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선 Mar 21. 2023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적절한 비중에 대하여

고유한 나의 하루

‘나의 하루’를 보여주는 것은 나를 설명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내가 보낸 하루가 곧 내가 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나의 하루는 나만큼이나 그 자체로 고유하다. 남들과 비교해도 그렇지만, 나라는 세계 안에서 비교해도 그렇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일도 오늘과 똑같이 살 수 없다. 나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쩐지 낯간지럽지만, 오늘 하루쯤이야 솔직하게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 


14일 오전 8시 30분 처음으로 눈을 뜬다. 보통 다시 잠들곤 한다. 오늘도 역시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두세 번쯤 울린 알람에 몸을 뒤척이다가 10시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양치와 세수를 간단히 하고 집 근처 3분 거리에 있는 요가 학원 10시 30분 수업에 갔다. 이 요가 학원은 시간마다 다른 요가 수업이 있는데, 화요일 10시 30분 수업은 빈야사 수업이다. 빈야사는 다른 요가보다 몸을 자주 움직이고 힘든 편이라 이날 온 수강생은 3명뿐이었다. 수강생이 적은 시간에 요가를 하는 게 좋아서 일부러 힘든 수업을 골라 가곤 한다.


요가를 끝내고 10분 거리에 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1000원짜리 시금치 한단을 샀다. “두 단에 1500원이에요” 점원이 은근슬쩍 권유하지만, 싸다고 많이 사는 일은 거의 없다. 먹을 만큼만 사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다. 집에 오자마자 시금치를 손질해 데쳤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김밥이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대부분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 참기름과 간장에 버무린 시금치, 얇게 부친 계란 지단, 기름기 뺀 참치캔, 물에 빤 신 김치. 집에 있는 것들로 차려낸 김밥 재료다. 함께 사는 동생과 각자 원하는 재료를 넣어 김밥을 말았다.


르완다 기테시 원두로 드립 커피를 내려 오후 2시쯤 책상에 처음으로 앉았다. 눈치챘겠지만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출근해야 할 회사가 없다는 의미다. 작년 여름에 5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퇴사라는 단어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분명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흥미를 잃고 ‘자유’라는 다른 욕망이 생겼다. 성인이면 누구든 자유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을 오롯이 감당하고 그만큼의 자유를 누리는 현재의 삶은 꽤 만족스럽다. 


책상에서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비중을 대략 따지자면 10 대 90 정도다. 그동안 커피, 보리차, 호지차 같은 온갖 뜨거운 마실 것들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산책하러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아직 저녁이 춥게 느껴져서 나가지 않기로 했다. 요새는 창밖을 자주 본다. 따듯한 날이 찾아오면 책상 앞 시간과 산책의 비중을 10 대 90까지도 늘리고 싶다. 그러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비중은 1 대 99가 되는 건가? 어찌 됐건 날 좋은 날의 산책은 그만큼 나에게 중요하다.


서울인쇄센터 <책 읽고 책 만들기> 워크샵 과제(‘나’에 대한 글 쓰기)로 제출한 글

작가의 이전글 사람들이 좀 시시해 보이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