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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Mar 18. 2022

내 봄을 축하해

  봄을 맞이하는 파티를 해야겠어.

- 나현정, 『봄의 초대』          

  


3월이지만 날씨는 한 겨울이다. 어쩌다 날이 따뜻해지기라도 하면 그 틈을 노리기라도 한 듯 미세먼지가 달려온다. 이처럼 추위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오니 더욱 봄이 간절하다. 작년과 재작년은 코로나로 맑은 날이 많았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자 수는 연일 10만 명이 넘어서고(어제는 60만이 넘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까지 일어나 더욱 가라앉은 분위기다.


새싹이네.

이제 겨울이

끝나려나 봐.     


봄을 맞이하는 파티를 해야겠어.     

  

그림책 《봄의 초대》에서 이 문장들을 보는 순간 그 시름들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특히 “봄을 맞이하는 파티를 해야겠어.”에선 심장이 일렁거려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참 머물렀다. 몇 줄 안 되는 문장들이 금세 마음을 바꾸어 놓다니 바로 이런 것이 마법이지 싶었다. 곧이어 마음도 따라 일어섰다.

 

 ‘나도 잔치를 해야겠어. 봄을 맞는 잔치!’

  

나는 바로 노트를 꺼내 단어들을 쓰기 시작했다. 올봄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단어들을 떠올렸다. 곧 그들을 데려와 잔치를 열 것이다.

  

반려견 산책을 하면서도, 뒷산 숲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단어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불리어 온 단어들 가운데 더 마음이 많이 가는 것으로 4개를 골랐다. 그리고 그것들을 엽서에 써서 상록오색길로 들고 갔다.

  




“어르신, 봄이 참 더디 오네요. 겨울잠에서는 깨어나셨나요?”

  

“자네 왔나? 겨드랑이가 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드네. 그래서 이제 그만 잠에서 깨어나 봄 맞을 준비를 하려던 참이네. 우리에게 봄은 아주 중요한 시기라네. 이제부터 에너지를 모아야 하니 말일세.”

  

“그러실 테지요.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질병을 막을 힘도 필요할 테니까요. 오늘 저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가 그린 화사한 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그림을 가져왔어요. 그리고 뒤에다 이번 봄에 초대하고 싶은 단어들을 써 가지고 왔어요. 바로 ‘바람, 맨발 걷기, 1일 1클래식 그리고 결단입니다. 올봄 저와 친구가 될 단어들이에요.


저는 이것들을 온몸으로 맞을 거예요. 오늘은 이 단어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걸으려고요. 어르신은 올봄에 초대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




  

“단어 친구들 이야기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걸 보니 자네의 올봄은 개나리처럼 노란빛으로 물들 것 같네 그려. 꽃 그림도 화사해서 눈이 부셔. 나도 물론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지. 부드러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 싱그러운 노래 선물해주는 새들, 그리고 아름다운 노을과 은은한 달빛이지. 작년처럼 올해도 이 친구들과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네. 그럼, 잘 다녀오게나.”

  

안부 인사를 기분 좋게 마친 나는 등산화를 벗어 비닐에 넣어 가방에 매달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1코스가 끝나고 들판으로 들어서면 거기에 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엽서에 써 간 단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바람, 맨발 걷기, 1일 1클래식, 결단     




대표

© thips, 출처 Unsplash


<바람>

봄을 맞이하는 잔치에 가장 먼저 초대하고 싶은 대상은 ‘바람’이다. 예전 같으면 ‘햇살’이라고 했을 것이다. 밝고 따스한 햇살이 대지를 녹이면서 봄이 시작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햇살은 왠지 수동적으로 느껴지고 바람이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아무래도 긴 시간 코로나가 이어지고 있어 잔잔한 햇살보다는 새 기운을 불러일으킬 바람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영화 ‘해피해피 레스토랑’에서 “오늘 아침에도 기분 좋은 바람이 목장으로 태양의 향기를 실어다 줬어요.”라고 한 것처럼 바람이 햇살을 업고 오면 되겠다. 겨울잠에 잠겨 있는 나무와 언 땅에 바람이 스치면 그들이 일어나고 천지엔 비로소 새 생명들이 탄생하면서 봄이 시작될 것이다. 어디 그것이 나무와 땅뿐이랴. 생명 있는 것이라면 모두 보드랍고 따스한 바람의 세례를 맞고 싶어 할 것이다.

  

나 역시 바람의 감촉을 느끼면서 내 감각을 깨우며 교감하고 싶었다. 긴 옷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제대로 느낄 수는 없겠지만 버선발로는 모자라 맨발로 맞이하고 싶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껴안으면 생의 기쁨을 만끽하리라.

  

바람이란 그런 존재이다. 특히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지금 바람 속에서 자유와 생명의 기운을 받고 나면 없던 입맛도 되살아날 것이다. 바람은 오감, 육감을 넘어 영감을 실어다 줄 존재이다. 피부에 와닿는 바람 한 자락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껴안겠다는 마음으로 걸었다. 무디어져 있는 내 감각을 바람이 깨우면 내 감성은 더욱 충만해질 것이고, 내 삶은 신의 은총을 받은 듯 윤이 나리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올봄 나는 바람을 초대하여 그의 기운에 기대어 더 나은 사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련다.         

  





<맨발 걷기>

며칠 전 아침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열었는데 연두색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3월이 되었다고 통신사가 센스 있게 바꾸어 놓았나 생각했다. 2월 28일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 그림에서 힘을 받은 나는 벌떡 일어나 간단한 요기를 하고 바로 뒷산으로 올랐다.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없고 기온도 좀 올라와 있었다.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들 옷도 많이 얇아져 있었다. 나 역시 얇은 패딩을 입고 나갔다.

  

숲길로 들어선 뒤 등산화도 벗고 양말도 벗었다. 한 겨울에 맨발로 걸었다가 냉기가 훅 타고 올라와 다시 신은 적이 있는데 드디어 맨발 걷기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봄을 기다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맨발 걷기였다.

  

맨발 걷기에 관심이 많았던 작년에 알고나 걷자고 그에 관한 책을 한 권 샀다. 그동안은 맨발로 걸으면 지압이 되어 혈액순환을 좋게 할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 효과가 엄청나다는 걸 알았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누굴 만나거나 통화라도 하게 되면 맨발 걷기를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의 질병 가운데 약 90프로, 좀 자세히 말하면 암•동맥경화증•당뇨•뇌졸중•심근경색 •간염•신장염•아토피•파킨슨 등은 활성산소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맨발로 걸으면 땅속에 있는 음전하(-)가 몸 안으로 올라와 양(+) 전하를 띤 이 활성산소를 중화시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물을 안정화시키면서 천연의 신경 안정 작용 효과까지 준다고 한다. 책에는 저자가 운영하는 맨발 걷기 회원들이 본 효과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다.

  

맨발 걷기는 시간과 용기를 내면 쉽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일이다. 맨발로 땅을 밟는 순간 기분이 상쾌해지고 평온해지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발을 벗는 순간 거추장스러운 게 싹 사라지는 기분과 함께 자유로움도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꽤 많이 다니는 상록오색길을 걸을 때도 맨발로 걷는다. 다 걷고 나서 신발을 신으면 내가 그동안 그토록 무거운 걸 신고 다녔나 할 정도이다. 몸이 안 좋거나 나이 든 사람일수록 맨발 걷기를 하면 좋겠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길에서 맨발로 걷는 날 보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권유한다.

  

나는 앞으로도 쭉 맨발 걷기를 할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의 활력을 책임져 줄 맨발 걷기를 이 봄에 초대하지 않는다면 누굴 초대하겠는가. 형체가 있다면 손도 잡고, 껴안아주고 심하게 뽀뽀도 해 주고 싶은 것이 맨발 걷기 효과이다.     




대표

© Pexels, 출처 Pixabay



<1일 1클래식>

반복적인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지루한 교정을 할 때 월광소나타를 무한정 틀어놓고 하기도 했다. 아무리 들어도 각각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할 정도로 구분이 어려운 게 클래식이지만 월광소나타만큼은 다르다. 평소에도 한 번 틀게 되면 종일 듣게 되는 음악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침에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서 깨우기도 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할 때엔 클래식 음악들을 들려주고 선이나 색으로 표현하게 하고 글로 써 보게도 했다. 우리 아이들 방학 숙제로도 했다. 잘 알지는 못해도 듣고 있으면 맨발이 땅에 닿을 때처럼 평온해지고 이완된다.

  

그런데 판소리를 배우면서 클래식은 물론 가요도 거의 듣지 않았다. 코로나가 시작되고서는 한 가수의 팬이 되어 날마다 그의 노래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니 클래식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보도블록 사이로 삐죽 올라온 노란 민들레처럼 맨발 걷기와 하루 차이로 클래식이 내게 왔다. 언제, 어떻게 해서 샀는지는 모르지만 책장에 꽂혀있던 《1일 1클래식 1기쁨》이라는 책이 눈에 띈 것이다. 살 당시에는 누군가가 하루에 영어 한 문장 외우 듯 클래식을 들어야겠다고 마음이었을 텐데 긴 시간 책장에 갇혀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시기도 딱 좋은 3월 1일부터 잊었던 옛 동무를 찾은 듯 클래식 음악을 만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몇 가지 운동을 마치고 나면 그 책을 먼저 읽고 다이어리에 메모한 다음 유튜브에 들어가 음악을 찾아 듣는다. 며칠 사이에도 다채로운 장르의 클래식을 들었다. 민요에서부터 미사곡, 오페라, 교향곡 등에 이른다. 이 나이 되도록 그 유명한 작곡가들의 풀네임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학창 시절 우리는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쇼팽, 슈베르트라고만 배웠지 비발디가 안토니오 비발디이고, 베토벤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라고 안 배우지 않았던가. 클래식을 많이 듣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일반인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클레먼시 버턴힐은 잘 차려진 밥상처럼, 그 곡과 작곡가 그리고 곡에 얽힌 일화 등을 한 페이지에 담아 하루에 한 곡씩 들을 수 있도록 책에 잘 구성해 놓았다. 버턴힐은 “곡이 지닌 맥락을 알리고 곡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음악 또한 피와 살을 가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라고 한다.

  

덕분에 약 1주일만으로도 감수성을 흔들어주는 선율에 축복을 받고 있다. 더욱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다채로운 장르와 여러 음악가와 그 음악적 배경을 알아가고, 쌓아가고, 교감하는 기쁨을 만난다는 사실이다. 그러하니 봄맞이 잔치에 빠져서는 안 될 친구이다.          

  



© floschmaezz, 출처 Unsplash



<결단>  

결단, 추상적인 단어를 초대했다.

  

얼마 전 내 영향력이 적지 않은 모임에서 나왔다.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빼앗겨서 결정한 것이었지만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회원들과 깊어진 관계 때문에 더 그러했다. 그런데 계속 질질 끌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한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속으로부터 ‘결단이 필요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단호해지기로 했다. 단톡방에 나오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그 방에서 나왔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왔다.   

  

독일의 거문고 장인 마틴 슐레스케도 자기의 힘과 가치를 앗아가는 것과는 결별하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옳지 않은 것과는 헤어져야 한다.

  

따라서 어떤 일이 고민과 갈등을 줄 때는 되도록 빨리 결단을 내려서 그것과 결별하는 것이 지혜의 미덕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또 고민스러운 일이 생기면 주문처럼 ‘결단이 필요해!’라고 외칠 것이다. 의외로 주문은 힘에 세다.     

  


인스타그램에 《봄의 초대》에 대한 소개글을 쓰면서 단어 잔치를 하겠다고 썼더니 어떤 이가 계절마다 하면 좋겠다는 댓글을 썼다. 재미있는 생각이다. 계절마다 다른 단어들을 불러내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보낸다면 겨울 끝에선 일 년 수확이 보름달처럼 풍성해지지 않을까.

  

아직 움츠리고 있는 봄, 그러나 맨발로 나선 봄맞이 잔치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봄을 축하해!”


(20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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