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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동 May 24. 2024

놀이터의 홍시


날이 좋다. 미지근한 태양. 살랑살랑 피부를 감싸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비단결 같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손이 잡아당겨지고. 딸은 굳게 다문 입으로 소리 없이 말한다. 표정으로, 피부색으로, 맞잡은 손으로. 아빠의 귀는 신기하게도 소리 없는 외침을 알아듣는다. 아빠와 딸은 이심전심. 어린이집에서 방향을 돌려 놀이터로 향한다.


딸의 자태가 사뭇 위풍당당하다. 하늘하늘 연노랑 옷. 신발에 그려진 해님과 달님이 걸음걸이마다 번갈아 웃는다. 병아리가 뒷짐 지고 놀이터를 접수하러 가는 모습에서 먼 옛날 오랑캐와 싸우러 가던 장수의 면모가 엿보인다. 짧은 행군 끝에 도착한 놀이터. 그곳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노랑 병아리, 초록 병아리, 파랑 병아리. 병아리들이 한쪽으로 쏠렸다가 다른 쪽으로 쏠려가는 모습이 파도를 보는 듯하다. 엄마들은 놀이터 주변을 성처럼 에워싼 채, 소곤대며 비밀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는 망루가 되어 놀이터 전경이 보이는 장소에 위치한다. 노랑 장수는 종자인 나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간식거리가 잔뜩 들어있는 책가방을 지키라는 핵심임무. 나는 임무완수에 최선을 다한다. 노랑 장수의 전투를 지켜보며.


빨간 병아리 하나가 젤리 봉지를 뜯는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몰려드는 형형색색의 병아리들. 어른들의 세상에서 이런 상황이면 전투가 벌어지기 마련이건만, 병아리들의 세계에서는 평화의 몸짓이다. 병아리들은 사이좋게 젤리를 나눠 먹는다. 젤리 먹던 손으로 모래를 파헤치고, 모래를 파헤친 손으로 젤리를 먹는다. 기겁한 엄마들이 현장으로 투입되어 말리지만, 이미 평화협정은 체결된 상태. 아이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그네로. 시소로. 미끄럼틀로 위치한다. 입을 오물거리며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파랑 병아리 하나가 철봉에 매달린 채 구조요청을 한다. 그의 수호자는 보이지 않고. 초록 병아리의 수호자가 등장하여 구해준다. 파랑과 초록은 싸우던 중 아니었나. 이런 의문을 품고 있는데 나의 노랑 병아리가 난관에 부닥쳤다. 그네에 타고 있는데 그네가 멈춘 것. 그네의 정지에 딸은 분노를 표출하고 아빠를 부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빨간 병아리의 수호자가 딸에게 가서 그네를 밀어준다. 딸은 까르륵 대며 좋아하고. 노랑과 빨강은 느닷없이 평화협정을 맺는다.


이번에는 연합공격이다. 무시무시한 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분오열되어 약소국들끼리 전쟁을 벌일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모두를 먹어치울 괴물이 등장했단다. 병아리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옹기종기 모인다. 나의 노랑 병아리를 필두로 초록, 빨강, 파랑 병아리들이 무언가 작전을 짜더니 내 앞으로 우르르 몰려온다. 딸은 지엄한 어조로 선언한다. “아빠가 괴물 해!”. 이 황당한 순간 어떤 문장이 떠오른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정언명령. 그러므로 나는 괴물이 된다.


괴물은 병아리들을 쫓는다. 과자와 사탕으로 가득 찬 책가방을 등에 메고서. 병아리들은 요리조리 피하며 깔깔 웃고. 나는 잡아야 하지만 잡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잡으려는 의지를 표정과 행동에서 보여줘야 한다. 마치 프로레슬링 선수가 된 기분이다. 병아리들의 웃음소리는 마약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엄마들의 성벽이 응원한다. 그만둘 수도 없다. 병아리들이 이제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는. 아차. 실수로 빨간 병아리를 잡고야 말았다. 그 순간 병아리들이 우르르 몰려와 괴물을 공격한다. 이럴 때 괴물은 도망칠 수밖에 없다.


한껏 멀어진 나를 보며 병아리들은 다시 새로운 놀이를 한다. 나는 괴물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엄마들과 병아리들의 모습이 멀고 먼 옛날 부족사회를 닮았다고. 수렵 채집활동을 하던 원시인들은 모두가 부모였고 모두가 자녀였으리라. 공동체 안에서 한 아이가 어려움에 부닥치면 부모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아이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장면이 그려진다. 설령 부모가 없는 아이라도, 공동체는 그들을 품어준다. 그들은 혈연으로 묶이지 않았지만 형제자매다. 함께 먹고 마시고 놀면서, 그들은 서로를 지탱한다.


나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절을 맞아 할머니 댁에 가면 느꼈던 감정. 수많은 삼촌과 큰아버지, 숙모와 고모들, 아직도 몇 명인지 헷갈리는 내 또래의 친척들. 마당에서 노는 시간은 빛살과 같았다. 놀고, 먹고, 싸우고, 울고, 화해하고. 내면에 숨겨진 온갖 감정들이 분출하고 뒤섞이는 시간. 그러다 보면 마음의 항아리가 비워지면서 채워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응어리졌던 감정들은 마당에서 한껏 놀다가 저녁이 되면 옷에 뭔가를 잔뜩 묻히고 돌아온다. 흙인가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바로 존중과 배려, 이해와 예의다. 신나게 놀고 왔을 뿐인데, 이름 모를 뭔가가 한 뼘만큼 자라났다.


그러니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분명 마음이 성장하는 시간이다. 주의력을 빼앗는 것이 가득한 시대에, 함께 땀 흘리고 부딪힐 수 있는 놀이터의 가치는 대단하다.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 그것은 희소성 때문 아니겠는가. 함께 노는 시간과 장소가 줄어들고 줄어들면, 그만큼 함께 노는 시간과 장소가 소중해지기 마련이다. 어린이집이 끝나고 불과 한 시간. 어린이집 옆의 아담한 놀이터. 과거에 비해 훨씬 축소된 시간과 공간이지만, 그 시간과 장소가 있음에 나는 감사한다.


병아리들이 다시 방심한 괴물에게 달려온다. 선봉에는 딸이 있다. 뒤따라오는 병아리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겨우 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달리고, 병아리들은 죽자고 따라온다. 고개를 돌려 보니 병아리들의 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 땡감이 벌겋게 익어가는 모습과 닮았다. 감이 익어 홍시가 되듯. 아이들도 그렇게 익어서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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