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을 준비하겠다는 안내 방송 후 기내는 다국적어가 뒤엉키며 소란해졌다. 그때 기내식 한 번 들지 않은 채 수면안대 차림이었던 옆자리 승객이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긴장하셨나 봐요.”
너끈히 쉰은 넘어 뵈는 옆자리 아저씨 덕분에 11시간 만에 한국어를 듣게 됐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회 때문에 터키를 경유해 드레스덴으로 간다는 옆자리 목사님 지적대로, 이번에는 두근 반 세근 반 비행 불안증을 겪고 있었다. 어지럼증이 도질까 약봉지를 쥐었지만, 과한 술에 블랙아웃되듯 정신이 동강나는 게 께름칙했고 깨어나면 머리 가득 벌떼 붕붕대며 띵한 느낌이 싫어 자발적 불면을 택했다.
최신 개봉 영화를 내리 보다 눈이 뻑뻑해지고 이 영화 남자 주인공이 저 영화 여자 주인공과 엎치락뒤치락 줄거리가 엉킨다 싶으면, 졸리겠거니 눈을 감았다. 잠깐 졸다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요동치면 3,600피트 고도에서 안전 탈출한다고 살 수 있겠나, 말레이시아 항공기처럼 하늘도 땅도 모르게 이 비행기도 실종되진 않을까 심장이 제멋대로 펄떡거렸다.
숫제 현실을 지켜보는 게 낫겠어서 창문을 열면, 먹빛 하늘 깊숙하게 찔러 넣은 비행기 날개가 적색 불빛 깜빡깜빡 안녕을 고했다. 잠시 평안을 찾아 잠을 청했으나, 그땐 옆자리 목사님의 코 고는 소리가 어지간했다. 하는 수 없이 기내식과 간식을 부지런히 받아먹고 화장실도 들락날락, 약국 이름 다 지워진 약봉지는 어느새 옆자리 발치에 떨어졌고 기지개를 펴던 목사님은 그걸 아예 뭉개버렸다. 잠시 후 기체가 아래로 쏠렸고, 하강하며 죄다 열린 창문으로 햇빛이 사방 마구잡이로 할퀴어댔다. 이로써 비행 불안증과의 전반전은 상처 없이 용케 끝났다.
전 세계 가장 많은 기항지를 두고 있다는 터키 항공사의 안방 격인 이스탄불 공항. 지구 숱한 인종 사이에서 유난히 이방인인 채 국제선 출국 라인을 따라 다시 수속을 밟았다. 이제 국제 미아가 될 거라 염려할 건 캐리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으므로 ‘Transfer’만 바라보며 걸었다.
바깥 풍경을 볼 새 없이 몽롱함만 더해져 더없이 낯설고 기이한 세계, 두브로브니크행 비행기는 다섯 시간 후 출발한댔다. 그렇게 경유 비행기 탑승구까지 알아두고 나니 노잣돈을 노리던 날강도가 덮치듯 졸음이 쏟아졌다. 마침 근처 카페 구석진 자리가 비어 있어 아무렇게나 주문한 후, 널브러진 짐짝처럼 곤드레만드레 잠에 취했다.
낮밤을 분간할 수 없는 대형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 어느 행성을 날고 있었다. 덩치 큰 외계인들이 좀체 알아들을 수 없는 행성어를 남발하는 와중에도 지구 난장이는 구름 의자에 누워 달콤한 천상주에 취해 있었으니, 여기가 어딘지 몇 시 몇 분일지 알게 뭐람. 그때 누군가가 빌어먹을 확성기를 귓전에 대고 소리쳤다.
“Wake up, please!”
화들짝 깨어보니 경유 비행기 오를 시간에 맞춘 알람이 요란했다. 만석이 된 카페에서 나를 바라보던 시선은커녕 흔들어 깨운 사람도 없었지만, 얼굴 벌개지도록 달렸다. 이번엔 느지막이 오픈하는 터키 항공이어서 안도했다.
다시 두어 시간 비행. 기내 불안증과의 후반전은 부전승이라고 해야 하나. 어쩐지 불안증도 기웃대지 않은 채 두브로브니크에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을 맞았다. 지구 저 끝에서 풍파를 겪은 후 생애 올 수 있을까 싶던 도시와 첫 키스를 앞두고, 뒤늦게나마 감개가 무량했다.
#2 익숙한 어리숙함
입국장은 막 도착한 터키 항공사 승객이 전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브로브니크 공항은 한산했다. 개중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려웠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휴양지인 이곳 두브로브니크로 남하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라 그렇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한국 공항에서 유로화만 구했기에 ATM 기기를 찾았다. 물론 시내보다 수수료가 비쌀 테라, 당장 쓸 돈만 인출했다. 때마침 시동을 걸고 있던 아틀라스 셔틀 버스에 오르니, 시내 구시가지나 더 멀리 (숙소가 있는) 시외버스터미널까지나 동일 요금으로 이동한댔다. 누구에게랄 것 없는 승리감,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엄마의 습성까지 내던지고 오진 못했다.
왼쪽으로 앉으니 아니나 다를까, 아드리아해가 길게 누워 여행객을 맞았다. 그 편안한 등허리를 더듬더듬 잠이 든 사이, 앞차의 그림자를 부리나케 집어삼키며 달렸던 버스는 예정대로 시내 구시가지를 지나 50분 만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울퉁불퉁 유럽의 악명 높은 돌바닥에 몇 번이나 캐리어를 자빠뜨렸는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막 떠오른 해를 머금은 듯 샛노란 3층 건물을 발견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호스텔 SOL, 맞은편에는 어림잡아 아파트 6~7층 높이의 하얀 물체가 쪽빛 바다 위에서 위풍당당했다. 헤벌쭉 바라보니 하얀 혹등고래, 아니 이탈리아로 혹은 스플리트 등지로 헤엄쳐 다닐 자드로리니자(Jadrolinija) 사의 페리였다. 쩝, 이석증 때문에 포기한 승선표가 떠올라 입맛을 다셨다.
체크인을 마치고 곧장 시내 구시가지에 입성하기로 했다. 페리를 훔쳐보기 딱 좋은 방에 함께 떠나온 캐리어를 두고 나와 홀가분해진 몸,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니 금세 버스 티켓을 파는 쿠삭을 만날 수 있었다. 아까의 페리보다야 확연히 작지만, 오종종 모여 출렁이는 고급 요트들이 놓인 풍경은 렘브란트의 그림마냥 아름다웠다.
백팩 민소매 외국인들도 버스를 탈 생각인지, 순서 없이 쿠삭을 에워쌌다. 필요한 말만 건네기로 작정한 쿠삭 아줌마에게 티켓을 사는 동안 들뜬 감정은 사라지고, 가슴과 등과 허리 등 부위별로 흐르는 땀에 시달려야 했다. 검고 치렁한 원피스가 오랜 비행에는 적절했을지 몰라도, 한낮 25도를 넘나드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건너편 흑발의 아가씨가 손을 흔들었다. 언어적으로든 친밀감으로든 완벽히 배타적인 세상에서 사소한 친절은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 유혹이다. 게다가 정오의 태양은 너무 뜨겁고, 갑작스레 배는 무진장 고파졌다. 잘못 칠해진 수묵처럼 섰던 나는 원래의 풍경에 자리를 내주고 아가씨께로 넘어갔다.
맥주를 즐겨 올챙이배인 이곳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예뻤고, 흑발 아가씨도 그랬다. 그녀의 매혹적인 가늘고 긴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추천 메뉴를 부탁했더니, 잠시 후 이곳 제일 값나가는 연어 스테이크가 상에 올랐다. 정말 더운 지방의 염장은 대단했고, 순전한 얼굴의 아가씨마저 나를 배제한 세상과 한통속인 줄 깨달았을 땐 이미 주머니돈 절반 이상이 날아간 뒤였다. 신고식을 치른 셈 쳐도 그렇지, 기왕지사 읍내에서 당할 노릇이지 시외버스터미널이라니 얼치기 같지 않은가.
왁자하니 구시가지에 내려서자마자 두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은행에서 돈을 찾고, 버스 무료승차권을 포함하여 관광지 할인권을 제공하는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장만했다. 이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개미똥만큼의 혜택이었다. 거리의 악사와 판토마임 연기자, 노란 우산을 든 현지 가이드와 그를 따르는 무리, 캐리어 오가는 소리와 또한 해석할 수 없는 언어의 범람, 이들에 비하자면 오노프리오 분수의 물줄기는 답답할 지경이었다. 이제 주머니는 두둑해졌고 후덥지근한 차림새를 벌충할 겸 돌체 비타,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야지.
봉긋한 콘의 어디부터 핥을까 바라보면 할짝할짝 태양이 먼저 혀를 내둘렀다. 금세 검은 원피스는 희고 끈적이는 얼룩으로 지저분해졌다. 주전부리로 바쁜 입과 달리, 눈은 이미 기념품 가게를 탐하여 주황색 지붕들을 품은 성벽 바깥으로 쪽빛 아드리아해가 올망졸망한 물건들을 훑고 있었다. 가게 깊은 곳, 세라믹 자석으로 혹은 컵으로 더러 가방과 티셔츠 들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가 수두룩했다.
쨍그랑! 세라믹 자석 하나가 내 백팩에 얻어맞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주인의 으름장에 부서진 조각은 찾지 못한 채 온전치 못한 놈을 계산하고 허둥지둥 쫓겨 나와, 머지 않은 곳의 붐비던 줄에 냉큼 몸을 숨겼다. 아직 신고식이 끝나지 않은 걸까.
그 줄은 두브로브니크 명물인 장미크림을 파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약국행이었다. 여섯 평 공간에 어찌나 사람이 몰렸던지, 여닫이문 종소리에 한 사람 나면 한 사람 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게 나오는 사람은 더디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빨리 늘어 어느 틈에 꼴찌는 면했으나….
뭐하는 짓이람. 삶의 군더더기를 떨치고 혼자의 시간을 결심해 놓고, 결국 먹고 자고 쇼핑하고 지구 저편과 다를 바 없는 하루라니. 긴 줄을 이탈하자, 뒷줄의 누군가가 물건이 다 팔렸나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어깨를 으쓱, 해석은 그쪽이 감당하면 된다.
해는 길어 아직 낙조 시간은 아녔지만, 필레 게이트를 나와 오른쪽 언덕길을 차분히 올랐다. 이젠 원피스 칭칭 감겨 종아리로도 땀이 흐르고, 공항에서 시내로 혹은 거꾸로 매연을 뿌리는 버스들이 많아 얼굴 가득 숯가루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쳇, 제대로 풀리는 것 없는 하루인가.
스르지산 전망대로 오르는 케이블카 매표소에 당도해 왕복 티켓을 사고, 한여름이었다면 포기했지 싶을 오르막길을 더 올라 케이블카가 출발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때마침 앞서는 단체객을 발견하고, 언제 지쳤나 싶을 만큼 총알걸음으로 내달렸다. 그들보다 먼저 올라 산 정상의 카페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지 욕심을 냈더랬다. 그래봤자 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건 잠시 후, 만석이 되어야 출발하는 케이블카에는 그들도 함께였다.
멀리 떠나도 떨칠 수 없는 습성. 오래도록 내 것이었고 앞으로도 별 수 없이 나와 부비고 살 바보 같고 어리숙한 모습. 그게 나였다.
#3 늦되고 서툰 인생
“그럼 전부 엉터리란 거네.”
집안 행사를 치르다 보면 제일 큰 목소리는 목동 언니 차지였다. 1년 후 팔순 생신 잔치를 앞두고 맞은, 아무도 몰랐던 아버지의 마지막 생신상이 차려졌던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오빠와 묵은 나이를 셈하다 생년이 같다는 걸 알게 됐고, 급기야 내 생일이 심판대에 올랐다. 기재된 대로라면 사촌오빠는 사촌동생이어야 했기에, 현장에 있던 숙모의 열띤 변론과 나머지 사람들의 기억이 더해졌다. 결국 주민등록상 기재 오류에 의혹의 눈길이 쏠렸지만, 아버지는 태연했다. 자고로 딸은 일찍 시집가서 하루라도 빨리 애를 낳아야 하니, 한 살이라도 속여 출생신고를 하는 게 옳다는 거였다.
비밀스런 아버지의 평생 신조가 밝혀지자, 동사무소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의아한 나를 제외한 딸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형부들은 왕왕 농을 질렀다. 철석같이 믿었던 황금 궁합이 사실은 딴 여자의 것이었다며 그 연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고, 동갑인 줄 알았는데 억울하다며 호칭부터 바꾸자고도 했다. 물론 사촌오빠는 까불어봤자 별 볼 일 없지 하는, 득의만면한 표정이었다.
친정아버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딸들과 사위들이 어쩌든지 말든지 생일상을 자시고는, 하루 운수를 떠본다며 화투 패를 놓았다. 가끔 아버지의 그런 태도가 한 수 위로 보일 때가 있다. 이날도 그랬다. 잔치가 끝나도록 언니들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이랄까, 또래보다 늦될 수밖에 없는 친정 식구들의 운명은 내 몫으로 그쳤다. 아버지가 남몰래 수고한 보람도 없이, 나의 결혼은 늦었고 아이는 더 늦었다. 그래서 또래보다 한참 늦게 철 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군식구처럼 귀찮은 갱년기만 빨리 도착할 게 뭐람.
못난 자신도 그러안고 살아갈 나이, 그렇게 늦되고 서툰 인생이지만 늘 길을 가고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됐다. 이번에도 무리에 뒤져 전망대 노천카페에 느지막이 도착했지만, 툭 트인 자리 바다를 마주했으니 나쁠 리 없었다. 새콤한 레몬 맥주를 홀짝이고 달콤한 아몬드 케이크를 베어 물며, 호사스러운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채 비어 있던 옆자리를 건너봤다.
드디어 홀로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늦된 깨달음과 더불어, 마흔아홉 아줌마에게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심장이 즐겁게 벌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