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펐던 날
학교에서 아빠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제발 아무 일 없길
간절히 바라고 바라며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이미 돌아가셨다.
사랑했던 아빠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무 말도 못 듣고
그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아침에 떠난 게
마지막이었다.
울음소리가 꺼이꺼이
나온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하도 울어서
목소리가 안 나올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렇게 떠나신 후
매주 미사를 가고
매주 산소를 가고
또
설 때, 추석 때, 기일 때
제사를 드리며
매번 울었다.
나는 나의 슬픔에 빠져
52살에 혼자되신 엄마가
곧 출산을 앞둔 언니가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동생이
그리고 아들을 먼저 보내신 할머니가
집안의 큰 기둥을 잃은 고모들이
어떻게 아빠를 떠나보내고
저마다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는지
생각조차 못했다.
사랑이 큰 만큼
슬픔이 큰 만큼
각자의 원망도 컸고
서로 충분한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상처를 건드리고 잠재우고
그러다 덧나기도 했던 것 같다.
슬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울지 않게 되었다고
괜찮아진 건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하늘을 보다가
그렇게 여전히 문득 아빠가 보고 싶다.
그렇게 여전히 일상에서
아빠를 만나면서
못다 한 말을 고백하면서
이별 중인 것 같다
그 후로 난 결혼을 했다.
아빠를 만나지 못한 남편과
할아버지를 알지 못한 딸에게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고
또 엄마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도 아빠처럼
그 사랑과 그 마음을 전하고자
애를 쓴다.
위령 성월의 기도는
기도할 때마다
돌아가신 아빠를 위한 기도라기보다
아빠가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 같다.
연도 할 때에도
돌아가신 부모를 위한 기도를 드릴 때에도
괜찮다고
이젠 슬퍼하지 말라고
아빤 아주 잘 지낸다고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 같다.
슬픔이 결코 기쁨이 될 수는 없지만
그 슬픔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내게 기쁨을 주고,
감사를 주고
사랑을 준다.
슬픔은 결코 소멸되지 않은 채
그 슬픔 안에서 조금씩 나를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