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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인 May 17. 2024

살상-무기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건 나를 강하게 함이 분명하다. 이 오래된 경구는 도움이 되는 조언이지만 한 가지가 빠졌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상처가 생긴다는 것. 근육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량을 늘려가며 운동하는 일은 근육에 상처를 내는 일. 상처와 회복의 순환에 따라 근육이 발달한다. 결과적으로 근육은 커지지만, 근육에 새겨진 상처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언이랍시고 상처 주는 말을 생각 없이 던지는 사람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오랜 기간 무기를 다루는 조직에 몸담고 있었으므로 무기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무기의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됐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예리한 칼과 뾰족한 창은 인간의 몸을 무척이나 쉽게 찢는다. 상대를 내 뜻대로 굴복시키는데 이것만큼 원초적인 도구가 있을까. 시간이 지나 칼과 창은 총과 대포로 바뀌었다. 원거리에서 효율적으로 살상할 수 있는 무기들. 쓰러진 몸들은 수백이 되고, 수천이 되고 수백만이 되어 한 국가의 의지를 굴복시킨다.


어느덧 총과 대포는 핵과 화학무기로 바뀌었다. 인류의 종말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궁극 무기들. 이건 사용되지 않음에도 존재 만으로 거대한 의지를 굴복시킨다. 그리고 오늘날. 사이버 공격과 자율무기가 등장했다. 이제 어떤 합의된 의지 없이도 살상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무기는 위험한 것. 위험한 것은 예민하게 다루어야 한다. 한 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기가 적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어떤 무기들은 아군을 살상한다.


누군가에게 모진 말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기의 범주는 총이나 칼 같은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 지금 내 앞에서 탄환처럼 날아드는 말. 물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고막을 뚫고 들어와 내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이런 무기는 사실상 방어할 수단이 없다. 귀를 막지 않는 한에야. 그러면서 든 생각. 살면서 얼마나 많은 총알이 내 마음에 구멍을 뚫어 놓은 걸까.  반대로도 생각해 본다. 나는 얼마나 많은 총알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구멍을 뚫어 놓은 걸까.


나는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 옷을 입은 채 거울을 본다. 옷을 들추자 현무암처럼 생긴 몸이 드러난다. 채워지지 못한 채 흉터만 남은 몸. 용암이 굳어지듯 내 몸 또한 굳어져 단단해졌지만 곰보투성이다. 돌하르방처럼. 부끄러운 마음에 옷을 입지만, 옷 또한 흉하다. 그런데 나는 멀쩡하다. 의문이 생긴다.


말이란 이토록 침투성이 강한 ‘살상무기’다. 마치 방사선처럼 투과됐음에도 겉보기에 정상인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세포를 서서히 죽인다. 말은 마음 깊은 곳에 매복해 있으면서 마음을 서서히 잠식해 간다. 우리는 하루에도 헤아릴 없을 정도로 타인에게 탄환을 발사한다. 어떤 탄환은 산탄총에 들어가 주변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리하여 총을 쏜 사람과 주변 사람들 모두의 몸에 구멍이 뚫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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