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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이 May 13. 2017

늦되는 아이 Leo

다 때가 있다

Leo the Late Bloomer / BY ROBERT KRAUS ●PICTURES BY JOSE ARUEGO    

늦되는 아이 Leo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옳은 표현이 아닐지 모른다. 아이는 저절로 자란다.

엄마는 단지 아이가 뭘 요구하는지, 위험하진 않은지. 아이를 지켜보는 보호자일 뿐이다.


 오래전 방송국에 다니는 지인이 스웨덴의 유아교육을 취재하고 와서 해준 말이 기억난다.

“거기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애를 봐. 그냥 보기만 해. 애 보는 게 진짜 그냥 보는 거야.”     

“지혜로운 엄마는 아이를 보면서도 안 보고, 안 보면서도 늘 보는 엄마”라고 했던 어느 책에서의 글도 잊지 않고 있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아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는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세상에 나온 후에는 바라는 것이 생긴다.

아이가 커갈수록 바라는 것들도 함께 커진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리라 분명 결심했는데.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은 자식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 틀림없다.     


『Leo The Late Bloomer』  Robert Kraus (1925-2001 )  늦되는 아이 Leo 


이 동화는 큰 딸 션이가 유난히 좋아해서 나도 좋아하는 책이다.

바로 Leo랑 션이랑 꼭  닮았기 때문이다. 션이는 어릴 때 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자곤 했다.     

      


Leo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를 말한다. 다른 동물 친구들은 읽고 쓰고 그림도 다 잘 그리는데 Leo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상태라면 어느 부모가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 What's the matter with Leo?” asked Leo's father.

 " Nothing, " Leo's mother.

 " Leo is just a late bloomer."  

   

보통은 엄마들이 불안해하는데 이 책에서는 아빠만 Leo를 걱정한다.

“도대체 Leo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요?”라고 묻는 아빠에게 엄마는 "Leo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한다.  

엄마는 말한다. “단지 Leo는 늦되는 아이일 뿐이에요.”

호랑이 Leo는 호랑이다운 용맹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다. 꽃밭에서 놀고 있는 Leo. 호랑이라면 씩씩하고 용맹해야 하는데 Leo의 눈빛은 토끼보다도 순해 보인다. 호랑이라고 다 같은 호랑이가 될 수는 없다.  


어릴 때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친척들이 오면 똑 부러지게 인사를 해야 했는데 나는 고개도 못 들고 인사도 못해서 야단을 맞곤 했다. 엄마에게 야단을 맞을수록 더 주눅 들어 나중에는 손님이 오시면 아예 방에서 나오지도 않게 되었다. 엄마가 못마땅해하며 “쟤는 왜 저 모양이지?” 하면 그때마다 할머니께서 내 편을 들어주셨다. “애마다 다르다.”  할머니의 그 손길이 어른이 되어서도 힘이 될 때가 있다.


아내의 말도 믿지 못하고 불안한 아빠는 Leo를 스토커처럼 주시하고 있다. 꽃밭에서 나비를 쫓으며 놀고 있는 Leo를 몰래 지켜보고, TV 앞에서도 눈은 Leo를 향해 있다. 아빠의 관심은 온통  Leo에게 쏠려 사냥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빠가 토끼 사냥을 할 때 쫓기는 토끼의 모습을 보라.  “ 쫌 빨리 나를 잡든가 말든가 ” 토끼몰이에 집중 못하는 아빠에게 토끼마저 어이없어한다. 이런 아빠의 우스운 행동들. 어른들의 허점을 발견할 때의 쾌감. 이렇듯 좌불안석이던 아빠는 또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묻는다.


“Are you sure Leo's a bloomer?” asked Leo's father

" Patience, " said Leo's mother

" A watched bloomer doesn't bloom"


"늦되는 아이가 확실해요?"

"제발 좀 기다려요."

엄마가 아빠에게 던진 한마디 Patience, 인내심.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자식을 둔 부모에게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어려운 말이 아닐까.

     

육아 전문가들이 하는 말은 우리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면서도 실천이  안 되는 이유는 그 말들이 일상을 지배할 만큼 강렬하게 나를 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육아 강의도 돌아서면 이상하게 들을 때뿐이다. 나는 결혼 때 은사님께 선물 받은 두꺼운 <스포크 육아 전서>를 정말 열심히 읽었는데 동화책에서 얻은 지혜만큼 오래 간직하지 못했다.

엄마가 말로만 아이에게 “ 넌 잘 해낼 거야” 하기보다 이런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너는 Leo처럼 될 거야” 한다면 아이가 간직하는 마음의 지평이 달라진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영어동화를 읽은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Then one day,

in his own good time,

Leo bloomed!    

 

어느 날 Leo는 엄마의 믿음대로 활짝 꽃을 피웠다.

그렇다면 그 어느 날은 언제일까.  

그날은 엄마 아빠가 원하는 때가 아닌 바로 Leo '자신이 원하는 때'이다.

"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은 바로 자기 자신이 원하는 때 his own good time을 말한다.



" A watched bloomer doesn't bloom"

지켜보고 있으면 필 꽃도 안 핀다.

닦달하고 재촉한다고 꽃이 필 리 없다. 꽃피는 건 꽃의 맘이다. 봉오리를 열어젖힌다고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 입고 상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 꽃들에게 이런 잔인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꽃봉오리를 만들 시간조차 주지 않고,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지도 않고 소몰이처럼 몰고 가지는 않았는지.     

작가 로버트 크라우스는 자신의 아이들이 다 성장한 후에 이 책을 썼다. 작가 자신도 부모로서 “ Patience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엄마는 모를 리 없다. 영민한 지, 급한지, 느린지 다 알고 있다. 알면서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엄마가 정해놓은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기대치는 늘 아이보다 저만치 앞서간다.

엄마 손을 잡고 가던 아이가 엄마의 빠른 걸음에 맞춰 뛰다시피 걷는 것을 볼 때가 있다.

" 빨리빨리 와" 하면서 엄마는 멀리 앞에서 가고 있다.  

빨리 걷는 엄마를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다가는 반드시 넘어진다. 엄마가 보폭이 더 넓으니까 엄마가 천천히 가야 한다. 나란히 가야 한다. 그래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손잡을 수 있다. 기다림은 엄마 몫이다.


나 또한 큰 딸 션이가 어릴 때 전철을 타며 " 얼른 타!" 소리치고 화를 낸 적이 있다.

션이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그 말을 했다. " 엄마가 그때 화를 냈다. 나도 어렸었는데 동생 손만 잡고."

아이가 뒤늦게라도 상처 입은 것을 말해주어서 다행히 늦게라도 사과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다. 나도 내가 화를 냈던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가도 아이에게 상처는 남고 그 상처 오롯이 엄마의 상처가 된다.   


아이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누구든지 비교하면 초라하고 비참해진다. 남과 비교하느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다. 나 또한 일찍이 Leo를 만나지 못했다면 느려 터진(?) 큰딸과의 불협화음 속에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Leo를 필요한 순간에 만났고 우리 모녀는 Leo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했다.

모든 것이 느렸던 큰 딸 션이에게 나는 “ 너는 Leo처럼 될 거야. 넌 대기만성 타입이야 "라고 얘기해주었다.

내가 Leo를 몰랐다면 그렇게 자신 있게 딸에게 말해 줄 수 있었을까.

그렇게 얘기해 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  작가의 다른 책

    

-  Whose Mouse Are you?

-  Where are you going Little Mouse?

-  Come and Out and play, Little Mouse

- Mouse in Love

- Mort the Sport



  ● Aft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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