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동화책을 읽는 시간은 길지 않다
엄마가 되기 전에 나는 엄마들이 동화책 읽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애들은 애들 책을 읽고, 엄마는 엄마 책을 읽어야지. ” 그렇게 생각했다.
‘어른들이 읽는 동화’ 이런 책들도 싫어했다.
그런데 내가 두 딸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알게 되었다.
동화책은 엄마가 읽어야 한다는 것을.
동화책이야말로 엄마를 위한 책이라는 것을.
나는 영어동화책으로 아이들의 영어교육뿐 아니라 미술작업, 글쓰기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았다.
독후 작업들은 아이의 창의력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창의력을 지켰다고 하는 것은 “ 뭔가 가르치려 할 때 창의력은 달아난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동화책을 읽고 독후 작업을 하는 것은 놀이에 가깝다.
나는 아이들과 즐겁게 그림 그리고, 만들고 다시 부수고, 찢고... 놀았다.
영어동화책은 아이들에게는 영어교재이며 친구였고 내게는 스승이었다.
“ 어떤 엄마가 되고자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 책 속에 있었다.
엄마로서 고민하는 것. 일상에서 아이와 부딪칠 때. 까마득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가 거기 있었다.
유년시절 아버지가 사다준 동화책에는 빨간 체크무늬 천을 덮은 둥근 테이블과 하얀 레이스 커튼이 달린 방들이 있었다. 나는 그림책 속의 그런 집을 꿈꾸며 자랐다.
아이들과 함께 영어동화를 읽으면서 나는 그 시절의 어린 나를 만났다. 그 아이는 내 딸들과 손을 잡고 맘껏 웃고 뛰놀았다. 나는 딸들과 함께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뽀뽀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성장했다. 그렇게 유년의 허술한 지층을 단단히 메워가며 나는 비로소 다시 어른이 되었다.
한 끼의 식사를 배불리 먹어도 곧 다시 허기가 찾아오듯 책 읽기도 그렇다. 오늘 아이를 이해했다고 해서 그 이해심의 약효가 항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어제의 내 아이가 오늘의 내 아이가 아니다.
아이는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매일 새로운 아이를 엄마는 만난다. 엄마는 매일 새로 배우고, 새로 이해하고, 매일 낯선 아이를 안아주어야 한다. 그 어려운 일을 나는 영어동화를 읽으면서 해냈다고 말하고 싶다.
천사이며 악마였던 사랑스러운 나의 아가들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 입은 소녀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눈 한번 깜빡한 사이에 어른이 되었다. 한 시절이 이렇게 훌쩍 지나갈 줄 몰랐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동화책을 읽는 시간은 길지 않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