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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Jul 15. 2021

네?! 방송국이라고요?

[작은 친구들 5호] 양단우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레디, 액션, 큐. 피디님의 사인이 떨어지자 눈을 부릅뜨고 카메라를 빤히 응시했다. 아, 입이 떨어져야 하는데, 대사가 뭐였더라. 잠시만요! 다시, 하이- 큐!



“네, 저는 도그워커예요. 강아지들을 산책시켜 주는 일을 한답니다.”


디디가 세상을 뜬지, 약 3개월이 막 지나갈 무렵. 이제 더는 SNS에 디디의 사진을 올릴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돌봄 중인 아이들의 사진을, 보호자님의 허락하에 게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서 DM 하나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KBS 2TV 생생정보통 작가입니다.

도그워커라는 직업에 대해 방영하려고 하는데 촬영이 가능할까요?"


방송이라니! 그것도 지상파 방송이라니! 기사식당이나 미용실 등등 어디를 가나 죄다 틀어놓는 바로 그 방송이라니. 두근두근! 1년 넘게 돌봄을 쌓아온 보스턴 테리어들의 보호자님과 상의한 후에 방송구성안과 대본 등을 숙지하였다.



촬영 당일, 촬영팀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촬영이 들어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여는 순간... 엄청난 점프력을 보이는 아이들. 이럴수가! 아이들은 촬영팀이 다 돌봄이모, 삼촌들인 줄 알고 너무너무 감격한 나머지 안전문을 탈출해버렸다. 안돼 얘들아!ㅠㅠ


돌발상황에 다들 당황했지만 나는 익숙하다는 듯 능숙하게 아이들을 검거(?)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촬영팀을 향해 “아이들이 너무 신나서 그런가 봐요.^^”하고 말했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정말 식겁했는걸. 아가들아 오늘만은 제발 이모를 도와다오!


터그놀이와 노즈워크를 하며 실내놀이 촬영을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째. 놀이에 집중하는 우리들만 신났지, 촬영팀은 벌써 지쳐버렸다. 하하, 그렇습니다. 녀석들과 놀아주는 것은 강철같은 체력이 필수 요소라고요.


이제는 산책 촬영을 하잔다. 가방 속에 욱여넣었던 산책용품들을 스르륵 꺼내 들었다. 피디님의 눈이 커지더니 “이게 뭐예요?”하고 물어보셨다. 아, 산책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가방이 신기할 수 있겠구나. 피디님은 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이어서 산책용품에 대한 설명을 촬영했다. 



물통, 반려동물용 물티슈, 산책 장면 촬영용 하네스와 카메라, 응가가 묻지 않도록 끼는 일회용 니트릴 장갑, 아이들이 마실 물통, 응가 모양의 풉백, 리쉬줄에 손바닥이 쓸리지 않도록 끼는 보호용 장갑, 독한 모기약 대신 지참하는 유칼립투스 오일 등. 거기에 카메라가 집중해서 잡은 것은…. 바로 산책 시, 시비 거는 행인들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히 맞춘 와펜 2개였다. ‘촬영 중 나쁜 말 NO’, ‘산책교육 중 접근 NO’. 내 딴에는 주렁주렁 달고 다니느라 무겁고 때로는 번거롭기도 한, 이 장비들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카메라에 장비들이 잡힐 때마다 자긍심이 느껴졌다.


산책 장면에서는 아이들이 긴 산책 시간 동안 잘 기다려주고, 또 잘 따라와 주어 좋은 장면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작가님과 산책 대결이라는 코너도 만들어봤는데, 사실은 작가님이 한번 리쉬줄을 잡아보고 싶어 건네받는 과정에서 질질 끌려가는 걸 보고 즉흥으로 촬영에 들어간 내막이 있다. 도와주세요! 하고 소리치며 끌려가는 작가님을 보고 푸하하 웃으며 달려갔던 걸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빵 터진다. 그거 보세요!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며칠 후, 가족들과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TV로 나오는 내 모습을 시청했다. 가족들과 깔깔거리면서 이 직업을 갖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도그워커 & 펫시터가 더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래요,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니까요. 그래도 할 수 있어요. 저도 이렇게 해냈으니까요!



글쓴이. 양단우

© 동반북스


<작은 친구들> 웹사이트 : http://littlepal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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