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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동 May 06. 2024

망각과 함께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

리사 제노바, 『기억의 뇌과학』, 웅진지식하우스, 2022.


"기적이라 할 만큼 강력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술하지만, 제 할 일을 하는 우리의 기억"     


저자는, 기억이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잊는다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을 우리가 어떻게 꺼내어 쓰는지 알려주려고 이 책을 썼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기억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종류의 기억들이 있는지 깔끔하게 정리한다. 특히 기억에 대한 진술이 압권이다. 마치 서예가가 글자 획을 끊어지지 않게 쓰는 것처럼, 저자는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매끄럽게 설명한다.     


"기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각각의 경험에 대응해 서로 무관하게 일어나던 신경 활동(1. 부호화)이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되어야 한다(2. 강화). 이후 신경세포 간의 연결구조가 변화하면서 이 패턴은 지속성을 갖게 된다(3. 저장). 이제 새로 형성된 신경회로가 점화되면 영구적으로 달라진 신경 배선과 연결구조를 재경험, 즉 다시 떠올릴 수 있다(4. 인출). 이것이 기억이다."    

 

이를 통해, 기억은 신경망 형태로 머릿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임을 보여준다.      


중반부에서는, 망각이 왜 일어나는지와 얼마나 많은 기억이 사라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작부터 풍부한 사례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상식을 깨부순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이 틀렸다는 것이다.  

   

기억형성을 위해 우리가 투입하는 정보 자체가 애초에 우리가 인지하고 주의를 기울인 정보에 한정된다는 점, 경험 일부를 잘라낸 조각이라는 점, 편견을 반영한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기억의 왜곡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억의 인출은 녹화된 동영상의 재생이 아닌 이야기의 재구성이다. 기억을 말로 옮기면 강화되는 동시에 왜곡된다."     


후반부에서는, 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며,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러 가지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나는 '리사 제노바'가 쓴 <기억의 뇌과학>이 기억과 망각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과 기억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 더 나아가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억과 망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첫째, 간결한 문제와 쉬운 용어, 다양한 사례를 활용하여 기억의 작동원리와 본질에 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 지식이 없더라도 술술 읽을 수 있으며, 근거로 사용되는 사례들은 매우 흥미롭고 적절한 부분에서 나타난다.  

   

둘째, 망각을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기억의 작동방식. 마냥 나쁘게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설명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셋째, 망각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거나, 관련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정적 위로뿐만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게 이성적이면서 논리적인 위로를 전하기 때문이다. 감성을 어루만지는 설득력 있는 필력이 대단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익숙하지 않은 사례들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억이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례로 들었던 올바른 1센트 동전 맞추기나 9.11 테러 당시 상황에 대한 언급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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