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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달 Oct 05. 2019

가족과의 밥상이 그리운 저녁

_ 여행 7일차, 자그레브

#1 멀고 먼 모이돔(Moj Dom)

음식만큼 치명적인 향수가 있을까? 플리트비체 공원 안 너도밤나무인가 삼나무인가 전나무인가 아무튼 낙엽 폭신한 그루터기에서 사과를 베어먹다 문득, 신김치 송송 썰고 꽁치랑 두부 넣어 팍팍 끓인 김치찌개가 떠올랐다. 순간 빗장이 열리듯 고향의 먹거리가 우후죽순 머릿속을 채웠고, 숙소를 한인민박으로 바꿔 예약한 후 19.5헥타르 녹색정원에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떠나온 길. 여행의 나날만큼 묵직해진 캐리어를 잡아채는 돌바닥과 죽자살자 씨름하며, 밥이 뭐라고 시외버스터미널 가까이 호텔을 취소했을까 후회했다.

20여 분 지나 파란색 트램이 막아서고, 그 뒤로 남겨진 철길 너머 만두셰비치 분수 옆 오래된 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 2인자였던 헝가리가 민족혁명을 전개하며 헝가리화 정책을 펼칠 때 크로아티아도 이에 맞서 민족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군대를 이끌어 헝가리를 물리침으로써 이 나라 영웅이 된 요셉 옐라치치 장군의 동상이었다. 그의 쭉 뻗은 반달칼이 객을 겨냥하고 있는 이곳은, 그러니까 도시의 심장부인 반 옐라치치 광장. 금세 변덕을 부려, 한식 저녁을 파는 민박을 선택하길 잘했다 싶었다.

그럼에도 아직 숙소는 당도 전이어서, 다시 도심의 약국을 지나고 꽃집을 지나고 트칼치체바 거리 빵집 들과 갖은 카페들을 지나 지친다 지쳐 더 이상 못 가겠네 멈추어 섰을 때, 카페 초록색 차양 위 2층 창문에 붙은 모국어에 현기증이 일었다. ‘모이돔(Moj Dom)’, 내 집이라…. 기세 좋게 1층 카페의 술과 담배로 어지럽혀진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초인종을 눌렀다. 드디어 밥이다!

탕, 캐리어 뒤 육중한 나무대문이 닫히자 이방의 소음이 사라졌고 2층으로 뻗은 철계단이 나타났다. 좋아, 저 위로 캐리어를 끌어올리기만 하면 흰밥에 무어라도 먹을 수 있겠다. 마지막 안간힘을 쓸 때 계단 끝으로 두 손 맞잡은 한국인 여사장이 마중을 나왔다. 

복도를 따라 객실로 들자, 물기 바짝 마른 신식 주방이 먼저 객을 맞았다. 거기 큰 냉장고가 있었는데, 비어 있어 오리지널 새 것인 그 물건에 객의 허기는 더해갔다. 오후 해로 꽉 찬 여성 전용 도미토리룸 이층침대 들은 간택을 기다려 차림을 마무리한 색시처럼 다소곳했고, 하필이면 아래 카페에서 도둑처럼 기어 오른 담배연기에 여사장이 수선을 떨며 창문을 닫았다.


서울에서 반나절 길, 자정 넘어 도착해도 친정집에선 밥상부터 차려줬는데 자그레브 ‘우리집’은 그날따라 객에게 팔 저녁밥이 없댔다. 물에 만 밥에 쪽김치라도 원했건만 쩝, 사라진 신기루에 입맛을 다셨다.

“2박이시죠?”

경유지에 불과했던 자그레브는 밤으로 머물고 새벽녘에 떠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안식을 구할 나이, 심상찮은 날씨를 핑계 삼아 푸지게 먹고 잘 요량이었다. 그런데 배는 고프고, 홀로인 객실은 아늑하곤 동떨어진 풍경.


“오시던 길, 여기 트칼치체바 거리는 신흥 카페촌으로 요즘 핫해요.”

여기 민박집을 찾아 궁시렁궁시렁 한국어를 쏟아붓던 길이니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민박집을 나가 이 길의 북쪽으로 좀 더 오르면 사탄을 물리쳤다는 세인트 조지 동상이 있댔고, 좌회전하면 1731년 대화재에도 소실되지 않은 성모 마리아 그림이 영험하다 여겨 예배당이 지어졌다는 스톤 게이트를 만날 수 있댔다.  

그 다음 볼거리는 성 마르코 성당. 왼쪽으로 크로아티아 통일 왕국 문장이, 오른쪽으로 자그레브 문장이 직조된 태피스트리 같던 성당 지붕은 익히 사진으로 보았는데, 근처 무슨 박물관이 있다는 둥 빨리 돌아가는 녹음기 같구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밖을 서성이던 쌍둥이 또래 아이가 여사장의 품을 파고들었다. 배고프다 칭얼대는 이 집 외동아들 겸이, 여사장의 멘트는 아까보다 더욱 빨라졌다. 세상에서 가장 짧다는 우스피냐차 푸니쿨라, 숙소 근처 돌라체 시장, 108m 높이 고딕 양식 첨탑과 내부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라는 자그레브 대성당을 동그라미로 쓱쓱 표시한 펜을 흘리고 서둘러 객실을 나섰다. 구시가 관광은 차치하고 근처 맛집 정보를 캐물어야 할 어스름 무렵, 모자가 빠져나간 객실엔 덜 닫힌 현관문으로 저녁바람만 들락거렸다.  

저녁을 구하러 나설 때, 민박 사장네 현관 앞 크고 작은 크록스 샌들이 제 집에서나 행세하는 방만함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민박 여사장을 포함한 세 사람의 일상이 머무는 집, 그 언저리 잠시 머물다 떠날 객의 입으로 저녁을 탐하는 침이 고였다.



#2 한밤중 목엣가시

“어젯밤 잘 주무셨어요?”

그러고 싶었죠. 그런데 하필 어제, 민박집 1층 카페에서 누군가의 생일 파티가 열렸나 보더라구요.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떼로 부를 땐 저도 모르게 허밍도 했는데, 아래 카페의 폐점시간이라던 새벽 2시까지 한밤중 난장으로 꽤나 뒤척였네요.

물론 속엣말이었고, 전전긍긍 밤새 켕기던 사정은 따로 있어 수저만 달그락거렸다.


엊저녁 민박집 저녁을 탐내다, 서울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이곳에 적응한 시계가 저녁 다섯 시를 가리킬 무렵, 저쪽은 이미 자정을 넘었겠어서 전화를 끊으려던 참에, '여보세요~'란다. 작은아이였다.

“아들? 밥은 먹었어?"

어째 이 질문이 먼저여야 했는지, 아이는 자다 받았을 텐데 엄마라고 반가워했다.

“엄마, 엄마? 히힝, 할머니가 오셔서 자장밥 해주셨어. 왜 이렇게 늦게 전화해? 오늘~."

어쩌고 저쩌고, 마치 옆자리 누워 있기라도 하듯 하루를 읊조리는 작은아이. 늘 그렇듯 쌍둥이형에 대한 불만이 주된 화제였다. 간만 통화가 길어지면서, 미주알고주알 엄마의 잔소리도 엿가락 늘어지듯 길어졌다.

“밥 잘 먹고, 자기 전 꼭 양치하고, 아빠한테 학교 알림장 보여드리고, 숙제랑 준비물 잘 챙겼나 봐 달라 하고….”

“알았어, 알았어.

늦은 전화를 받아준 대가로 말을 더했다.

“엄마 돌아갈 때 선물 많~이 사갈게, 원하는 거 있음 말해 봐.

“선물? 음…, 생각해 볼게. 그런데 엄마 언제 와요? 엄마가 해주는 된장국이랑 볶음밥이랑 국물떡볶이랑 다 먹고 싶단 말야, 히잉.

턱,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말이 목엣가시처럼 걸렸다. 그랬으니 밤늦도록 잠자리가 불편할 밖에.


우리 가족 시절 좋던 때, 주말이면 가까운 숲에서 멀리 왕산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 망상해수욕장 등지로 캠핑을 다녔다. 아웃도어와 함께 캠핑 장비가 붐이던 때, 호기심 많은 사내아이들 놀이터로 집밖은 아무데고 옳았던 때문이었다. 늦잠 자던 아이들도 캠핑날은 일찌감치 장난감을 챙겼는데, 부족과 결핍을 가장한 캠핑장에서 소꼽장난하듯 음식을 해먹으면 여느 요릿집보다 맛있었다. 아이가 밤으로 읊었던 메뉴는 당시 해먹던 음식들이었다.

한번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작성한 거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는데, '생애 주기 곡선'이란 거였다. 오르락내리락 곡선의 최고점은 캠핑을 다녔을 때였고, 그 최하점은 유년의 집을 떠났던 이삿날이었다. 집을 줄이고 살림을 버리고 회사를 나가고 산으로 피신하던 동안, 아이들은 유년의 친구와 헤어지고 장난감을 버리고 학교와 센터에 맡겨져 타인들과 저녁을 나누곤 늦은 밤 불 꺼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현실을 좇느라 녀석들 마음을 못 챙긴 게, 내 상처를 돌아보느라 아이들 헛헛함을 내버려둔 게 목엣가시가 되었다. 

그 떨떠름한 자각을 외면하며 공기 한 그릇을 비웠다. 된장국과 흰밥에 프랑크 소시지 볶음, 멸치볶음, 달걀말이 밍밍한 식탁은 아무래도 민박집 초등학생 입맛 같았다. 무엇보다 앞섰을 엄마의 마음, 부족한 자신이 도드라지는 아침이어서 또 한 그릇을 비웠다. 하여 추적추적 비 뿌리는 복도를 지나 다시 객실로 들었을 땐, 날씨만큼 심상찮은 마음이었다.      

하루하루 쫓기던 일상의 시계 밖으로 놓여난 지 꼬박 1주일. 홀로 여행자로 떠도는 익명의 삶이, 자발적으로 낯선 자가 됨으로써 관계의 그물에서 자유로운 삶이 앞으로도 곱절 이상 이어질 것이다. 혼자 지내는 후배를 부러워한 적도 있지만, 이날만큼은 무척이나 가족과 함께 밥을 나누고 싶었다. 애쓰지 않아도 늘 함께라 여겼던 가족이 추억의 음식과 함께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생각하니, 사막 같던 마음으로 비가 내렸다.



#3 가족이어서 애쓰는 마음

차양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자장자장, 가물가물….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시끄러워진 현관 밖을 내다보자, 청소를 마친 메이드가 짧은 목례를 건네고 마저 끽연을 즐겼다. 담배 연기 오르는 하늘은 비가 그쳤고, 오후의 마음도 활짝 개었다.      

반나절 자그레브 여행의 첫 방문지는 스톤 게이트, 측벽 가득 ‘감사합니다’란 뜻의 크로아티아 어 ‘HVALA(흐발라)’가 갖가지 모양으로 새겨진 석판이 눈에 띄어 찰칵. 언덕 올라 마르코 성당, 빨갛고 하얗고 파란 이 나라 문장 위로 지역별 문장이 예뻐서 찰칵. 푸니쿨라 지나 로트르슈차크 타워 찰칵, 기념품 즐비한 거리 마켓 찰칵, 스트로스메이어 산책로에 올라 포복하고 있는 자그레브를 찰칵. 속을 보이지 않는 이 도시는 경유하는 게 마땅했을까.      

“와 찍으라는 사람은 안 찍고!”

터벅터벅 숙소로 내려가던 길, 다시 마르코 광장에 들어섰을 때 볼멘소리의 경상도 억양에 시선을 빼앗겼다. 어색하니 새까만 머리의 아주머니가 삐죽삐죽 중얼거렸다. “문디 아이가.”, 뭐 그런 말일 거라 짐작됐다.

화가 나 먼저 자리를 뜨는 아줌마를 눈치 채지 못한 아저씨는 버버리 체크 상의에 초록색 치노 팬츠 차림. 잔뜩 멋을 낸 여행자였다. 그들보다 더 세련된 아저씨의 카메라가 사방팔방 풍경을 담느라 바빴다.

풉, 서울 우리집 식탁에 놓인 친정 부모님 사진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가장자리 노랗게 변색한 엄마와 아버지의 나들이를 담은 사진, 거기에는 지나치게 뽀글대는 파마머리에 꽃자수 니트와 주름 꽉 잡힌 치마를 차려입은 어색한 엄마가 백구두에 백색 슈트 제법 어울리는 아버지와 나란히 서 있다. 30년도 더 지난 진해 군항제 초롱불은 여전히 켜 있고, 아버지가 엄마의 허리를 껴안은 모습이 어제처럼 남아 있는 사진. 거기에는 억척스런 엄마에게 보기 드물었던 환한 미소와 수줍은 여인의 마음 같은 게 함께 남아 있었다.

사진에 몰두할 때, 스톤게이트 적의 성모자상 아래 차디찬 돌바닥으로 무릎 꿇은 어머니를 보았다. 자식 키우랴 살림하랴 장사하랴, 친정엄마의 삶도 꽤나 고단하셨겠다. 자식들 돌보고 남편을 섬겨야 했던 시대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밖으로 돌던 아버지와 제 뜻대로 살아주지 않던 자식들을 참아내려 무진장 애쓰셨겠다. 그러고도 살아 생전 아침상 거르지 않고 차려 주신 게, 구김살 없는 기억을 물려주신 게 참으로 감사했다.

때마침 저녁을 겸상할 한국인을 만났다. 함께 골목을 누비고 돌라체 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빨강 파랑 하얀 원이 동심원처럼 퍼진 세스틴스키 우산이 거의 접혀질 무렵이었다. 두 사람은 댕그렁 울리는 종소리에 지남철 이끌리듯 자그레브 대성당에 들었다. 각자의 시간을 가졌고, 대성당 옆 1880년 자그레브 대지진 때 멈춰섰다는 벽시계 앞에서 다시 만났다.  

훌쩍, 잠깐 동행이었던 친구가 눈물을 흘렸다.

“…떠나기 전 집안에 힘든 일이 있었거든요.”  

아픔을 겪고 나면 타인의 상처에 무심하기 어렵다. 벽시계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에는 당시의 아비규환도 떠올랐겠지만, 흘러가지 않은 채 우뚝 멈추어 선 자신의 사건도 보였나 보았다.


사회생활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가족 앞에선 거리낌 없이 드러낼 때가 많다. 허물없다는 미명하에 가족 간 끼쳤던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딸이어서 유린했던 친정엄마의 마음에 미안했고, 엄마여서 함부로 했던 아이들의 상처와 아내여서 부렸던 심통 들이 여러모로 사무쳤다. 가족이어서 더욱 애쓰는 마음, 그 마음을 붙들지 못하고 살아서 참으로 미안했다.  

마침 민박집 사장이 추천한 레스토랑이 가까웠다. 송로버섯 스테이크에 문어 샐러드에 와인까지, 화려한 밥상을 주문했다. 두런두런, 다독다독, 잠깐의 식구(食口)가 되어 마음을 나누던 시간.

돌아가면 아이들 좋아하는 볶음밥에 남편 좋아하는 생선조림에 이곳 와인을 겸한 저녁상을 준비하고팠다. 집으로 돌아조약돌 하나 건넨 자그레브가 마음 한구석부터 따뜻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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