장이 좋아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내가 집에 집착하는 건 어렸을 적 ‘단칸방 살이’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가 아닐까 한다.
그래야 매달 나가는 이자를 볼 때마다 마음의 안정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으니.
날이 좀 풀리면 10평 남짓한 마당에 작은 나무와 꽃을 좀 심을까 하는데 82년 대방동 집엔 목련과 코스모스가 있었던 것 같다.
꿈과 무모함으로 시작해 관심과 추억 그리고 빚으로 완성된 우리 집.
앞으로 꿈은 키우고 추억을 쌓으며 빚은 줄이면서,
빚내서 지은 집, 빛내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