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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Apr 20.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08

: 프리랜서 커플의 시골 일상 

'아침형 인간' 우리 부모님과 TV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이곳에 오기 전 우리는 저녁형 인간이었다. 특히 닌나 씨의 경우 새벽 4~5시 동틀때 자서 해가 중천을 넘어서야 일어나는 완벽한 야행성이었다.  

 

이사 오기 전 우리는 당연 암막커튼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다만 주머니 사정상 결제를 못하고 있었을 뿐. 우리 집은 남동향으로 안방의 커다란 창문으로 해가 그대로 들이친다. 처음엔 내 몸이 타들어가고있어, 라며 햇볕을 본 뱀파이어 마냥 괴로워하던 우리 몸시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기분이 맑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같은 시간을 깨어 있어도 얼마나 하루를 길게 쓸 수 있으며, 무엇보다더 건강해짐을 느꼈다. 암막 커튼을 사지 않기로 합의했다.  여름에는 조금 더 일찍, 겨울에는 조금 더 게으르게 일어나기로 했다. 

 

함께 하는 시간들이 쌓이며, 우리만의 하루 루틴이 생겼다. 누가 정하거나 한 것도 아닌데 이제는 습관처럼 몸에 베버린 일상들이다. 특별히 외출하거나, 마감에 쫒기지 않는 우리 보통의 나날은 이렇다.


:: 무지개를 따라 산책하기:

오전 7~8시, 내가 먼저 눈을 뜬다. 마감이 있으면 이 때 일어나 글을 쓰고, 아니면 뉴스도 읽고 페북도 하고 게임도 하고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린다. 


오전 9~10시, 서서히 잠에서 깬 닌나 씨가 꿈틀거린다. 이제는 완전히 기상할 시간! 두 개님들만 데리고 나와 모닝 산책을 시킨다. 애들 간식을 챙겨주고 아침 밥을 차린다. 아침 밥 메뉴는 전날 남아있던 음식들 위주로 이미 정해둔다. 맑은 국을 좋아해 된장국이나 콩나물국이 단골메뉴다. 비몽사몽한 닌나 씨와 앉아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나면 나는 설거지를 하고 닌나 씨는 커피를 내린다. 닌나 씨표 핸드 드립 커피는 완소다!! 원래는 로스팅된 원두를 사서 갈았지만 요즘은 생두를 프라이팬에 직접 로스팅하고 있다.  태우기도 하고, 설익기도 하며 자신만의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우리 마실 양만 조금씩 로스팅해 더욱 신선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설거지 후 개님들 밥을 챙겨주고 나면 커피가 완성된다. 


꼭 테라스에서 커피 타임을 즐긴다. 비가 올 때를 제외하고, 날이 더우나 추우나 꼭 나간다. 테라스에는 라탄이라는 말에 속아 중국 직배송한 라탄인척 하는 플라스틱 테이블 세트가 놓여 있다. 어쩐지 싸더라. 날이 좋으면 남실이와 윤슬이도 함께 나와 일광욕을 즐긴다. 멍 때리며 그 날의 햇살과 바람, 새 소리를 오롯이 만끽한다. 이게 전원생활의 묘미라고 자부한다. 


티 타임의 가장 중요한 토픽은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이다. 그리고 일 얘기, 날씨 소식, 아침에 본 뉴스 등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 날씨 좋은 날은 홈 브런치 까페로 변신한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할 시간. 주로 12시부터 5시 정도 까지는 각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그래봤자 마주보고 있는 컴터 앞이지만). 작업할 것이 있으면 하고, 블로그나 유튜브도 보고, 글도 끄적거린다. 3시쯤 되면 출출하다며 닌나 씨는 간식을 만든다. 주로 국수다. 여름엔 비빔국수, 겨울엔 잔치국수- 닌나 씨표 국수는 정말 팔아도 될 만큼 맛있다. 같이 먹는데 살은 나만 쪄서, 요즘은 국수 금지령을 내렸다.   


5~6시 쯤 남실이 산책을 나선다. 운동 삼아 저 아래 마을까지 다녀온다. 몇 년전만해도 산도 거뜬히 타던 남실이지만 이제는 힘들어 해 돌아올 때는 종종 안고와야 한다. 벌써 제비꽃이 나왔구나, 여기 밭 언제 다 일궜데, 대추밭에 묘목 심은거 봐~ 걸으면서 소소한 대화가 오간다. 이 산책 코스에 뽕나무와 밤나무가 있다. 여름에는 오디를 따먹고, 가을에는 밤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 산책길에서 딴 산딸기: 


저녁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둘 다 술을 좋아해 대부분 맛있는 음식과 반주를 즐긴다(반주라고 하기엔 조금 많이 마시지만). 주로 할인 특가와 제철 재료 위주로 무엇을 먹을지 대부분 미리 한 주 계획을 세워둔다. 요리는 대부분 함께 만든다. 어제는 오빠네가 삼겹살을 보내줘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무슨 할 얘기가 더 남았는지) 신나게 수다도 떨고 기분도 업되면 시네마 천국 타임이다. 술 마시며 보기 좋은 가벼운 영화 한 편과 그것이 알고싶다 재방, 고전 시트콤 프렌즈를 주로 본다. 자정 쯤 잠자리로 간다. 닌나 씨- 남실이- 나- 윤슬이 순으로 쪼로록 누워 잠이 든다. 


: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참 신기한 일이다. 24시간 일주일 내내 붙어있는데 계속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한 공기가 좋다. 


친한 친구네 부부가 있다. 종종 술이 얼큰하게 취해 전화가 온다. 둘이 놀라고 하니, 둘이 술마시면 재미가 없단다. 또 단 둘이 여행가면 재미 없다고 꼭 부부 동반으로 간다는 다른 친구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아빠보다 친구들이랑 여행가는게 더 재밌다고 한다. 참 슬픈 일이라 생각했다. 


누군가 같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뭐냐고 묻는다면, 가장은 아니지만 취향이라 대답하겠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하는 만큼ㅡ 이야기가 잘 통하고, 코드가 맞아서, 둘이 노는게 재밌어야 계속 더 많은 시간을 기대하고 만들어나가게 된다. 


누군가 같이 사니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하루의 시작과 마지막은 언제나 함께라는 것- 

대부분 내가 먼저 눈을 뜨는데, 다가가서 안으면 체온과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느 것하나 내맘대로 되지 않는 험난한 세상에서, 이거면 충분하다, 안심이 된다. 위로가 된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인스타 파일을 가져왔더니 화질이 영 ㅠ_ㅠ 새소리에 귀기울여 보세요. 힐링파워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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