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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동 May 15. 2024

일인칭 하드보일드 시점


누가 시퍼런 칼로 명치를 쑤신 듯. 경험하지 못한 고통이 온몸을 장악한다. 나는 사무실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신음 대신 무언가를 게워냈다. 병원으로 실려 가며 생각한다. 아침에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고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생각은 이어지지 못한다. 부러진 칼날이 신경계를 순환하는 중이므로. 고통은 처음의 강도를 계속 유지한다.


동네 병원에 갔다. 원인을 찾지 못한다. 춘천의 큰 병원으로 다시 이동한다. CT를 찍고 나서야 알게 된 병명. 췌장염이다. 게다가 병 앞에 ‘괴사’라는 거창한 단어가 붙는다. 내 고통이 ‘괴사성 췌장염’이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요란하게 울어대는 것처럼, 고통은 이름을 얻자마자 날뛴다.


진통제를 맞으니 정신이 몽롱하다. 중환자실의 천장이 하얀 이불처럼 출렁인다. 몽글몽글하면서 평화로운 광경이다. 그게 딱 삼십 분. 약효가 떨어지면 천장은 불구덩이로 바뀐다. 나는 초열지옥(焦熱地獄)에 있다. 이곳은 죄인을 쇠판에 눕혀놓고 쇠방망이로 다듬질을 한다지. 뜨거운 불길 속에서 치즈처럼 녹았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어둠의 장소다.


열(熱)은 있으나 빛이 부재한 그곳에 나는 홀로 서있다. 구원을 갈망하며. 지옥이라도 좋다. 고통만이라도 사라졌으면. 나의 이런 외침은 나락에 울려 퍼지고. 성대를 뚫고 나가 중환자실의 공기를 진동시킨다.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말한다. 마약성 진통제는 세 시간 단위로 맞아야 한다나. 삼십 분의 천국과 두 시간 반의 지옥. 나는 왕복 비행기를 타고 하루 사이에 여덟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멀미약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린다. 나는 몸을 새우처럼 우그러뜨리고 계속 뭔가를 게워낸다.


삼일이 지났다. 천국행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에서 유영하고 있는데 의사가 와서 말한다. 내장이 녹고 있단다. 나는 다시 이동한다.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이다. 그 응급실이란 전쟁터에 도착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왜 그 영화 있잖은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첫 장면에 상륙작전이 나오는데 포탄이 주인공 옆에 떨어진 순간 고막이 터지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장면. 하나 또 있다. 500일의 썸머였던가.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단단히 화가 나서 소리치고 있는데 주인공은 듣지 못하는 장면. 이곳도 그렇다. 격렬한 소리가 느껴지지만 들리지는 않는다. 다들 바쁘지만 나는 진통제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다.


다시 CT를 찍는다. 췌장 절반이 녹았고 계속 녹고 있는 중이다. 위독한다는 말과 오늘 밤이 고비라는 말이 오간다. 반쯤 꿈에 빠진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한다. 왜 이렇게 실감이 안 날까. 죽음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아뿔싸. 왕복 비행기는 아직도 운행 중이다. 그 덕에 나의 얄팍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불구덩이를 보자마자 멀미는 심해지고 몸은 다시 기역자로 꺾인다. 아쉽게도 의식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자동차 유리가 한 번에 와장창 깨지지 않는 것처럼. 내 몸과 마음은 분자단위로 조각나있으나 형체는 유지하고 있다. 나는 깨지고 싶다.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뿌려지고 싶다. 인간의 의식이란 왜 이렇게 끈질긴 걸까. 죽음이 이렇게 무거웠었나.


칠일이 지났다. 몇십 번의 비행기 운행과 지독한 멀미로 나는 자주 게워냈다. 음식과 물을 섭취하지 못해 식도는 말라붙은 지 오래. 모든 영양은 팔에 꽂힌 바늘로 들어간다. 입이 입의 역할을 못하고, 입이 아닌 것이 입의 역할을 한다. 그러니 미숙할 수밖에. 들어가는 양은 적고 나오는 건 많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니 앙상한 나뭇가지가 보인다. 본질만 남은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이 꽤 멋지다. 이제 멋지게 부러질 일만 남았다. 이왕이면 나뭇 가지니까 활활 타오르면서.


십일 쯤 지나자 고통은 잠들었다. 젖먹이 아기처럼 나를 쪽쪽 빨아먹고 포만감에 취한 모습이라니.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는데 의사가 와서 말한다. 췌장 삼분의 이가 녹았다며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약도 평생 먹어야 하고. 직장생활도 더 이상 못할 거라며 나에게 판결을 내린다.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고통이 뇌의 어떤 부분을 태워버렸나 보다. 의사의 판결이 전혀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 걸 보니.


마음의 역치가 한껏 높아졌음이 분명하다. 이제 웬만한 상처는 상처가 아니다. 어떤 난관이 몰아쳐도 초연하다. 쉽게 붉어졌던 얼굴에 철가면이 씌워졌다. 굳은살이라도 생긴 듯. 하지만 굳은살이 그렇듯 나는 무뎌졌다. 웬만한 자극은 자극이 아니다. 꽃을 보면 그 꽃이 지닌 고유성을 감각해야 하는데, 지금은 아름다움만 느껴질 뿐이다. 굳은살을 없애려고 할 때마다 굳은살은 내게 변명한다. 다시 잠에서 깨어날 고통에 대비해야 한다고. 언변술이 고대 그리스를 휩쓸었던 소피스트 수준이다. 묘한 설득력에 나는 번번이 넘어간다. 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굳은살을 없애지 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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