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달 Sep 20. 2019

신이 우리를 돕는다

_ 여행 3일차, 두브로브니크 3

#1 고약한 습관

때로 습관은 고약해서 헛웃음 칠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부추긴다.

시차에 적응치 못해 들척거리다 한쪽 다리를 쭉 뻗어 내리는 순간, 뭔가 잘못된 기분이었다. 늘상 무거운 다리를 받혀 주던 남편의 다리…가 없구나. 모로 누운 김에 팔을 두르니 납작한 이불, 걸리적거리는 거라곤 구겨지지도 않은 베개뿐이었다. 그 베개를 아래로 끌어 다리를 치올리다 실없이 웃고 말았다.  

사시사철 집 현관에 놓였던 조리를 끌며 식당에 들어서니, 익힌 파프리카와 콩과 브로콜리 등 야채 한두 개 바뀌었을 뿐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조식이 차려져 있었다. 한 접시 수북히 쌓아 창가로 가다, 화들짝 놀랐다. 침 8시, 깨워야 할 식구도 한시바삐 움직여야 지각을 면할 회사도 지구 저쪽 시계에 맞춰 사는데  벽시계를 볼 때마다 희뜩희뜩 놀랄 게 뭐람.

일찌감치 번지수도 모르는 거리로 나왔다. 새벽부터 달큰한 내 버무리던 과일 시장을 지나 어제의 버스 정류장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고 고개를 숙였는데, 목석같은 쿠삭 여인이었다. 메신저백을 든 사내들과 눈 화장 고운 이곳 여인들과 하품하던 학생들 모두를 잡아챈 버스가 서둘렀기 망정이지, 혼자 달달해진 멋쩍은 아침인사였다.  

전날 봐둔 로브리예츠 요새에 가자면, 카약이 머물고 있는 만을 지나 오른쪽 구릉으로 바리깡이 밀어낸 듯 좁고 경사진 언덕을 올라야 했다. 돌계단은 종종 풀섶에 사라졌다 이어졌는데, 돌아보니 아찔한 그 아래 노부부 한 쌍이 함께 길을 내고 있었다.

깔딱 숨이 넘어갈 즈음 좁은 입구가 나타났고, 악당들의 세계인가 어리둥절해질 만큼 어두컴컴하고 군데군데 거미줄 낀 계단을 좀 더 오르니 무심한 표정의 요새지기가 객을 맞았다.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흘깃 쳐다 보던 요새지기는 심드렁한 표정조차 금방 씻어내곤 오랜 버릇인 양 다시 까만 어둠에 눈동자를 고정시켰다. 아직 노부부는 입성 전이었다.


원통형 요새를 타고 오르는 개미처럼 나선형 작은 계단을 밟아 빛이 드문 2층을 지나고 3층 끝까지 올라야 탁 트인 아드리아해를 마주할 수 있는데, 무렵 따귀를 때리 새로 장만한 페도라 모자를 낚아채는 세찬 바람이 불었다. 아뿔싸, 조심성 없는 나여서 40m 바위 절벽 아래로 비행하는 모자를 구경만 하게 생겼구나.

때마침, 먼저 와 있던 관광객의 손이 재빨랐다. 최신형 카메라로 오래된 도시를 깨우던 그들은 한국인 커플. 잠시 후 요새엔 두 쌍의 국적 다른 커플과 모자마저 잃었다면 쓸쓸한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을 내가 로맨틱한 도시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는 풍경이 자리했다.  


다시 필레 성문을 지나 구시가, 배낭여행자의 습관처럼 걷고 걸었다. 어제의 성벽 투어 출발점을 지나고 사비오르 교회를 지났다. 이교도인처럼 까무잡잡하고 이미 피 흘려 뻣뻣해진 예수를 안은 마리아를 지나고, 자식 잃은 세상 엄마의 공통된 얼굴인 피에타가 돋을새김인지 조각상인지 올라앉은 문을 지나, 첫날 혼잡했던 줄은 사라졌지만 13세기 흑사병 환자를 치료했다던 프란체스코 수도원에 다다랐다. 상아색 문을 밀면, 딸랑딸랑 고색창연한 종소리와 함께 700년 전 처음으로 일반인을 맞았다는 중세 약국을 만나보겠지.

개구리눈이나 동물 고환 혹은 마녀의 뼈다귀 등이 박제되어 있었더라면 덜 놀랐을 것을, 정갈한 진열대를 배경 삼아 역시 코가 날렵하니 황홀하게 예쁜 약사가 장미크림에는 도무지 관심 없는 동양인을 맞이했다. 쭈뼛쭈뼛, 꽁무니를 빼며 가던 길로 곧장 더 걸었다. 이번에는 교교한 회랑을 지나 음이 소거된 수도원 정원, 시든 장미 한두 송이가 화려한 계절을 안간힘으로 붙들고 있었다.


어쩐지 꼬리표처럼 들러붙는 외로움, 어디를 가나 가족 단위 여행객이 눈에 띄어 마음이 종종 수런댔다. 잊혀진 건 지중해 상거래꾼이 부지기수로 만졌을 문고리뿐, 플라차 대로 끄트머리 스폰자궁과 렉터궁과 이 도시가 라구사공화국이었을 무렵부터의 역사를 지나치게 간략히 말해 주던 역사박물관 모두 즐거운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골목길로, 좀처럼 옴짝달싹하지 않는 이곳 고양이 두 마리를 따라 뒷길로 파고들었다. 점심이 닥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구나 싶고, 저녁을 먹을 때면 함께 찧고 빻을 시간이구나 싶었다. 8시간이나 뒤늦은 삶을 살면서도 핸드폰 연결 신호를 확인하며, 이날따라 깜깜무소식인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땐 이만한 짝사랑도 없다 헤프게 웃고 말았다.

그때, 버려진 음식 부스러기에 몰두하던 비둘기떼를 앞질러 바람에 실려 오는 소리가 있었다. 주말을 켜는 이곳 오케스트라 악단의 연주였다. 그래, 습관처럼 떠오르는 감정일랑 오선지를 달리는 마법사에게 맡겨둬야지. 순식간에 가슴 들쑤시던 그리움이 사분의 3음표와 함께 달아나 버렸다.    

  


#2 펄럭이는 외로움

카페에 앉은 나른한 오후. 이날따라 한국인 가족 관광객이 참 많기도 많구나 싶더니 롯데관광, 하나투어, 한진관광 등등 삼각 깃발이 퍼레이드를 벌였다. 무심결 그들을 좇던 눈이 뒷자리 아가씨와 엉겼다.

“한국인이세요?”

이날이 두브로브니크 여행 마지막 날인 것만 공통된 두 여행자는 동안의 행로를 묻고 이후의 행로를 나눴다. 듣자 하니 항만물류 쪽 연구에 종사한다는 부산 아가씨는 길 위의 삶에 제법 익숙했다. 이번에도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영국 출장을 다니러 왔다, 한국에서 유학생으로 지냈던 친구들을 만나러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지를 돌고 난 후 크로아티아에 들렀단다.


벼르고 별러야 떠날 수 있는 나와는 다른 세대. 당연히 그 세대 제1의 화제는 사랑이었다.

“그 친구가 첫 사랑을 잃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실래요?”

통성명한 적 없는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걸 주저할 틈도 없이, 아가씨의 손가락은 천리안을 터치하듯 페이스북을 돌아다녔다. 액정 화면을 가득 채우던 남자는 스크롤바가 올라갈수록 잘 조각된 석고상이 되더니, 자신보다 오동통한 피앙세를 안은 루마니아 출신의 톰 크루즈로 변해 있었다.    

“완전히 딴 사람 같죠?”

실연 극복 다이어트를 종용한 많은 한국 친구들 덕분이랬다. 진실이 무엇이든 달라진 건 명백했다. 그런데 이 친구, 마음만은 달라지기 어려웠나, 첫사랑과 어려움을 함께한 피앙세 사이에서 갈팡질팡 괴로워한댔다.

내 마음도 추스르기 어려운데, 생면부지의 마음까지 어떻게 헤아리랴. 아무쪼록 사내가 가로질러 중년이 되고 뱃집 두둑한 아저씨로 변했을 때에도 잃지 않을 사랑을 택하길 바랄 뿐…. 흐음, 거 정말 어렵다.


이날 밤 페리를 타고 스플리트로 떠날 부산 아가씨와 헤어지고, 동쪽 구항구로 나섰다. 하얀 요트들이 때론 떠나고 싶은 척하고 때론 머물고 싶은 척하며 거센 바람을 맞고 있었다. 갓 유모차를 벗어난 아기가 나무벤치에서 뛰어내리며 “슈퍼맨”을 외치자, 사랑스런 눈빛으로 그 아이를 좇는 젊은 부부를 지나쳤다. 벙거지를 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동양 여인이 벤치에 앉아 어느 틈엔가 사뿐 무릎에 오른 동네 고양이와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빨간 등대 바라보는 먼 바다를 함께 내다보며, 떠나온 가족이 머무는 집은 어디쯤일지 가늠했다. 다음날 비 소식 때문인지 저녁이 이슥해지자, 달아났던 외로움이 다시 펄럭거렸다.

     


#3 중년의 사랑

“마운틴 에베레스트, 마운틴 에베레스트, 거기 누가 떠드노!”

잔뜩 구불텅해진 혀로 영어 듣기 시험을 방송하던 스피커에서 갑작스레 호통 치는 사투리가 터지자, 중3 여학생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몇몇 아이가 검지를 머리에 대고 빙글빙글 돌렸다. 담임이기도 한 영어 선생님을 가리켜 하던 짓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의 행동은 아이들의 웃음을 살 만큼 요상하긴 했다. 영어 문장을 읽던 목소리가 굵어져 고개를 들어보면, 교과서를 보고 있어야 할 시선으로 자신의 윗도리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문법을 설명하다가도 그 분필자국을 따라가던 숱한 눈동자에 아랑곳 않고 무릎 아래 흘러내린 스타킹을 허벅지 위 팬티 라인 못미처까지 끄집어올렸다.

 

초록색 출석부의 한쪽 끝머리가 휘도록 아이들 머리를 때리고 교탁을 발로 쿵쿵 치며 신경질 내는 건 되레 정상으로 보였다. 당시 고입 선발고사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 대다수가 못지않게 매질을 해댔으니 말이다. 다만 점심시간마다 자신처럼 엎드려 자든지 교실 밖으로 나가 놀라 권하는 건, 중3 담임치곤 남달랐다.

짓까불던 친구들과 나는 운동장을 택했다.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향하던 체육선생님이 국가대표선수급이라 빈정대거나 말거나 오자미 놀이에 푹 빠진 시절이었다. 모래보다 좀 더 찰지게 때려 맞추는 쌀로 오자미를 만들고, 그보다 더 잘 날아가는 콩주머니를 만드는 건 물론 쌀집 딸인 내 차지였다.


어느덧 오자미하기도 지칠 법한 한여름이 다가왔다. 뭔가 벼락이 치고 비가 쏟아져 내리지 않는다면 죄다 녹아내릴 것 같은, 지겹도록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마침 쓰던 콩주머니가 터져 좀 더 질긴 천에 더 많은 콩을 집어넣어 짱짱해진 오자미를 만들곤 어떻게든 이겨야지 다짐하며 학교에 갔는데, 그날 조회시간이 지나도록 담임선생님만 출석하지 않았다.

이제 점심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쉬는 시간마다 짬짬이 오자미를 즐겼다. 담임선생님의 계속된 결근은 우리끼리의 승부를 쉽사리 판정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방학이 시작됐고, 방학식을 마치자마자 반의 간부들과 짬없이 바쁜 울 엄마를 뺀 간부들의 엄마들이 지금의 창원으로 합쳐지기 전 마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병문안을 가는 길이었지만, 타지로 나가는 버스에 오르자 오자미보다 즐거운 놀이를 벌이는 기분이었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돌계단을 한참 오르니, 높다란 철문으로 가로막힌 선생님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저를 누르고 덜커덩 문이 열리자, 담임선생님과 닮았지만 몇 십 년은 낡아버린 얼굴이 우리를 맞았다.

엄마들은 그분과 안방으로, 아이들은 주인 없는 선생님의 방으로 들어갔다. 몇몇은 주인 잃은 침대를 뒹굴고, 몇몇은 높낮이 제멋대로인 책장을 뒤졌다. 당시 빼앗겼던 '하이틴 로맨스' 등속의 금서를 되찾아올 생각이었지만, 예상치도 못한 영문이 암호처럼 빼곡한 책들만 가득했다.


그후, 낮으로 짝을 찾아 맹렬히 울어대던 매미와 밤마다 산을 울리던 뻐꾸기와 몇 개의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불발탄이 된 것 말고는 그 무더운 여름방학 내내 지나치게 평온했다. 그랬으니 개학 날 우리 반에 떨어질 계엄령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전체 학년 운동장 조회가 열렸을 때 1학년 어느 반 대열이 마구 흐트러진 게 미심쩍긴 했는데, 그 이유는 금세 분명해졌다. 그 앞을 지켜야 할 선생님이 우리 반 앞에, 틀니처럼 부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소문대로였을까. 약혼자에게 차여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담임선생님은 계속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지, 학년이 끝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댁에서 약봉지를 발견했을 때 어림했지만, 책꽂이 앨범에 샘솟던 젊음과 기쁨에 설마 했는데, 결국 1학년 담임이었던 피부 까무잡잡한 선생님이 학년 꼴찌를 독차지하던 우리를 떠맡았다. 물론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이로써 점심 도시락내 가시지 않은 3학년 교실은 몽둥이 든 선생님과 곁을 내주지 않는 의붓엄마에게 심술 난 학생들로 살풍경해졌다.


가겟집 담벼락 너머, 과수원을 한다던 이웃집 마당에 무화과가 썩고 사과와 배가 툭툭 떨어지더니 고입 원서를 쓰는 계절이 닥쳤다. 여름날 새로 장만한 튼튼한 오자미 주머니를 꺼내 보지 못한 채, 놀이를 함께했던 친구들이 당시 실업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쥐고 우는 걸 지켜봐야 했다. 새 담임선생님은 끝을 알 수 없는 정(情)보다 확실한 승부를 원했다.

졸업식 이후에나 끝날까 싶었던 껄끄러운 마음은 새 담임선생님의 결혼식 때문에 더욱 복잡해졌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적어도 그때 내 모습과는 똑 들어맞았다. 청첩장에 안내된 결혼식장에 갔을 때, 밉상이던 깜장 샘이 흑진주처럼 곱고 사랑스러웠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고등학생이 될 친구들과 곧 2학년이 될 깜장의 옛 학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다.

그곳과 여기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버스 정류장의 물리적 거리만큼, 사랑의 질감도 많이 달라졌다. 그땐 버려두면 퇴색하는 방처럼 사람을 황폐하게 하는 사랑이, 깜장을 흑진주로 변신시키는 사랑이, 선악과마냥 여겨졌다. 어지간히 궁금하긴 한데 한 번 손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떠안길, 그저 휘둘리지 말아야지 싶은 홀림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랑은 난수표 같은 인생의 한 가지 숫자일 뿐이어서 불가해해도 내버려두면 그만, 달리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아직까지 남자친구를 보면 가슴 뛴다는 친구를 떠올렸다. 마음밭 촘촘히 먹고 살 작물만 심은 나로선 화단도 가꿀 줄 아는 친구가 되게 부럽다. 아아, 가슴 뛰던 날들은 저 먼 곳 어느 버스에 놓고 내렸을까.

철 지난 영광과 다툼 그리고 때 없는 사랑 모두를 품은 도시에서의 마지막 날, 괜히 버스를 놓치고 그때보다 한두 뼘 더 길어진 그림자와 좀 더 걷기로 했다.


군청색 바다와 유달리 붉던 하늘을 매일같이 보아 심드렁해진 철조망. 거기, 다시 오고픈 마음이 붉고 노랗고 푸르게 녹슬어 따져보면 아무것도 아닌 자물쇠들에 매어 있었다. 반대편에서 남사스러울 것 없이 카디건을 씌워주고 어깨 두르던 노부부가 웃었다. 어떤 사랑을 지나왔을지, 어떻게 여태 한 몸처럼 살아졌을지 몹시 궁금했지만, 다 아는 양 미소 지었다.

자전하는 하루가 저무는 지금은 현실로부터 유예된 여행자의 삶이지만, 공전하는 어느 계절에 돌아가게 되면 옛 사랑을 기억하고 지난 상처를 보듬으며 저들처럼 곰살맞게 살아질까. 오래된 서로를 견디다 보면, 돌아올 거란 믿음으로 굳세게 잠궈 녹슨 저 자물쇠처럼 더욱 단단해진 서로를 만날 수 있을까.

“GOD HELP US.”

건너편 담벼락 그라피티에 무릎을 쳤다. 이후의 삶은 신의 몫으로 두는 게 마땅하겠다.  



이전 04화 주저앉지 마라, 인생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