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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동 May 22. 2024

새벽 수영


눈을 떴다. 커튼에 잠긴 방은 아직 밤이다. 커튼 끝과 바닥 사이의 미세한 틈바구니로 여명이 비집고 들어온다. 차가운 이성으로 자리를 지키는 건 시계뿐. 디지털 숫자는 다섯 시 반을 푸르게 표시하고, 나는 희미한 빛에 의지한 채 느지막이 몸을 일으킨다. 온갖 동작을 취하며 거부반응을 보이는 몸. 의도가 뻔히 보인다.


오늘은 새벽 수영 강습이 있는 날이다. 바꿔 말하면 치열한 내적갈등을 벌이는 날이기도 하다. 강습은 여섯 시 반. 항상 한 시간 전에 눈을 뜬다. 눈을 떴으면 바로 일어나서 수영복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하건만, 나는 눈만 뜬 채 침대 위에서 배영을 한다. 배영을 하다가 몸을 돌려 개구리헤엄을 한다. 내가 이렇게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는 사람이었는지 의문을 품으며. 몸은 움직이질 않고 마음만 깬 상태. 마음이라도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결국 몸 또한 따라가겠지만, 마음도 콩밭에 가 있다. 온갖 이유를 찾는 걸 보니 딴생각을 하는 게 분명하다.


어제는 피곤했다. 운전도 많이 했고 딸아이와 놀아주느라 체력이 고갈됐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침대에 곯아떨어진 나. 이 정도면 아침에 좀 더 자 줘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니 오늘도 피곤할 예정이다. 제주도 가는 날. 오후에 광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니, 오전에 이것저것 준비하면 몸을 많이 움직일 것 같다. 그리고 여행 첫날이 으레 그렇듯. 호텔 방에 도착하면 피곤함에 찌든 상태겠지.


마음은 변명을 찾고, 몸은 이불 위에서 유영한다.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마음은 초조해진다. 강습을 못 갈 정도로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피곤한 것도 아닌 상태. 다른 이유는 없을까. 자다 깬 상태라 그런지 머리가 뻑뻑해진 느낌이다. 움직이면 조금 나을까 싶어 몸을 좌우로 기울여본다. 그러다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잠수도 해보고. 숨이 막힐 때쯤 이불 위로 고개를 들어 심호흡한다. 수영이 무척 수월하다. 수영대회에 나온 기분.


뒤척임이 지루해진다. 오늘은 글이나 써볼까. 책상에 앉아 모니터에 띄워진 커서를 바라본다. 막막하다. 흰 종이가 수영장 같고, 커서는 킥 판 같이 보이는 건 왜일까. 죄책감이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방안의 텁텁한 공기는 나를 질책한다. 커튼 틈으로 새어드는 햇볕이 따가워졌다. 왜 가기로 해놓고 가지 않느냐며 먼지가 조금 섞인 백색의 입자를 쏘아대는 상황. 모든 정황이 하나로 귀결되지만, 몸은 아직 시동을 걸지 않는다.


몸은 마음을 배신한다. 이럴 때면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이 그럴듯해 보인다. 몸과 마음은 따로라는 생각. 마음은 그대로 둔 채 다른 몸으로 갈아 끼우고 싶은 욕망이 치밀어 오른다. 《얼터드 카본》이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 인간의 영혼이 칩 안에 담겨있고 육체는 포장되어 갈아 끼울 수 있게 되어 있던데, 내 몸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수영선수의 몸을 장착한 나를 상상한다. 능숙하게 다이빙하고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는 우아한 동작들. 폐활량이 좋아 숨은 가쁘지 않다. 이십오 미터 레인 끝에서 몸을 회전시켜 부드럽게 턴을 하고 처음의 위치로 돌아오는 나. 생각만으로 흥분된다. 그러나 지금의 몸은 어떠한가. 몸은 정처 없이 가라앉고, 소독된 물이 콧속을 누빈다. 가끔은 입 내부도 소독해 주는 친절한 물. 소독된 코와 입은 매운 물을 토해내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의심한다. 분명히 물 안에 닥터 피시가 숨어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 건가.


시간은 어느덧 여섯 시 이십 분.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마음은 포기를 선언한다. 마음은 매뉴얼에 따라 몸의 통제권을 몸에 위임하고. 뇌가 없는 몸은 관성에 따라 움직인다. 멍하니 주섬주섬 수영복을 챙기더니 수영장을 향하는 좀비 같은 몸. 좀비는 강사의 지도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수영장 레인을 왕복한다. 몇 차례 물을 먹고, 몇 차례 닥터 피시에게 밥을 제공한 뒤에야 마음이 정신을 차린다. 좀비가 사람이 된 순간의 첫 외침은 이렇다. “아! 상쾌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첫 번째 영화인 《메멘토》에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나온다.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쫒기 위해 글자로 온몸에 문신을 새기는 남자. 나는 그렇게 수영이 끝난 후의 상쾌한 기분을 몸에 새기며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망각하게 될 것임을 망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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