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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공족에서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나는 카페에서 일하는 카일족이었다.


카페를 업무공간으로 삼는 것을 보통 사회적으로 환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러 시도 끝에 눈치를 보면서 카페에서 업무를 하게 되었다. 집에서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명과 음악을 편안한 분위기로 만들고 카페처럼 꾸며도, 남이 꾸려놓은 공간만큼 편하지 않았다. 사실은 불안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누가 쫒아오는 것처럼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하루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씻고 나와 물이 뚝뚝 흐르는 채로 짐을 챙겼다. 두 팔 가득 짐을 안고나니 신발을 고쳐 신을 손이 없어 그대로 구겨신고 내려와 차에 짐을 우르르 내려놓았다. 조수석에 풀어 놓은 짐 위로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집에서 도망친 수준 아닌가?'




 이후 상담을 받으면서, 어린시절 집에서 고립되어 있던 기억들과 위탁가정에서 눈치를 보고 지냈던 날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불안한 곳으로 각인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유치원 다닐 때 나는 아빠와 작은 컨테이너 안에서 살았다. 그 시절 아빠는 밤만 되면 잠든 나를 두고 나갔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로. 


 그래서 그런지 밖이 보이고, 사람들이 오고 가고 정적없이 음악이 나오는 카페가 좋았다. 하지만 눈치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두시간 정도 지나면 음료를 추가 주문하고 네 시간이 넘어도 일이 안 끝나면 다른 카페로 옮겼다. 그럴 때마다 노트북과 책, 아이패드와 필기구를 다시 챙기고 대이동을 해야했다. 하루에 카페에서 쓰 돈만 2만원에 달했다. 




 게다가 감각이 예민한 탓에 잘 맞는 카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돌 노래를 트는 카페에서는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았고, 발라드 노래를 트는 카페에서는 괜히 울적해졌다. 소리가 공간에 웅웅 울리는 카페에서는 머리가 아팠고, 의자와 테이블 높이가 맞지 않는 곳은 허리가 아팠다. 돌아보니, 하루에 한시간 정도를 카페를 찾아다니는데에 시간을 쓰고 있었다. 







 이후, 감사한 기회들을 만나 대장동에 카페를 창업했다. 9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종종 반찬과 꽃을 선물해주시는 단골 손님들이 있는 공방카페가 되었다. 주된 고객은 아이와 엄마들이지만 카공족도 일부 있다. 노트북과 책 한권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창업 전 내 모습이 생각나 괜히 반갑다. 물론 커피 한잔에 3~4시간씩 머무는 손님들만 온다면 운영난을 겪겠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공부하는 손님과 잘 맞는 것 같다. 손님의 공부하는 집중력과 열정이 내게도 전달해지는 것 같아 감사하다.




 카페를 열고 나서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원할 때마다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필요할 때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게 사장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사장이니까! (ㅋㅋㅋ)



 카공족일 때는 공부하다가 배가 고프면 짐을 다 싸들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자리를 잡아야 했지만, 이제는 틈틈히 카페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보통 카페에서 노트북 충전기, 아이패드 충전기, 핸드폰 충전기를  쓰면 전기도둑(?) 같아서 조심스럽고 신경쓰였지만, 이제는 충전기 고정석도 생겼다. 


 무엇보다 매장음악 선정도 내가 하니, 내게 잘 맞는 음악을 틀을 수 있다. 조금 집중이 필요할 때는 재즈 곡을, 따듯한 봄날씨에는 산뜻한 음악을, 비 오는 날에는 분위기 있는 곡을 고르는 재미도 있다.


물론, 카페에 손님으로 갈 때와 운영할 때는 분명히 다르다. 운영에 대한 고민이 깊을 때도 있고, 진상 손님을 만나 하루종일 기분이 안좋을 때도 있다. 특히 성희롱을 하는 할아버지 손님이 오면 며칠동안 속이 들끓는다.

그럼에도 나는 내 취향이 묻은 내 카페가 좋다. 이 공간을 함께 좋아해주는 손님들이 있기에.


"유진씨, 나는 이 카페가 참 좋아요. 마음이 편안해져요."







 강남대 근처에 살 때면, 에이바우트라는 카페를 자주 갔다.

그 곳은 카공족을 위한 1인 자리가 스무 테이블 정도 되었고, 자리마다 콘센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꽤 넓은 카페였음에도 늘 자리가 부족했다.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이른 아침에 가야했었다. 그곳에 걸음하는 손님들도 나처럼 막힌 공간에서 정적이 흐르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혹은 타자소리나 펜 달칵 소리도 거슬리는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가 숨막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공부하는 청년을 타겟으로 삼은 카페가 잘 되는 것을 보면, 요즘은 일하는 곳도 공부하는 곳도 변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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